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의 계절: 말 따로 정치 따로
당선 3년 후인 2015년 11월 박근혜 정부 하(下) 추곡 가격은 가마당 15만 원대로 곤두박질하였다. 2008년 '이명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래, 전(前) 정권들이 연례적으로 시행해오던 잉여곡 4~50만 톤(t)의 대북 쌀 지원(장기대여)을 중단하였다. 그러나 WTO 협약에 따라 미국·중국·태국 등 외국산 쌀을 의무적으로 매년 4~50만 톤을 수입하다 보니, 가까스레 유지해오던 국내산 쌀의 수요와 공급 균형이 공급과잉 쪽으로 크게 기울어져 추곡 가격은 해마다 폭락할 수밖에 없다. 올해(2016년)의 추곡가 역시 더 추락해 가마당 13만 원대로 20여 년 전 가격이 되었다. 이런저런 출하경비를 제하면, 실제 농민 수중에 떨어지는 수입은 현찰로 가마당 11만 원 정도가 될까 말까 하다. 호(戶) 당 농가 소득이 도시근로자 수입의 60% 수준으로 몰락한 원인 중 하나다.
순박한 농민들은 하늘을 원망하랴, 오매불망 박근혜 대통령의 언약에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 가장 못난 노인이 고(故) 백남기(70세) 옹이었다. 어엿한 서울의 큰 대학 법과대학을 다니다가 마음먹고 고향 땅에 내려가 가톨릭 천주님의 가르침대로, 친환경 농업을 한답시고 쌀과 밀을 지어 오던 백남기 씨는 2015년 11월 14일 서울에서 개최된 전국 농민동지들의 쌀값 보장 촉구 모임에 참가한다. 일편단심(一片丹心) 박근혜 대통령에게 탄원하기 위해 시위 도중 청와대 가는 길이 차단당하자 그 길을 열려다 강신명, 구은수 전 경찰팀이 조종하는 직사 물대포를 수십 초 동안 얻어맞고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한 채 뇌사 상태로 무려 317일을 버티다가 지난 9월 25일 오후 2시 15분 선종(善終)하였다.
그동안 서울대학교 병원에는 직접 당사자인 경찰청 간부와 수뇌부인 행자부는 물론, 농림 당국, 행여 청와대 어느 관료 하나 얼굴을 내밀어 빈말이라도 위문 한 번 하지 않았다. 경찰 총수는 한술 더 떠 불법시위자가 죽는다고 공권력이 사과해야 하느냐고, 국민이 다 보는 TV 앞에서 의젓하게 답변한다. 쌀값 21만 원을 약속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년 동안 그 숱한 언행 중에 백남기 옹의 비참한 사태에 대하여만은 유독 단 한마디도 뻥끗하지 않는다. 비상시국이라면서 유언비어 단속을 강조하면서도 충성스런 박근혜 정부의 장차관들에게는 내수 진작을 위해 골프를 치라고 독려하신 대통령께서는 백남기 유가족에 대해서는 위로의 말씀 한마디도 없다. 하기야, 정부의 늦장 대응과 무능으로 304명의 무고한 생령(生靈)을 수장시켜 놓고 애타게 울부짖는 유족을 외면하시는 참으로 '냉정한' 분이 박근혜 대통령 아니시던가. 아니, 원혼을 불러내려고 단식하며 통곡하는 유족들 농성장 앞에서 어디서 일당을 받았는지 불청객 '어버이 오마니' 전우 회원들이 치킨과 짜장면 파티를 열면서 인간으로서는 차마 하지 못할 망나니짓을 해대도 박근혜 정부의 공권력은 못 본 체할 만큼 관대하신 대통령님이시다. 시국은 바야흐로 '배신의 계절'임이 분명하다.
