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교착 상태를 즐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는 물론 2선 퇴진, 탈당 등에 대한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야권은 탄핵 외에 또렷한 방법을 못 찾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에 대한 탄핵도 그 시나리오를 생각해보면 여의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청와대가 여전히 상황 관리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헌법상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운영의 중심"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탄핵 외에는 대통령을 물러나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도 보인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가 "대통령의 하야는 있을 수 없다. 야당이 끝까지 대통령의 하야를 원한다면 차라리 탄핵을 하라"는 말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청와대가 이같은 입장을 보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폐족' 위기에 처한 친박계의 입도 터지기 시작했다. 윤상현 의원은 10일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 탈당과 지도부 퇴진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개헌론'을 띄웠다. 이장우, 이우현, 박맹우, 이헌승, 김명연, 김태흠, 박덕흠, 이채익 의원 등 강성 친박 8명은 모임을 가동했다. 청와대는 트럼프 당선자의 등장을 계기로 '외치'에 있어서 컨트롤타워를 자임했다.
친박계와 청와대는 '시간이 박 대통령의 편'인양 행동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친박으로 상징되는 정치 권력의 붕괴는 막을 수 없다
정치 전문가들은 향후 여권에 두 가지 모멘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당에 국한된 정계개편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박 대통령이 국회에 '책임 총리' 추천안을 던지면서 친박 진영과 야권이 교착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야당의 입을 일시적으로 틀어막은 데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향후 정치 일정은 박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첫째 모멘텀은,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체제의 붕괴다. 이는 시간 문제일 뿐 필연적이다. 현재 새누리당 지지율은 수직 낙하하고 있다. 10일 리얼미터는 새누리당 지지율이 최후의 보루였던 TK(대구·경북)지역에서조차 2위로 주저앉았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냈다. 충청권의 원로인 김종필 전 총리는 "내우외환이 한꺼번에 겹쳤다"고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유일한 여권 유력 주자였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새누리당에 합류할 가능성도 극히 낮아졌다.
현재 비박계 안에서는 정국 해법을 두고 백가쟁명이 진행되고 있다. 우왕좌왕하는 듯 보이지만 움직임은 있다. 일례로 친이명박계 일부는 탄핵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9일 국가전략포럼은 "대통령의 중대한 위법사항이 발견될 경우 국회가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권 행사를 주저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는데, 대표적인 반박(反朴) 정치인인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 그리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 이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새누리당 이정현 체제는 박 대통령의 '최전방 수호병'이다. 비박계의 강력한 지도부 퇴진 요구에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친박 지도부 체제가 와해될 경우 친박계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수사 선상에 오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최경환 의원 등이 현 정권에 깊숙히 관여했기 때문에, 최순실 사태 유탄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 측도 친박 지도부가 밀릴 경우, 급격한 붕괴가 발생할 것이라는 인식을 보이고 있다. 박 대통령 본인이 이명박 정권 말기에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친이계를 대거 숙청한 전력이 있다. 이정현 대표가 각종 비난에 시달리면서도 '총알받이' 역할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들이다. '폐족' 전락 위기에 놓인 친박계는 '밀리면 죽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붕괴를 막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박 대통령이 직접 범죄에 가담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등돌린 민심은 커지고 있다. 오는 12일 시민들의 박근혜 대통령 하야 시위가 먼저 주목된다. 정권 내부에서는 이 시위에 20만 명 가량의 시민이 모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경찰이 그간 집회 규모를 보수적으로 집계해 온 전례에 비춰보면 정권 내부에서도 이번 시위를 상당히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이미 새누리당 지지율은 바닥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차기 정권 재창출이 목표인 비박 진영의 공포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친박 지도부에 대한 공격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정현 체제의 퇴진을 이끌어 내고, 국정 운영에 직접 개입해야만 비박이 산다. 친박이 끝내 버틸 경우, 중·단기적으로 제 3지대 가설 정당을 세워 '비박 보수 진영'을 모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제기된다. 이런 상황이 실제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이미 박근혜 정권과 선을 그은 조선일보와 보수 종편들은 든든한 우군이 될 것이다. 결국 새누리당은 '친박당'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초라하더라도 당을 유지하는 것이 친박계에 중요한 이유는, 수사에 대한 방패막이로 정당이라는 정치 결사체 조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친박계 핵심 의원들이 줄줄이 수사 대상에 오르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 물론 이같은 시나리오대로 간다고 하더라도, 친박계가 소멸 단계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는 전망은 변하지 않는다. 친박이 무너지면 청와대는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이미 2007년 열린우리당을 목격했고, 2012년 한나라당을 목격했다.
