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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인사들, '기억 전쟁' 할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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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인사들, '기억 전쟁' 할 때인가

[정욱식 칼럼] '회고록' 파문, 송민순이 결자해지해야

'송민순 회고록 파문'이 정국을 집어삼키고 있다. 내세울 업적도 없고, 각종 게이트와 비리 의혹에 휩싸여 있으며, 그래서 내년 대선이 불안키만 한 정부‧여당과 극우 언론은 '색깔론'의 칼을 뽑아들었다.

예상했던 것이지만, 또 예상치 못한 것도 있다. 파문의 발단이 노무현 정부 때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의 회고록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2007년 유엔의 대북인권결의안을 기권한 것을 두고 '북한에 물어보고 결정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하지만 당시 통일부 장관과 국정원장 등 핵심 관계자들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기권을 결정하고 북한에 통고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결과 갈등의 단층선은 2012년 '북방한계선(NLL) 파문' 때보다 복잡하게 드리워지고 있다. 'NLL 파문'은 당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대선용 기획의 성격이 짙었다. 그래서 여야간의 대결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노무현 정부 전직 고위 관료들 사이의 '기억의 전쟁'이 파문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그 기억을 두고 당시 통일부 장관이었던 이재정 현 경기도 교육감은 "회고록이라는 것은 원래 자기중심적으로 쓰는 것"이라며 "부정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송민순 전 장관은 "책에 있는 내용 그대로"라며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고 응수하고 있다.

'입장 종료'와 '현재 진행형'

10년 가까이 지난 일에 대해 정확히 기억을 복원하는 건 불가능하다. 또한 같은 일에 대한 해석도 본인이 처한 위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해석의 차이'가 컸던 게 아닌가 싶다.

일단 2007년 11월 15일 안보정책 조정회의에서 격론이 벌어진 건 '팩트'다. 당시 직책 기준으로 송민순 장관은 대북인권결의안에 대해 찬성을, 이재정 장관, 김만복 국정원장, 백종천 안보실장은 기권하자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다수 의견이 기권 쪽으로 기울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송 장관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다음날 노무현 대통령 주재하는 회의가 열렸다. '해석 차이'는 이 자리에서 한 노 대통령의 발언의 맥락을 두고 벌어진 것 같다. 송 장관은 "방금 북한 총리와 송별 오찬을 하고 올라왔는데 바로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하자고 하니 그거 참 그렇네"라고 대통령이 말했다고 주장하면서, "나와 (문재인) 비서실장을 보면서 우리 입장을 잘 정리해보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고 썼다.

송 장관은 이를 두고 논의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으로 간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다른 참석자들은 입장이 기권 쪽으로 정리된 것으로 간주했던 것 같다. 송 장관이 소개한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전후 맥락상 기권으로 정하고 입장을 잘 정리하라는 취지로 해석될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소통의 본질은?

납득할 수 없었던 송민순 장관은 대통령에게 "마지막 호소문을 올리기"로 하고 왜 한국이 인권결의안에 찬성해야 하는지 장문의 서한을 보냈다. 그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주무기관인 외교장관이 그토록 찬성하자고 하니 (문재인) 비서실장이 다시 회의를 열어 의논해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리고 11월 18일 저녁 청와대 서별관에서 회의가 열렸다.

논란에 중심에 있는 북한과의 관련성은 이 회의에서 등장했다. 여기에서도 결정적인 해석의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송 장관은 외교부가 적극 개입해 인권결의안의 수위를 낮췄기 때문에 북한의 반발을 크게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설명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 국정원장이 "남북 채널을 통해서 북한의 의견을 직접 확인해보자고"했고, 문재인 비서실장도 "일단 남북 경로로 확인해보자고 결론을 내렸다"는 내용이 회고록에 담겼다. 다만 이들 문장은 직접 인용으로 적혀 있지 않다. 국정원장이나 비서실장이 이렇게 말했는지는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다만 북한과의 소통 필요성에 대한 얘기는 있었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문제는 그 소통의 의도와 성격이다. 송 장관은 북한의 의견을 묻고 찬성이냐, 기권이냐를 결정한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할 여지도 크다. 바보가 아니라면 인권결의안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이미 명확한 것이고 이걸 묻는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에 가깝다는 걸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정원장이나 비서실장 등은 송 장관이 인권결의안의 수위가 낮아져서 북한이 크게 반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북한의 의견을 들어보자는 취지로 말했을 공산이 크다. 이미 기권으로 결정을 해놓고 말이다. "기결정 후 통고"라는 문재인 전 비서실장 측의 입장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북한대학원 대학교로 출근하던 중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 고인이기에

정확한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당시 회의록 전체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위 공방이 벌어지고 정쟁화될 때마다 국가기밀을 공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공개되더라도 그 해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가장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바로 송 장관이 전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다. 그는 11월 20일 싱가포르의 대통령 숙소에서 노 대통령이 "이렇게 물어까지 봤으니 그냥 기권으로 갑시다. 묻지는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말했다고 직접 인용했다. 발언만 놓고 보면 북한한테 물어보고 기권한 것처럼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발언의 진위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송 장관에 따르면 함께 있었던 백종천 안보실장은 자리를 떴고, 다른 사람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발언의 당사자인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 사적인 대화인 만큼 녹취록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나무 한 그루가 숲을 태울 수 있거늘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은 이러한 점에서 유감이다. 당시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정부 내의 논쟁을 소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 내용을 넣고,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대통령과의 사적인 대화까지 담은 것은 분명 도가 지나친 것이다.

송 전 장관은 "책 전체 흐름을 봐야지 일부만 보면 안 된다"며 당혹감과 억울함을 표하고 있다. '숲을 봐야지 나무만 보면 안 된다'는 취지일 게다. 하지만 북한 문제가 극도로 정치화된 상황에서, 그것도 정부‧여당과 극우 언론이 사냥감을 찾아 군침을 흘리고 있는 상황에서 나무 한 그루는 숲 전체를 태울 수 있는 발화점이 될 수 있다.

나는 송 전 장관이 결자해지의 자세로 이 파문을 가라앉히길 바란다. 본인의 기록과 기억에 의존해서 쓴 책인 만큼, 당시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과는 다를 수 있고, 또 일부 내용은 부정확할 수 있다는 점을 밝혀줬으면 한다. 이게 "책 전체의 흐름"을 살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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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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