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연 우리 삶의 주인일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몸담은 사회는 우리로 하여금 내 삶의 주인이 되게끔 응원할까?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남의 대리자가 되기를 강요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재벌의 욕망을 대리해 처리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자신의 욕망을 처리할 대리자를 거느렸다. 어쩌면 우리 삶이 전부 이럴지도 모른다. 우리는 나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가까운 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살았을 지 모른다. 그렇게 희생당한 이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꺼이 나의 대리자가 되기를 강요할 수도 있다.
<대리사회>(김민섭 지음, 와이즈베리 펴냄)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대리운전기사다. 평생 나의 차만 몰다, 생계를 위해 남의 운전석에 앉은 지은이는 순간 깨닫는다. 이 차에서 나는 운전하는 것 외에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내 마음대로 라디오 볼륨을 줄이지도, 춥다고 히터를 켜지도, 심지어 운전석 위치를 조정할 수도 없다. 이 차는 온전히 손님(차주인)의 소유물이다. 나는 그를 대리해 이 차를 운전할 뿐이다. 운전석을 벗어나고야 저자는 자신이 그의 대리자였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생각은 끝없이 확장한다. 대학에서 보낸 8년간 나는 대학의 대리자였을 뿐이었다. 어쩌면 우리 사회 전부가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 사회를 대리사회로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
김민섭은 지난해 큰 화제를 모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은행나무 펴냄)의 저자 '309동1201호'의 본명이다. 노동자임에도 노동의 사각지대에 놓여 노동자로서 정당한 대우를 전혀 받지 못한 채, 미래에 묶여 살아가는 대학 시간강사의 삶을 고발한 이 책은 '살기 위해 맥도날드 물류하차 알바를 하며 처음으로 노동자로서 대접받은' 저자의 경험이 세밀하게 녹아들어 큰 반향을 얻었다. <대리사회>는 김민섭이 본명으로 낸 첫 책인 셈이다.
이 책 출간 한 달 후, 지난해 말 김민섭은 8년을 바친 대학을 나왔다. 그리고 올해 5월 말부터 카카오드라이버의 대리기사가 됐다.
처음 그간 지내던 강원도 원주에서 차를 몰던 김민섭은 올해 여름부터는 가족과 잠시 떨어져 고향인 서울 망원동으로 이주해 서울 곳곳을, 그리고 서울 외곽도시 곳곳을 누비는 대리운전사가 되어 새벽을 달린다.
<대리사회>는 대학에서의 경험과 대리기사의 경험을 녹여 우리 사회를 대리사회로 규정하고, 이 사회는 우리를 대리인간으로 강요함을 고발한다. 인문학적 성찰이 가득한 글이 생생한 저자의 경험과 맞물려 생명력 있는 책으로 완성됐다.
지난 12일 오후,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김민섭과 나눈 인터뷰를 요약했다. 인터뷰에서 김민섭은 '한 발 물러서서 내가 머물던 공간을 응시'할 것을 독자에게 주문했다. 촛불집회는 그간 우리가 살던 세상에 더는 휩쓸려가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다짐이라고, 더는 대리인간으로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라고 그는 해석했다.
대리기사가 바라본 밤의 세상
프레시안 : 많은 직업 중 굳이 대리운전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김민섭 : 모든 노동은 대리자 성격을 지닌다. 남이 못 하거나, 남이 하기 싫은 일을 대신하고 보수를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대리운전처럼 대리자성을 노골적으로 표방한 노동이 없다.
대리한다는 건 나의 주체성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다. 누군가의 일을 주인의 자리에서 대신하지만, 그 동안 나 자신은 사라진다. 그렇다면, (그간 대리자로 살아온 내가) 그 일을 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대리운전을 통해 여태까지의 나를, 그리고 우리 사회를 규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프레시안 : 그 생각을 떠올린 건 대략 언제부터인가?
김민섭 : 올해 3월경.
프레시안 : 생각을 책으로 정리하기까지 시간이 얼마 안 걸렸다.