민생을 어여삐 여기는 '측은지심·수오지심'도 없는 비정한 정부
맹자(孟子)는 일찍이 인간의 본성은 선천적으로 다음 네 가지 덕성과 능력을 갖추고 태어났다고 했다. 즉, "남을 불쌍히 여기는 인자한 마음(측은지심(惻隱之心)),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의로운 마음(수오지심(羞惡之心)), 예의를 지켜 사양하는 마음(사양지심(辭讓之心)), 지혜롭게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시비지심(是非之心)), 이른바 심성의 네 가지 기본 실마리(사단(四端))를 두고 한 말이다. 조선조 500년을 통치해온 성리학 유교의 기본철학이 이 '4단7정(四端七情)론'에 함축되어 있다. 나라를 통치하고 백성을 다스리려는 자, 반드시 갖춰야 할 네 가지 기본 덕목(德目)이기도 하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 모두에 관통하는 기본 통치철학이다. 이 네 가지 덕목이 결여된 지도자는 통치자의 자격이 없다. 그것이 결여된 정치사회는 미래가 없다. 이것은 동서고금의 정치 사회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러면 백남기 옹은 누가 죽였는가? 경찰인가, 물대포인가! 백남기 씨가 병들어 죽었다고, 수상한 사망진단서를 작성한 의사들인가? 모두 맞다. 그러나 원인 제공자는 아니다. 쌀값 21만 원을 약속하고도 국정 실패로 17만 원에서 15만 원, 13만 원으로 떨어지게 한 박근혜 정부의 무위(無爲), 무능(無能), 무관심(無關心)이 원죄(原罪)가 아니던가! 그러니까 이 정부 어느 누구도 한마디 위로의 말을 삐죽하지 않고 위문하지 못한다. 그러니 언감생심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을 성토하는 농민들이야말로, 비상시국의 불순 세력임이 틀림없다고 몰아대지 않던가. 그러면 엊그저께 백남기 옹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우리가 백남기다"라고 외치던 대학로의 3만여 명의 시민들과 농민들의 추모 행진도 '좌파종북' '불순세력'이란 말인가! 박근혜 씨가 대통령이 된 지난 3년 반 동안 왜 그리 많은 불순분자들이 늘어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치하의 유신 시절, 많이 들어본 데자뷰(기시감(旣視感))인가.
이런저런 이유로 풀뿌리 민초(民草)들을 어여삐 여기는 '측은지심'이 모자라더라도, 자기가 한 말과 행위를 기억하였다가 후에 잘못했음을 사리판단 할 줄 아는 것이 인간이다. 이를 가리켜 의롭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수오지심'이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문서로, 공개 연설로 약속한 '농정공약'만도 부지기수이지만 그중 일반 국민들이 역사적으로 기억하는 명언들이 수두룩하다.
"농어업인의 땀이 헛되지 않도록 희망찬, 행복한 농어촌을 만들겠습니다."
"농업 농촌 문제만큼은 제가 직접 챙기겠습니다."
"쌀값을 가마당 21만 원으로 올리겠습니다."
지난 9월 29일 열린 농림축산식품부의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지난 3년 반의 농정공약 이행도는 한심하다 못해 역진(逆進, 뒤로 돌아감)하는 모양새다. 쌀값은 이 추세대로면, 그의 아버지 시대 가격으로 회귀할 날이 머지않을 것 같다.
오래된 '미래', 우리나라 농업·농촌·농민의 현실
정부 예산은 박근혜 정부 치하의 2013~2016년 사이에 대략 13%나 늘어났으나, 농업 예산은 그 반 토막도 안 되는 6% 오르는데 그쳤다. 청장년이면 너도나도 농촌을 떠나서 농림어업 가구는 지난 5년 사이 11만 가구나 줄고, 농림어업 인구는 사상 최저로 줄었다. 또 고령화 비율은 37.8%로 국가 전체 고령화 비율보다 3배나 높다. 총 경지 면적은 5년 전에 비해 9.6% 줄었으며, 농가당 경지 면적은 2.3% 줄었다. 농축산물 연간 판매액이 1000만 원 미만인 농가가 68%에 달한다.
한 달에 농가당 판매한 액수가 채 100만 원도 안된다. 식량 자급률은 사상 최저인 23.6%로 OECD 국가 중 최하위이다. 부족한 식량은 미국·브라질·아르헨티나 등 외국에서 들여오는데 70% 가까이 유전자를 조작한 '이물 생물체(GMO)'로, 식용 GMO 수입은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No.1(1위)'이다. 사료 곡물을 포함하면 세계 2위 수준이다. 제초제와 살충제에도 끄덕없는 박테리아 등 이종물질(異種物質)과 DNA 유전형질을 인공 교배시킨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괴물 식품을 대한민국 어른과 어린이가 매일 먹고 마신다. 요컨대 우리나라는 'GMO/몬스터 가공식품 천국'이다. 바야흐로 대한민국 국민들은 실험실 속의 쥐의 신세처럼, 목하(目下) GMO 시식 생체 실험 중이다.