우병우로 상징되는 검찰 권력의 붕괴는 막을 수 없다
두 번째 모멘텀은 청와대를 정점으로 하는 정부 장악력의 붕괴다. 이에 대한 가늠자로 정치권 인사들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구속 여부를 꼽는다. 법조계 내부에서는 법원이 이미 현 정권에 돌아섰다는 말이 나온다. 최근 법원은 백남기 씨 영장 청구 사태로 만신창이가 됐다. 검찰이 구속 요건을 명확히 정리해 우 수석에 대한 구속 영장을 청구할 경우, 법원 측에서 이를 기각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검찰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는 10일 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우 전 수석이 그간 받아왔던 혐의에 새로운 혐의가 추가됐다. 최순실 씨의 핵심 측근인 차은택 씨 주변의 각종 비리를 눈감아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는 직무 유기에 해당할 수 있다.
언론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및 문고리 3인방 등에게 문서 유출, 기업 압박 등을 지시했다는 검찰발(發)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당시처럼 검찰은 '언론 플레이'를 진행 중이다. 피의자의 핵심 진술이 줄줄 새고 있다. 박 대통령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정황까지도 신문지상을 오르내린다.
특히 우 전 수석이 검찰 관계자들 앞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이 보도되면서 검찰 수뇌부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고 한다. 만약 우 전 수석에 대한 조사가 미진할 경우, 역풍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조직 보호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검찰이 인기 없는 정권과 함께 몰락하지 않기 위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만약 우 수석을 불기소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면 그 역풍은 고스란히 검찰의 몫이다. 검찰 수뇌부가 정권과 함께 가라앉을 수도 있다.
차 씨가 '황태자'로 군림했다는 문화계 뿐 아니라, 경제계 등에서도 내부 고발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6일 JTBC 보도는 이같은 현상을 잘 보여준다. JTBC 취재진이 최순실 씨 조카 장시호 씨가 주도해 설립한 '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급습하자 문화부 공무원들이 황급히 가방을 챙겨 자리를 뜨는 모습이 그대로 방영됐다. '현장 급습'은 내부자 제보 없이 절대 불가능한 취재다. 이는 박근혜 정권의 정부 장악력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우 전 수석은 박 대통령의 '오른팔' 역할을 했던 인사다. 정윤회 문건 파동 때 일처리를 담당했고, 이후 검찰과 국정원을 이용한 박 대통령의 정무 기획에 깊숙히 관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 전 수석 개인 비리 의혹이 제기됐을 때도, 박 대통령은 그를 내치지 않았다. 그런 우 전 수석마저 구속될 경우 청와대는 '멘붕(멘탈붕괴)'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권을 유지해 온 축은 세 개다. 새누리당(친박), 사정기관(검찰), 그리고 국정원이다. 친박과 검찰이 무너지는 것은 현재 시간 문제다. 국정원은? 이미 우 수석 인맥이 국정원 내부에서 힘을 잃었다는 말이 들린다. 청와대 민정라인이 붕괴되면 국정원도 자연스레 컨트롤타워를 잃게 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가 한가하게 야당과 '정치 게임'에 임하며 수 싸움에 몰두하는 상황에서도 정권 내부는 붕괴 중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같은 사실을 직시해야 해법이 나온다. 붕괴의 시점을 늦출수록, 피해만 커진다. 지금이라도 깨끗하게 권력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해, '책임 총리'의 늪에 빠진 국회, 나아가 국정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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