김민섭 : 7월 중순쯤 한 손님의 차에서 내리면서 '내가 존재한 사회 전체가 타인의 운전석'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운전한 건 아니지만, 노동하다 보니 대리운전을 소재로 글을 쓸 수 있겠다 싶었다.
이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초고를 10월 말경 넘겼다. 3개월 정도 밤에 운전하고 새벽에 글 썼다.
프레시안 : 책 쓰는 동안 하루를 어떻게 보냈나? 무척 힘들었을 것 같은데?
김민섭 : 저녁 6시경부터 콜이 온다. 첫 콜을 받은 후부터 새벽 3~4시 정도면 콜이 끝난다. 이 시간이면 나는 남양주나 시흥, 파주 등지에 있다. 서울로 바로 돌아올 수 없다.
어딜 가든 24시간 불 켠 곳이 있다. 24시간 운영하는 분식집, 해장국집이다. 이곳에 가면 나를 닮은 사람들(밤에 일하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먹고 있다. 여기서 밥 먹으며 첫 차가 올 때까지 두 시간 정도씩 글을 썼다.
이때 쓰는 글이 (책상에서 쓰던 글보다) 마음에 들었다. 첫 차 타고 집에 돌아와 두 세 시간 정도 잔 후, 다시 글을 쓰고 콜 받아 나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프레시안 : 매일 그렇게 일하고 몸이 견딜 수 있나?
김민섭 : 새벽 2시 정도 되면 선택의 기로가 온다. 콜을 추가로 받아 남양주로 갈 것이냐, 아니면 심야버스를 타고 집에 들어가 5시간 잘 것이냐의 기로다. 반반 정도로 했다. 다만 새벽 3시쯤 집에 들어와도 글 한 편은 반드시 완성하고 잠들었다.
프레시안 : 이 책은 밤의 세계에 사는 사람이 쓴 새벽의 글로 채워졌다고 봐도 되겠다.
김민섭 : 그렇다. 책상에서 쓰는 글보다 새벽에 일하다 문득 떠오른 문장이 더 마음에 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문에 원고 마감이 다가왔을 때도 일부러 꾸역꾸역 대리운전하러 나갔다.
프레시안 : 책에 일지를 기록해뒀는데, 많을 때는 하루 몇 번 운전했나?
김민섭 : 가장 많은 날은 9콜 정도 받았던 것 같다(서울의 경우, 대리운전 기본요금은 1만5000원이다. 이에 더해 거리에 따라 금액이 추가된다.).
프레시안 : 많이 번 날은 하루 얼마 정도 벌었나?
김민섭 : 20만 원 정도. 적은 날은 10만 원 미만. 이런 저런 것 떼고 대략 한 달에 160~200만 원 정도 번다.
프레시안 : 주로 대리 콜이 많은 날이 있나? 특별히 적은 날도?
김민섭 : 김영란법 발효 전날에 콜이 많이 왔다. 대리기사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 '김영란법 시행 전이라고 많이들 마신다'는 글이 올라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된 날에도 콜이 아주 많았다. 정말 콜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쏟아졌다. (웃음) 하지만 그날은 나도 술 마시느라 콜을 안 받았다. 다른 대리기사도 다들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 같다. 카카오에서 긴급 공지가 왔다. 오늘 운행만 해주시면 7000원을 더 준다고 말이다. 기사는 없고, 콜은 쏟아지니 그랬던 것 같다.
평일로 따지면, 당연히 목요일과 금요일에 콜이 가장 많다. 홍대 인근만 보면, 토요일 아침 7시부터 10시 사이에 클럽 밀집 지역에서 콜이 많다.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
프레시안 : '대리사회'는 간단히 말해, 모든 사람을 주체자로서 올곧게 서지 못하도록 하고, 사람들은 모두가 무엇인가의, 누군가의 대리자가 되어 살아가는 사회라는 뜻이다. 이 책의 주제를 한 마디로 압축한 글이 띠지에 나온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인 듯하다. 이 글의 의미는 무엇인가?
