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8일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의 샘 앨러다이스 감독이 취임 67일 만에 전격 사임했다. 앨러다이스 감독은 최근 축구 에이전트 사업가로 위장한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 탐사보도팀에 "서드파티 금지 규정은 말도 안 된다. 서드파티를 금지하는 것은 웃기는 짓"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에 더해 앨러다이스 감독은 탐사보도팀에 "서드파티 금지 규정을 피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며 "그렇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그 방법을 알려주는 대가로 자신에게 40만 파운드(약 5억7000만 원)를 달라고 요구했다. 계약 시 자신이 홍보대사로 홍콩과 싱가포르를 방문해주겠다고 말하며, 불법적인 행위에 적극 가담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서드파티란 '서드파티 오너십(Third-Party Ownership)'을 줄여 부르는 말이다. 제3의 선수 소유권 최대 지분 보유자를 의미한다. 자연히 선수의 소유권에 관한 일체의 권리를 구단이 온전히 갖지 못한다. 선수 소유권에 관한 권리 행사력은 제3자가 갖는다.
축구에서 선수가 이적하면 이적료는 선수가 아니라 그 선수를 파는 구단이 가져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축구 이적시장이 이런 구조로 운영되는 이유는 이적 개념이 선수의 소유권을 사고 파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보통의 경우는 그 선수를 보유한 구단이 소유권의 100% 지분을 온전히 다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서드파티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지분 구조가 달라진다. 선수의 소유권에 대한 지분이 구단과 서드파티 양쪽으로 나뉜다. 대개의 경우, 구단은 45~40%의 지분을 가지고, 서드파티가 55~60%의 지분을 보유해 최대주주 역할을 한다. 이런 지분구조로 인해 선수의 이적료 역시도 구단보다는 서드파티가 더 많이 가져가게 된다.
서드파티는 선수와 직접 계약을 맺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재정 상황이 열악한 유럽의 중소형 구단과 계약을 맺는 경우도 있다. 전자의 경우 브라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등의 남미 10대 유망주들이 1차적인 타깃이다. 서드파티는 축구에 재능이 있지만 가난한 남미 빈민가 출신의 10대 유망주에게 접근해 약간의 계약금과 생계 유지비 등을 제공하며,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돕겠다며, 유럽 무대 진출을 도와주겠다며 계약을 맺는다. 유망주 입장에서 보자면, 서드파티의 제안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한줄기 빛과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축구계의 슈퍼스타 네이마르, 오스카, 헐크, 팔카오, 테베즈 등 남미 빈민가 출신의 적잖은 스타가 서드파티 계약을 통해 유럽 무대에 얼굴을 내밀었다.
구단과 직접 서드파티 계약을 맺는 후자의 경우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같은 유럽 리그에서 구단 재정이 극도로 열악한 1부 리그 하위권 팀이나 2부 리그 팀이 주된 타깃이다. 서드파티는 이들 팀들이 재정 문제로 좋은 선수를 데려올 수 없음을 이용해 자신들이 선수 영입에 필요한 돈 일부 혹은 전액을 댈 테니, 그만큼의 선수 지분을 달라고 제안한다. 구단 입장에서 보면 서드파티의 제안은 일종의 재정지원이므로, 절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이적료 한 푼 안들이고 좋은 선수를 데려와 쓸 수 있기 때문에 구단은 무조건 남는 장사다.
그런데 이 좋아 보이는 서드파티 계약은 국제축구연맹(FIFA)과 전 세계 축구협회가 금지한 제도다. 왜 그럴까?
1997년 개봉한 캐머런 크로우 감독,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제리 맥과이어>는 거대 스포츠 에이전시 소속으로 잘 나가는 스포츠 에이전트 제리 맥과이어가 새벽 1시경 마이애미의 한 호텔방에서 노트북을 붙들고 앉아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제리 맥과이어가 쓰는 글은 미래의 스포츠 비즈니스가 추구해야 할 '사명 선언문(Mission Statement)'이었다. 새벽 1시에 시작해 밤새도록 글을 쓰고 또 쓴 탓에 애초 1쪽 짜리로 구상했던 사명 선언문은 25쪽의 소책자 분량으로 늘어났다.
