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이날 밤 9시30분 경 민주당이 점거하고 있는 본회의장 앞 로텐더 홀에서 김형오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 행사와 85개 쟁점법안의 직권상정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로써 여야 협상은 완전 원점으로 돌아가, 사실상 지구력 싸움으로 돌입했다. 언제든 충돌의 개연성이 다시금 높아졌음은 물론이다.
난상 토론, '협상 무용론'이 주된 기조
▲ 2일 밤 의총 직후 민주당이 점거하고 있는 본회의장에서 초강경 결의문을 채택하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뉴시스 |
이날 의총에서는 협상무용론이 대세를 이뤄 '현 정국의 본질은 여야 협상이 아니라 국회를 점거하고 있는 야당의 불법행위 해소'라는 의견이 호응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기조는 의총 직후 채택된 결의문에 그대로 반영됐다. 결의문에서 한나라당은 "지금도 국회는 민주당의 불법 폭력점거로 완전 마비되고, 국회의 입법활동은 전면 중단된 상태다"면서 "민주당은 민의의 전당 국회를 자신들의 불법폭력을 미화하는 선전선동만 자욱한 해방구로 전락시켜 버렸다"고 민주당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한나라당은 "그럼에도, 이 난장판 국회를 조속히 바로잡아야 할 국회의장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게 국회의 현주소다"면서 "지금은 국회를 정상화시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국회의장이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이다"고 여야 협상을 기대하는 김형오 의장을 압박했다.
한나라당은 "국회의장은 현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구국의 용단을 내려야 한다"면서 3개항의 요구조건을 제시했다.
△민주당은 당장 국회 불법 폭력 점거를 풀고 국회정상화에 임하라 △국회의장은 즉각 국회본회의장, 상임위회의장, 로턴다홀에 대해 질서유지권을 발동하고, 민주당의 폭력사태를 해소하라 △국회의장은 한나라당이 요구한 85개 개혁법안을 직권상정하라. 이로써 공은 다시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넘어갔다.
이에야스 아니라 노부다가 되게 생긴 홍준표
사면초가에 처한 홍준표 원내대표는 의총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폭력점거를 해제할 때까지는 협상을 하지 말자는 것이 대다수 의원들의 이야기다"면서 "보름 간의 폭력점거에도 불구하고 질서유지권을 발동했다는 말만 들었지 집행이 되지 않고 있다. 국회의장은 고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줘야 한다"고 '김형오 책임론'에 가세했다.
홍 원내대표는 '국회 자체 물리력으로 볼때 질서유지권 행사도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단 한 번이라도 (물리력을 행사)한 적이 있냐. 해보지 도 않을걸 왜 발동했냐. 그럼 국회의장이 공갈친건가"라면서 "해보고 경위들이 터지고 깨지고 하는 모습을 국민이 봐야하는거 아닌가. 그 다음 경위 숫자를 늘리던지…"라고 답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 제기된 '역자해론'에 힘을 실은 것.
그는 '점거가 해소되지 않으면 어떤 대화에도 나서지 않겠냐'는 질문에는 "의원들 대다수는 응하지 말자는 것이다. (응할지 말지)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홍 원내대표는 "(대화를 재개하면 현재 잠정합의를)기초로 출발하는 것이다"고 말해 대화의 끈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선진과 창조 문국현 대표 참석 문제에 대해선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다"며 문 대표를 협상의 한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에만 해도 "새가 울기를 기다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식으로 하겠다"며 장기전을 예고했지만 '새가 울지 않으면 그 새를 죽이는' 오다 노부다가 식 작전으로 떠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설령 대화가 재개되더라도 내부장악력을 상실한 그가 유연성을 발휘할 여지는 극히 좁아졌다.
고민 깊어진 김형오 의장
한나라당의 초강경 회귀로 인해 '8일까지 기다려 보고 안 되면 최소한의 법안만 직권상정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온 김형오 의장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의 기류 변화 중심에는 친이 직계 의원들이 서 있고 그 배후에는 청와대의 의중이 깔려있기 때문에 김 의장에 가해지는 압박은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이날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연설을 통해 "국회만 도와주면 경제 살리기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대목이 한나라당의 강경론을 증폭시키고 김 의장을 고립무원의 처지로 내몬 데에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물리력을 보태지 않을 경우 김 의장이 취할 수 있는 방도는 극히 제한적이다.
한나라당은 '경위들이 깨지는 모습을 보여라'고 김 의장을 압박하고 있지만 이같은 경우 의장의 권위는 땅에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같은 경우를 배제하면 실질적 방도는 '단전단수' 정도만 남게 된다. 또 85개 항의 직권상정을 강행할 경우 1년 이상 남은 임기 동안 야당의 협조는 포기해야 한다. 이래저래 움직일 공간이 좁다는 이야기다.
한편 한나라당의 강경 회귀로 인해 민주당 일각에서 꿈틀거리는 기미가 보이던 유화론도 잠잠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민주당 조정식 원내대변인은 한나라당 의원총회 직후 "국회를 청와대의 거수기로 만들고 입법부의 위상을 부정하는 MB악법 직권상정 요청을 철회해야한다"면서 "국회의장은 국회를 통법부로 만드는 한나라당의 부당한 무더기 직권상정 요청을 단호하게 거부해야한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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