김민섭 : 우리는 내 차 운전석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 노래 듣고 싶으면 노래 듣고, 추우면 히터를 켠다. 운전석도 내 몸에 맞게 조절한다.
하지만 타인의 운전석에 앉으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대리운전 하러 가면 의자가 뒤로 너무 젖혀진 경우가 있다. 내 몸에 맞게 조절할 수 없다. 사이드미러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 이 상황은 이 차의 주인이 자기에게 가장 잘 맞게 조절해 둔 상태이기 때문이다.
대리인간이 되면, 주인의 것을 내가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된다는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대리기사는 내 코의 주인도, 내 눈의 주인도, 내 언어의 주인도 아니다. 무엇보다, 내 사유의 주인도 아니다.
대리운전 나가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세 마디다. "네." "맞습니다." "대단하십니다." 대답, 동의, 칭찬이다. 사유하지 않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극치다.
처음 운행을 마쳤을 때는 나의 신체와 언어를 돌려받은 후련함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그런 생각이 들지 않고 대리기사로서의 내가 익숙해졌다. 더 시간이 지나자, "네" "맞습니다" "대단하십니다"는 말은 내가 살면서 늘 해온 말임을 깨달았다. 대학에서도 교수님에게 난 그랬다.
결국, 타인의 운전석은 대리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 삶을 축소한 공간일 뿐이다. 이 사회 어디서나 나는 주체로서 살아가지 못했다. 그 순간, 이 사회를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으로 규정하게 됐다. 그렇다면 이 사회는 대리사회다. 그리고 대리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대리인간이다.
프레시안 : '누가 시키는 대로 생각 없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 않나? 차라리 대리자가 되어버리는 게 마음 편할 수 있다.
김민섭 : 맞다. 순응하면 편하다. 주체적 인간으로서 상대방과 대화하면 사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빠지니 (사유할 필요가 없어) 정말 편하다. 대리운전할 때도 이런 기분을 느꼈다. 생각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더라. 손님의 비위에 맞춰 대답만 잘 하면 팁을 주기도 하니 좋을 때도 있다.
프레시안 : 포기하면 편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체로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김민섭 : 모든 게 옳다고 생각하고, 일상을 불편해하지 않으면 얼마나 편할까. 아무리 현실이 나빠도 '대기업 순이익이 늘었다'는 뉴스에 '나라가 부강해지고 있다'며 자부심을 느끼고 만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나. 당장 미디어가 우리에게 편하게 살기를, 고민하지 않고 살 것을 요구한다. TV를 틀면 모두가 맛있게 먹는다. 뉴스는 언제나 '우리 경제가 좋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무 의심 없이 저들의 말을 믿었다가 나중에 찾아오는 자괴감은 우리가 견딜 수 없다. 결국 우리는 불편한 채 살아가길 원하는 주체자다.
프레시안 : 대리사회를 채우는 여러 하부 개념도 제시했다. 그 중 하나가 대리국민이다. 대리국민이란 무엇인가?
김민섭 : 우리는 국민국가의 일원이다. 국민국가의 주체인 정부는 사유하지 않는 국민을 기르려 한다.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국가를 향한 모욕을 자신에 관한 모욕으로 받아들이며, 국가를 향한 찬사를 자신에의 찬사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국민국가의 국민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어버이연합이나 박사모와 같은 집단에 속한 분들이 그렇지 않을까. 그들은 자신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강요된 환상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대리국민이다. 국민국가의 이상향이다. 내가 사유하는 주체가 된다면, 국가와 나는 별개가 된다. 그들은 사유하는 주체로서 서지 못했다.
프레시안 : 저자에 따르면 그들은 주체자가 아닌 대리인으로 살아가는 존재다. 그들 역시 피해자인 셈이다.
김민섭 : 당연히 피해자다. 개인을 구조 안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도록 만든 구조 아래에서 그들은 일방적으로 국가의 폭력에 노출된 결과, 국가를 내면화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볼 때 화나지 않는다. 슬프다.
