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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떡볶이, 그리고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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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떡볶이, 그리고 비정규직

[기자의 눈] 정치권이 외면했던 '해고의 추억'

정치권에서 때 아닌 서민 타령이 흘러나온다. 대통령은 시장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서민과 함께했고,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비정규 노동자의 아픔에 공감하겠다고 한다.

서로 더 진정성 있다고 주장하는 '짝사랑 경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은 그들만의 '말싸움'이다.

대통령이 떡볶이집에 들른 것을 놓고 "손님 떨어진다", "정신 나간 발언이다"라며 삿대질이고, '서민정당' 이미지를 놓고 저작권 논쟁마저 벌어졌다. 한 쪽은 다른 한 쪽을 '反서민정당'이라 비난하고, 욕먹은 쪽은 발끈하며 '원조 서민정당'을 자청하기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언제부터 너희들이 노동자를 그렇게 걱정했냐"던, 민주노총 임성규 위원장의 말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유예기간에 발목 잡힌, 비정규직법

오늘로 비정규보호법 시행 2년. 그러나 정치권은 문제의 초점을 잃은 채 부산하기만 하다. 비정규직 보호와 남용 방지라는 법안의 원래 취지는 뒷전이고, 사용기간 유예문제로 힘겨루기만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유예 기간을 6개월로 잡든 2년으로 잡든 간에, 그 기간이 끝나면 똑같은 논란이 재연된다는 점에서 기간 유예는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

2007년 7월 1일 시행된 비정규보호법의 입법 취지는 비정규직의 무분별한 확산과 남용을 막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촉진하는 것에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2년 미만짜리 단기 계약을 맺고 계약 해지될 수 있는 위험이 존재했다. 특정한 사유가 있을 때에만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토록 하는 '사용사유 제한' 문제를 반영하지 못한 결과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같은 대책 마련 요구를 외면해 온 정부와 정치권이, 예정된 2년의 시간이 임박해서야 뒤늦게 부산을 떠는 건 모양이 사납다. 게다가 여야는 고용보장과 차별시정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은 여전히 뒷전이고 오로지 '유예기간'만을 가지고 논의를 제한시켜버리고 있는 점이다.

그들이 외면한 '해고의 추억'

▲ 2007년 비정규보호법 시행 이후 이랜드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은 외주화와 대량 해고에 직면해 오랜 파업을 벌였다. ⓒ프레시안

지난 2년 동안 대통령이 보지 못했던, 국회의원들이 외면했던 풍경들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몸으로 겪어야 했다.

2년 전 비정규직법이 통과되고 나서 몇몇 기업들은 느닷없이 직접고용 비정규직의 '외주화'를 시도했다. 직접고용 기간제에서 파견, 용역, 하청 등 간접고용으로 전환하여 비정규법상의 기간제한과 차별 금지조항을 모두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코스콤, 기륭전자, 이랜드-뉴코아, KTX와 새마을호, 광주시청….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업장에서 외주화를 추진해 비정규보호법의 제한은 물론 사용자 책임성도 동시에 벗어날 수 있었다.

비정규보호법의 틈을 노려 미리부터 계약을 해지해버리거나 단기계약으로 전환한 사례도 있었다. 이랜드에서는 유통서비스 비정규노동자들에게 3, 6, 9 개월짜리 단기 계약을 요구했으며 심지어 '0개월'짜리 계약서도 등장했다. 2년 이상 고용시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법안의 제한 때문에 오히려 2년보다 더 짧은 단기 계약을 맺어왔던 것이다.

비정규보호법 시행 이후 이른바 '정규직 전환의 모범 사례'로 꼽힌 사업장도 몇 군데 있었다. 우리은행 등의 은행권과 이마트, 홈플러스 등의 유통권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이들 기업들이 전환했던 일자리는 일반 계약직보다 고용은 보장되지만 임금과 복지에선 차별적인, 이른바 '무기계약직'이었다. 그러나 명목상 '비정규직 차별'이 더 이상 아니기에 법안에 명시된 차별 시정 대상에선 피해갈 수 있었다.

모두 대통령도 정치권도 망각해버린, 2년 전 비정규보호법이 만들어낸 '해고의 추억들'이다.

'서민 행보' 와중에 서민 고통은 현재진행형

▲ ⓒ청와대
서민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대통령의 '서민 행보' 와중에 최저임금은 간신히 삭감을 면했고, 대통령이 시장에서 상인들과 사진을 찍던 그날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노동시장 유연화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니나 다를까, 기업형 슈퍼 때문에 생계가 힘들다는 재래시장 영세 상인들에게 대통령은 '인터넷으로 농촌과 직거래하면 된다'는 묘안을 내놓기도 했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29일 기자회견에서 'MB 서민정책 추진 본부'를 만들어 '서민 부자 만들기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된다면야 모르겠지만, 서민의 대변자를 자칭하며 무의미한 말싸움만 반복하고 있는 정치권과 서민들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너무도 커 보인다.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70미터 첨탑에 오른 노동자들과 대형마트에 손님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아귀다툼해야하는 서민들에게, 여전히 일상은 '말'로 설명될 수 없는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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