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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전쟁 가능 국가' 되기 위해 '진주만' 위령하는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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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전쟁 가능 국가' 되기 위해 '진주만' 위령하는 역설

전쟁 희생자 위령했지만…사과는 없어

아베 신조 (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세계 2차대전 당시 공습을 벌였던 진주만을 찾았다. 겉으로는 '역사 화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속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집권 이후에도 미일 관계를 돈독히하려는 포석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7일(현지 시각) 미국 하와이 주 진주만에 위치한 애리조나기념관을 방문해 전쟁 희생자들을 위령했다. 애리조나 기념관은 지난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으로 침몰한 미국 함정 애리조나함 위에 세워진 추도 시설이다.

애리조나기념관에서 헌화를 마친 아베 총리는 진주만-히캄 합동기지로 옮겨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성명에서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며 자신들이 2차 대전 이후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겠다는 이른바 '부전(不戰)'의 맹세를 지켜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이번 성명에서는 과거 공습에 대한 어떠한 사죄도 없었다. 그는 "전쟁을 하던 미국과 일본은 이제 '희망의 동맹'이 됐다"면서 "이는 '화해의 힘' 때문"이라고만 말했다.

아베 총리는 과거 적대적인 관계를 넘어, 미국인들이 보여준 "관용의 힘"에 감사하다는 뜻을 표한 뒤 "미국과 일본의 후세, 그리고 세계 사람들에게 진주만이 화해의 상징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 미국 하와이주 진주만을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 두번째)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과 함께 애리조나기념관을 찾아 헌화한 뒤 진주만 공습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아베 총리의 이번 방문은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이후 미일 양국이 보여주고 있는 역사 화해의 일환으로 보인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히로시마(広島)의 평화기념공원을 방문, 원폭 희생자들을 추모한 바 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 역시 희생자들의 영령을 위로했을 뿐, 미국의 원폭 투하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는 하지 않았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총리 모두 양국의 군사 동맹을 위해 역사 화해의 제스처를 취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공식적인 사과를 할 경우 자국 국민들에게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시대' 맞이하는 아베, 조급해졌나

아베 총리의 진주만 방문 배경을 두고 다양한 관측이 제기됐다. 지난 11월 17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를 만난 이후 오바마 대통령이 불편해하는 심기를 드러내자, 이를 달래기 위한 행보였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오바마보다는 미래 권력인 트럼프와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데 방점이 찍혀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 지난 5일 진주만 방문 계획을 발표하며 아베 총리는 "미래를 향해 동맹 강화의 의의를 세계에 발신하는 기회로 삼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오바마 정부 집권 기간 동안 미국과 안보 협력 강화를 통해 전범국가에서 보통국가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아베 총리 입장에서는 오바마 정부 때 구축했던 미일 관계를 트럼프 집권 이후에도 이어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 운동 당시 일본과 한국 등 기존 동맹국가에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제기하는 한편,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는 식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미국의 힘을 등에 업고 보통국가로 탈바꿈하려는 일본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특히 러시아와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트럼프 당선자가 집권 이후 동아시아에서 러시아와 손을 잡고 관계를 개선해 나간다면, 일본의 역내 위상은 과거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 27일(현지 시각) 진주만-히캄 합동기지에서 성명을 발표하는 아베 신조(오른쪽)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아베 총리는 세계 어느 국가 정상보다 먼저 트럼프 당선자를 만났다. 이번 진주만 방문 역시 트럼프 당선자를 비롯해 공화당의 주요 지지 세력인 재향군인들을 달래고, 이를 통해 지속적인 미일 관계 강화를 꾀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한편 중국 외교부는 27일 (현지 시각) 아베 총리의 진주만 방문과 관련, "일본은 미국이 아닌 2차 세계대전 당시 피해를 입은 아시아 국가들에게 먼저 사과하라"고 일침을 놓았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아베 총리가 진주만을 방문하는 것으로 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청산하려 한다면 이는 일방적인 생각"이라며 "일본의 지도자들이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엉뚱한 이야기로 얼버무리거나 쉬운 일만 골라서 하면 안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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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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