프레시안 : 대리운전하면서 이런 손님을 만난 적은 없나?
김민섭 : 많이 만나진 못했다. 카카오드라이버를 쓰는 주요 이용자는 30~40대다. 대부분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놓고 밝히지 않는 편이다.
50대 이상 손님은 대체로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자기 인생역정을 들려주시는 분이 있고, 나머지는 정치 이야기를 하는 분이다. 나는 당연히 대리기사로서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라고만 답한다.
우리 안의 최순실을 경계할 때
프레시안 : <대리사회>는 밤의 경험을 담은 다양한 에피소드로 읽는 재미를 준다. 읽는 이도 불쾌했던 경험이 있다. 절대적인 존재인양 갑질을 일삼는 손님의 이야기다. '나쁜 손님'으로 규정했는데, 자세히 설명해 달라.
김민섭 : 대리운전 콜 두 개를 동시에 부르는 손님이다. 이러면 대리기사 두 명이 자신에게 달려온다. 그 둘은 돈을 벌기 위해 1킬로미터 가까이를 뛰어간다. 손님은 그 중 먼저 온 사람에게 차를 맡기고 가 버린다. 조금 늦은 사람은 당연히 그 시간을 보상받지 못한다.
나도 이런 경험을 많이 했다. 몇 번은 빨리 갔고, 몇 번은 늦었다. 다행히 빨리 가서 운전하면 다행이지만, 그럼에도 매우 기분이 나빴다. 차에서 내리고 싶고, "그러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싶다. 늦게 간 경우, 나를 부른 손님은 전화를 받지 않거나, 일방적으로 콜을 취소해버린다. 그때의 감정은 쉽게 단어로 정리하기 어렵다.
사람을 경쟁시키는 갑질은 특히 나쁘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우리 일상에 갑질하는 사람이 많다. 아파트 경비원 모독 사건이나 주차요원 모독 사건 등이 올해 내내 보도됐다. 왜 이런 사람들이 나온다고 보나?
김민섭 : 나는 이 일을 하며 평범한 여러 사람을 만났다. 평범한 우리 이웃이 갑의 위치에 오르는 순간 어떻게 돌변하는가를 지켜봤다.
갑의 자리에서 더 조심하는 사람이 있다. 상대방을 나와 동등한 주체로 대우하는 사람이다. 반면, 많은 사람이 자신이 갑이 되는 순간 최순실처럼 돌변한다.
프레시안 : 우리 안에 숨겨진 평범한 악이 드러나는 순간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
김민섭 : 그렇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광장으로 나온 230여만 명의 사람 중 분명 내가 만난 나쁜 손님도 끼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평범한 이들은 지금 누구보다 분노할 것이다.
타인의 운전석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나는 '내 안의 최순실', '내 안의 박근혜'를 찾는 게 지금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부터 꾸준히 반성한다. 타인의 운전석에서 무엇보다 내가 갑의 자리에 갔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느냐를 많이 배운다.
프레시안 : 비단 대리운전의 세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이른바 갑질을 강요하고, 갑질에 의해 돌아가는 것 같다.
김민섭 : 비단 한국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본다. 대리사회의 괴물이 박근혜일까? 최순실일까? 재벌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들 역시 무언가 욕망의 대리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정점의 괴물은 무엇이냐? 우리 삶을 규정하는 사조랄까, 굳이 말하자면 자본이 가장 가까울 것이다. 전 세계가 신자유주의적 자본의 욕망을 우리 사회에 최대한 충실히 반영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내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물론 우리 모두는 타인의 욕망을 대리하며 산다. 시대의 욕망을 대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내가 '사유하는 주체'로 설 수 있다면, 지금 내가 대리하는 욕망과 마주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대리한 욕망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나의 욕망과 마주할 수 있다면, 내가 기꺼이 받아들일 만한 욕망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천박한 욕망을 구분할 수 있다.