그가 쓴 사명 선언문은 스포츠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선수라는 사람이며, 회사의 모든 구성원이 선수와 진실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스포츠 비즈니스의 새로운 혁명을 시작해야 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아침이 되자 제리 맥과이어는 자신이 작성한 사명 선언문을 복사하고, 소책자로 만들어 회사의 전 직원들에게 돌린다. 그리고, 그날 오후 회사는 그를 해고한다. "더 적은 수의 고객, 더 적은 돈"으로 대표될 제리 맥과이어표 사명 선언문은 회사 입장에서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이는 서드파티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 존재했던 서드파티는 '미디어스포츠 인베스트먼트', '벤피카 스타즈펀드'처럼 투자회사 타이틀을 달고 있다. 따라서 서드파티 회사에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 수익의 극대화이다. 서드파티는 선수 이적을 결정하면서 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서 선수는 저점에서 사서 최고점에서 내다 파는 금융상품과 다를 바 없다.
대표적 사례가 콜롬비아 출신의 공격수 라다멜 팔카오다. 과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간판 공격수였던 팔카오는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모나코로 이적해야 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인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강팀이었다. 반면 모나코는 프랑스의 리그 앙에서도 들쭉날쭉한 성적표를 얻는 팀이었다. 최전성기의 선수가 유럽에서 손에 꼽을 큰 팀으로 이적하지 않고, 비교적 작은 규모의 팀으로 이적한 건 좀처럼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이해할 수 없는 이적의 배후에 서드파티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팔카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서드파티와 계약한 선수는 자신이 원치 않아도 서드파티가 가라는 팀으로 무조건 가야만 한다. 수익의 극대화를 위해서. 이 과정에서 선수의 미래와 행복에 관한 고려는 그 어디에도 없다.
때문에 앨러다이스 감독이 말한 것처럼 서드파티 회사를 차려 운영한다는 것은 큰돈을 벌 기회를 잡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보다 돈이 우선시 되는 서드파티의 사업 구조는 영화 속 제리 맥과이어가 환멸을 느끼고 바꿔야 한다고 부르짖었던 바로 그 시스템이다. 실제로 서드파티는 사람을 금융상품으로 취급하고, 사람보다는 수익률을 중요하게 다루는 사업 구조로 인해 '현대판 노예상인'이라는 악명을 듣기도 했다.
결국 FIFA는 지난 2015년 서드파티 오너십을 전면적으로 금지한다는 규정을 발표했고, 현재 축구계에서 서드파티 계약은 용납되지 않는다. 하지만 앨러다이스 감독의 말처럼 지금도 전 세계 축구계에는 "서드파티 금지 규정은 웃기는 짓"이라고 생각하고, 규정을 피해 서드파티 사업을 계속하는 이들이 제법 많다. 그들은 여전히 큰돈을 벌고 있다.
영화 <제리 맥과이어>는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스포츠와 관련된 일을 하거나 관련 직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교과서 같은 영화로 인식된다. 이 영화가 스포츠와 관련된 비즈니스 종사자들의 교과서로 대접받는 이유는 "돈이 아닌 선수가 먼저"라는 메시지 때문일 것이다.
만약이지만, 과거 서드파티 비즈니스를 해왔던 많은 이들이 제리 맥과이어의 사명 선언문에 나오는 "더 적은 수의 고객, 더 적은 돈" 구절을 생각하고 실천해 왔더라면, 오히려 서드파티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합법적인' 사업 모델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20여 년 전 영화 <제리 맥과이어>는 서드파티라는 축구 비즈니스의 미래에 대해 정확히 예견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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