그것을 방치·조장하는 정부는 불량식품 추방을 '4대악(惡)'으로 규정하고 당선된 박근혜 정부의 식약처·농림축산식품부·농촌진흥청이고, 그 정부 조직과 관료학자들이 이른바 GMO 또는 몬산토·식품 대기업·농약 회사의 장학금 수혜자로 오해(?) 받는데도, 아무도 실상을 조사 확인해주지 않는다. 한 술 더 떠서, 골치 아픈 농업 문제의 원인을 아예 제거해버리려는지 5000년 5000만 한민족의 주식인 쌀(벼농사)마저 농업농촌을 진흥시킨다고 세운 농촌진흥청이 앞장서 김제평야 들머리 완주군 이서면을 비롯해 전국 주요지역에서 비밀리에 GMO를 시험 재배하고 있다. 고위관료 출신 모 여당 의원은 쌀 과잉공급 대책이랍시고, 절대 농지 격인 농업진흥지역을 아예 줄이거나 없애 버리자고 고래고래 노래를 부른다. 바야흐로 박근혜 대통령 치하에서 버젓이 막장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이를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이 시대 우리 지도층 가운데 아무도 없단 말인가. 이러할 때 북녘땅 함경도에 물난리가 났으니, 이를 계기로 다시 북쪽에 쌀을 지원하면 국내 쌀 수급 균형 달성(쌀값 안정)은 물론 북핵 문제로 골치 아픈 현시기의 남북화해 진작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의 국회 대표 연설은 차라리 신선하다 할까. 복음의 소리인양 전국 농촌에 메아리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오래된 미래가 아니던가!
'제발, 사양하는 마음'이라도…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월 24일 장차관들 모두 청와대로 불러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국민들에게 드렸던 약속을 지금 이 순간까지 한시도 잊어 본 적이 없다"면서 "3년 반 동안 역사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한순간도 소홀함이 없이 최선을 다해 왔다"고 말씀하셨다. 헐, 그러면 대통령 취임 전 약속은 깨끗이 잊었단 말인가? 모두들 의아해한다. '그래서 쌀값 공약, 농림어업 공약이 다 날아가 버린 것이구나' 이해가 간다.
그런데도 억하심정인지, 박근혜 정부는 중앙 단위에서 국가 예산의 80%를 쥐고 있으면서 20%를 쥐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고용절벽 앞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 시대의 불운한 청년들에게 임시고용수당을 지급하려고 해도 "안 된다", 농촌·농민·농업에 중앙 정부가 안 하거나 못하는 소득지원사업도 "안 된다"며 틀어막는다. 우리나라가 진정 선진국이라면 국가 예산과 권한을 20 대 80 정도로 나눠 갖는 명실상부한 '지방자치 분권제'를 실현해야 마땅하지만, 그러하지 못할 딱한 사정이 있다면 60 대 40, 또는 50 대 50 이어도 좋고, 그것도 어렵다면 소외계층과 소득취약계층을 위하여 빈약한 지방재정 한도 하에서 자발적으로 교육·의료·복지·농어민 소득지원사업을 허(許)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농업이 환경생태계보전, 땅과 흙, 물의 보전, 자연경관 보전, 전통문화 보전, 전국의 균형발전 담보 등 보이지 않은 공익기능 수행에 따른 대가로, 농가의 기본소득을 보장하고 민생복지를 부양하는 것이 오늘날 선진 각국의 추세이다. 중앙 정부가 앞장서 그렇게는 못할망정 착한 지방자치단체들의 쪽박일랑은 깨뜨리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맹자 왈, 그것이 '사양지심'이다.
제대로 된 '시시비비 행정'을 대망하며
전국의 소농민들의 협동조합인 농협중앙회 비상임 회장이 8년 임기 동안 받아간 근로소득 보수가 무려 50억 원이 넘었고, 지난달 받은 퇴직금은 무려 11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도, 박근혜 정부는 이상하게도 모른 체 한다. 농민은 죽어나도 임직원과 그 대장만 잘 살면 된다는 심보란 말인가. 마찬가지로 정부 기관 또는 공공 기관 및 은행 임직원들의 보수가 선진국 수준의 고액인 것은 용인하고, 정부 지원을 받는 사기업 임원들의 천문학적인 고액 보수도 모른 체하면서 부자와 대기업 감세 조치는 '이명박근혜' 정부 들어 한결같이 관대하다. 그 대신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는 담배값은 턱없이 두 배 넘게 올리고, 자동차 운행 범칙금 수입 높이는데 혈안인데도 정부는 제대로 된 옳고 그름을 가릴 줄 모른다. 아무리 영어·중국어·프랑스어를 잘한다 해도 맹자의 '시비지심'을 더 공부해야 할 것 같다.
농업·농촌·농민을 살려 우리나라 환경 생태계와 국민들의 건강을 살리려면, 지도층과 관료 목민관들이 이상의 네 가지 기본 덕목을 제대로 갖추게 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누구를 위한 국가이고, 정부인가'부터 다시 공부시켜야 한다. 사람을 먼저 살리고, 농민을 중심에 두는 정부와 통치자가 새로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없으면, 외국서 수입해서라도 대체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이 글은 10월 10일 자 <한국농정신문> '김성훈의 농사직썰'란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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