광장의 촛불 시민은 더는 천박한 욕망을 대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유하는 주체로서 그간 눈감아 온 욕망과 마주하기 시작했다. 내가 대리한 욕망과 마주할 수 있다면, 이를 거부할 수 있다. 사유하는 주체임을 자각하는 사람이 더 많은 사회라면, 이른바 갑질 논란도 더 줄어들지 않을까.
프레시안 : 자본에의 욕망이 우리 사회를 대리사회로 만드는데, 우리가 주체자로서 그 욕망을 마주할 수 있다면 거부할 수도 있다?
김민섭 : 욕망을 거부하거나, 선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도 대리인간이었다고 보나?
김민섭 : 처음에는 박근혜, 최순실을 대리사회의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도 대리인간일 뿐이다. 자본의 대리인간이면서, 동시에 주변인을 끊임없이 대리인간으로 만드는 괴물이다.
프레시안 : 촛불 이후로도 우리가 대리인간이 아니라 주체적 인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민섭 : 촛불집회를 통해 순응자로 전락했던 우리 몸에 균열이 났다. 한 번 난 균열은 오래간다. 지금 바라본 균열을 다시 외면하지 않고, 사유하는 주체로서 오랫동안 간직했으면 한다.
광장의 경험을 겪은 모든 이가 주체가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80년대 광장의 선배들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들 스스로 만든 욕망의 괴물이 된 이도 있다. 그럼에도 지금 광장에서 찾아낸 균열은 매우 소중하다는 점은 틀림없다.
박근혜가 늦게 퇴진할수록 나는 고맙다. 더 많은 이가 자신의 균열을 발견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한 걸음 물러서라
프레시안 : 본문 에피소드 중, 저자가 몸 담았던 대학으로 가는 콜을 고민 끝에 수락하는 대목이 나온다. 대학 바깥에서 그곳을 바라보며, 저자는 그간 자신이 대학으로 대변되는 누군가의 대리자였음을 깨닫는다. 김민섭을 대리자로 전락케 한 대학의 그것은 무엇일까?
김민섭 : 예전에는 대학이라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 역시 대리 공간일 뿐이다. 대학은 자본 논리의 선봉에 선 공간이다.
대학은 모두에게 정규직을 꿈꾸게 하는 공간이 되었다. 모든 대학생에게 대기업 정규직, 공기업 정규직, 공무원의 꿈을 주입한다. 문제는, 대학이 정규직에의 욕망을 부추기면서도 정작 조직 구성원은 철저히 비정규화한다는 점이다. 학생에게 밥을 주는 사람, 강의실을 청소하는 사람,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모두 비정규화했다. 이처럼 역설적인 공간은 없다.
프레시안 : 노동자의 대리인간화를 '대리노동'으로 규정했다. 이 생각을 (시간강사 시절인) 2013년에도 취업을 시도한 대리운전 업체 면접 경험에 녹였다.
김민섭 : 시간강사는 방학 때 돈을 한 푼도 못 번다. 그래서 원주의 대리운전 업체에 전화 문의했다. 면접에 올 때 돈 십 몇 만 원을 들고 오라더라. 유니폼 구입비를 직접 내라는 이유였다. 매일 보험비 3000원도 내야하고, 출근할 때마다 출근비도 내야 했다. 대리기사 애플리케이션 6개를 설치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개당 매월 1만5000원씩 받더라.
이건 내가 아는 노동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노동이란, 노동자가 노동을 제공하고 사용자는 그에 합당한 임금을 제공하며, 이 때 노동에 필요한 모든 물품도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노동자도, 사용자도 노동의 주체가 되는 가장 기초적인 조건이다. 그래서 당시는 대리운전을 하지 않았다(카카오 드라이버는 보험료 면제, 미터기 요금제 등을 도입해 대리운전업계에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대리운전업체와 카카오 간 갈등도 커졌다. 이 갈등은 <대리사회>에도 한 챕터 분량으로 소개된다.).
대리운전뿐만 아니다. 파견직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를 연결해 이익을 얻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이와 같은 악습이 사회 전반으로 번지는 것 같다. 비정규 노동자가 노동 현장에서 다쳐도 "우리는 책임 없다"고 발뺌하는 사용자 문제가 노동 현장 곳곳에서 벌어지지 않나. 이런 게 우리 시대의 노동이라면, 너무 슬프다. 우리의 모든 노동이 대리노동화하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이 책을 보면 근본적으로 노동하는 우리 모두는 대리 노동자인 것 같다. 비단 비정규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자영업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무언가의 대리 노동자로 전락해버렸다. 우리 사회가 점점 강고한 대리사회로 나간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김민섭 : 이 시대의 노동이 그렇게 변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도 내 노동의 주체가 아니다. 그들 역시 무언가의 욕망을 대리하며 노동한다. 누군가는 그 욕망이 천박하고 모욕적이라도,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프레시안 : 우리가 주체적인 노동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민섭 : 한 걸음 물러서면 된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를 경쟁으로 내몬다. 나아가기만 강요한다. 우리 교육부터 "노력해서 성취하라"고 가르치지 않나.
모든 사람은 자신을 주체로 믿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자신이 서 있던 공간을 바라보면 자신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이 공간에서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이때 시스템이 가졌던 균열이 보인다. 균열과 마주하면 잘못된 걸 알게 된다.
중요한 건, 보통 사람은 물러서서 볼 줄 모른다는 점이다. 경쟁에서 밀려나고서야 (타의에 의해) 균열과 마주하게 된다. 그때 잘못된 걸 되돌리고자 노력해도 이미 방외인이 되어버린 후다.
하지만 스스로 한발 물러서 바라본 사람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후 언제든 (주체적으로)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이후 그 사람은 비록 행동과 언어가 통제되더라도, 사유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그가 언젠가 중심부로 한발 더 나갔을 때 그 균열을 더 많은 사람과 함께 고칠 기회를 얻는다.
사유하지 않는 주체는 그 균열의 존재도 모른다. 균열을 외면하거나, 다른 사람이 균열을 바라보려 할 때 보지 못하게 막아버린다.
우리가 주체적으로 대리인간을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주체라고 믿을 때, 한발 물러서서 질문을 던진 후 다시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나는 대학에서의 8년간 그래보지 못했다. 밀려나고서야, 다시 한 번 타인의 운전석에 앉고서야 알았다. 나는 힘들게 배웠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는 '나는 주체적으로 살아가는가' '나는 이 공간에서 무엇으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길 바란다.
프레시안 : 물러선다는 게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김민섭 : 그렇다. 보통 패배로 여기고, 잉여로 전락하리라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한발 물러서는 게 가장 주체적인 행위다. 회사를 그만둬라, 그곳에서 나오라는 얘기가 아니다. 생각만이라도 한 걸음 물러선다면, 그만큼 보이는 게 더 많아진다.
프레시안 : 우리가 누군가의 대리인간이었을뿐만 아니라, 타인을 대리인간으로 전락케 한다는 내용을 가족 이야기로 풀어냈다. 아주 뜨끔한 부분이다.
김민섭 : 타인의 운전석에서 을로서 존재하게 되자, 거꾸로 내가 갑이 되었던 적은 없을까, 내가 괴물이 된 적은 없을까 생각했다. 난 계속 그래왔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내 가족을 대리인간으로 만들어 왔다.
대학에 있을 때, 공부한다는 이유로 아이의 걸음마를 못 봤다. 아내에게, 어머니에게, 심지어 장모께도 "내가 논문을 쓰지 못하면 정규직 교수가 될 수 없으니, 지금은 견뎌라"고 했다. 한국의 대학에서 일반적 상황이었다. "공부하려면 아내가 육아를 전담해야만 해" "어머니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 돼"라는 말을 모두가 부끄럽지 않게 했다. 우리는 성공을 위한다는 핑계로 가장 사랑하는 가족을 대리인간으로 전락케 했다. 그들을 타인의 운전석에 앉아 대신 운전하도록 강요했다. 대리운전을 하고서야 이 깨달음을 얻었다.
대리기사는 대리기사를 알아본다
프레시안 : 요즘 일과는 어떤가?
김민섭 : 3주 정도 대리운전을 쉬고 있다. 밀렸던 원고를 쓰고, 술 약속을 집중적으로 잡았다. 그간 운전하느라 술을 못 마셔 인간관계가 파괴될 지경이었다.
프레시안 : 대리기사는 대리기사를 알아본다는 내용이 신기했다. 어떤 사람들인가?
김민섭 : 간절한 사람들. 밤에 간절한 사람은 대리기사다. 한 손에 핸드폰을 꽉 쥐고 있다. 눈에 레이저가 나오듯 핸드폰을 바라본다. 콜이 뜨면 바로 수락해야 하고, 외곽에서는 어떻게든 서울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끼리는 알아본다.
프레시안 : 지금 다시 가족에게 대리인간의 삶을 강요한 셈이 되는데, 언제까지 떨어져서 지낼 예정인가?
김민섭 : 그 생각을 계속 한다. 책을 쓰기 위해 아내에게 3개월의 시간을 허락받았지만, 그 3개월 역시 가족을 대리인간으로 만드는 시간이다. 그게 미안해 책 앞에 굳이 가족에게 사과하는 글을 넣었다.
프레시안 : 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딴 엘리트임에도 지금은 밤에 일한다. 비록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에서 대학의 모순을 통렬하게 고백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된 적은 없나? 어쨌든 그간의 꿈을 버린 셈인데.
김민섭 : 전혀. 지금이 정말 즐겁고 행복하다.
나는 대학에서 보낸 8년간 대학을 나온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자신을 대학의 주인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강의하고 연구하는 것도 즐거웠다.
나는 '밀려났다.' 강사로 일할 때 생계를 위해 맥도날드 물류하차 일을 했다. 자연스럽게 맥도날드와 대학을 비교했다. 맥도날드는 4대 보험도 제공했고, 나를 노동자로 대우했다. '나는 대학에서 무엇으로 존재했는가'라고 자문하게 됐다.
대학 바깥에서 배운 몸의 언어가 제공한 가치가 대학에서 8년간 배운 것보다 나았다. 그래서 후회는 전혀 없다. 연구실에 내 짐을 빼러 간 날도 행복했다. '이제 나는 더 큰 연구실로 나간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거대한 연구실임을 믿는다. <대리사회>는 내 믿음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프레시안 : 인문학협동조합 조합원이다. 거기서 어떤 일을 하나?
김민섭 : 조합 내부에 연구환경복지위원회가 있다. 젊은 연구자의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조직이다. 이곳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한다. 나는 특히 대학원생을 위한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
프레시안 : 앞으로도 계속 노동과 학문을 병행하고 싶다 했다. 준비 중인 다음 책이 있나?
김민섭 :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에서 대학의 균열을, <대리사회>에서 사회의 균열을 이야기했다. 큰 틀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대리사회의 괴물은 무엇으로 우리를 통제하는가. 도구의 하나가 언어다. 우리를 통제하는 그들의 언어는 무엇인가에 관해 '언어의 르포르타주'를 준비 중이다. 거리의 언어가 우리를 얼마나 통제하는가에 관한 책이다.
얼마 전, 운전하다가 어느 회사 화장실을 이용했다. 빌딩을 나오다 그 회사 사훈을 봤다. '우리는 남들보다 두 배 더 일한다' '우리는 남들보다 두 배 일찍 출근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다섯 가지 적혔다. 그런데, '우리 회사는 남들보다 월급을 두 배 준다'는 말은 없었다. 이런 언어가 우리를 통제하고, 그들의 말을 내면화하게끔 강요한다. 앞으로도 거리에서 바라본 사회의 균열을 이야기하는 작가로 남고 싶다.
프레시안 : 노동은 당분간 계속 대리운전만 할 생각인가?
김민섭 : 곧 대리운전에 복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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