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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탄핵 쿠데타', 석유는 다국적 기업이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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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탄핵 쿠데타', 석유는 다국적 기업이 꿀꺽!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브라질 '의회 쿠데타'의 진짜 이유

"내가 부통령이던 때, 우리는 <미래로 가는 다리(A Bridge to the Future)> 문건을 발표했다. 우리는 (지우마 호세프) 정부가 <미래로 가는 다리>에 나온 것들을 채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우리 계획은 채택되지 못했다. 그래서 나를 대통령으로 세우는 과정이 추진된 것이다."

8월 31일 의회를 통한 탄핵 쿠데타로 권력을 가로챈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 참가하고자 방문한 뉴욕에서 열린 아메리카협회(AS/COA)의 모임에서 한 발언이다. 호세프 정권에서 부통령이던 테메르가 속한 브라질민주운동당(PMDB)은 3월29일 호세프 대통령과 룰라 전 대통령의 부패 혐의를 주장하며 노동자당과의 연정을 파기하고 나서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과정을 주도했다.

부통령 때이던 2015년 12월 테메르는 호세프 대통령에게 "개인적인" 서한을 보내 정부에서 자신은 "장식물"로 취급되고 있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연정 탈퇴 직후인 4월에는 탄핵이 이미 확정되었고 자신이 대통령이라 말하는 테메르의 음성 녹음 파일이 언론에 공개됐다. 그리고 4월 17일 총513석의 브라질 하원은 탄핵 소추 개시를 찬성 367표, 반대 137표로 가결시켰다.

수십 개 정당으로 혼란한 브라질 상원과 하원

브라질 하원에는 모두 25개 정당이 의석을 갖고 있다. 제1당은 67석을 장악한 테메르의 브라질민주운동당이고(탄핵 소추 개시 찬성 59표, 반대 7표, 불참 1표), 제2당이 호세프 대통령이 속한 60석의 노동자당(PT)이다(반대 60표). 제3당은 야당인 52석의 브라질사회민주당(PSDB)으로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달리 재계와 도시 부유층이 지지하는 우익 정당인 브라질사회민주당은 노동조합 운동과 연계가 없으며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지한다.

5월 12일 총 81석의 상원도 탄핵 소추 개시 투표를 진행하여 찬성 55표, 반대 22표로 가결시켰다. 모두 18개 정당이 의석을 갖고 있는 브라질 상원에서 제1당은 18석을 장악한 테메르의 브라질민주운동당이고 제2당은 11석의 노동자당과 역시 11석을 보유한 브라질사회민주당이다. 재미난 사실은 집권 연정에 동참했던 브라질민주운동당 상원의원 18명 가운데 13명이 찬성표를 던지고 반대가 2표나 나온 반면, 브라질사회민주당은 11명 모두 찬성표를 던진 점이다.

이로써 테메르가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권력을 승계하게 되었다. 브라질 헌법에 따르면 최장 180일간 대통령 권한 대행이 가능하며, 이 기간 동안 상원은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을 기각할지 아니면 탄핵할지를 결정한다. 탄핵이 성사될 경우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부통령이 채우게 된다.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서의 임기 첫날 테메르는 장관 자리를 31개에서 22개로 줄인 내각 구성을 발표했는데, 특징적인 점은 1979년 이후 처음으로 모든 장관 자리를 백인 남성이 차지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인 8월 31일 브라질 상원은 찬성 61표, 반대 20표로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을 가결함으로써 테메르가 정식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탄핵을 주장한 세력은 호세프가 석유 공기업 페트로브라스(Petrobras)의 뇌물과 부패 스캔들에 깊이 연루되었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2003~2010년 당시 호세프가 페트로브라스의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하지만 야당은 그녀가 대통령에 당선된 2010년과 2014년 선거에 부정한 자금이 흘러들었다고 주장하면서 탄핵 운동에 돌입했다.

공기업 페트로브라스, 빈민 구제와 인프라 구축의 재정 기반

1953년 설립된 페트로브라스는 남미 최대 기업이자 브라질 정부가 최대 주주인 공기업으로 상파울로와 뉴욕 주식 시장에 상장되어 있다. 브라질사회민주당의 페르난두 엔히키 카르도주 대통령 집권기(1995~2002년)에 민영화되었으나 노동자당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집권기(2003년~2010년)에 다시 국가 통제로 넘어왔다.

1997년 카르도주 정권은 브라질 석유 산업에 대한 페트로브라스의 독점적 지위를 무너뜨리기 위해 석유 산업을 개방하여 경쟁 시스템을 도입했고, 이 덕분에 셸과 셰브론 등 다국적 기업이 브라질 석유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7년 브라질 영해에서 암염하층(pre-salt) 유전이 발견되면서 노동자당 정부는 석유 자원에서 나오는 수익은 극빈층 축소와 인프라 투자 확대 등 브라질 국민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밀어붙였고, 기존의 '개방-경쟁' 정책에서 전환해 심해 암염하층 유전에 대한 정부의 독점적 권리를 강화하려 했다. 이 때문에 석유 시장에서 민간 자본, 특히 다국적 기업들의 입지가 축소되었고 국내외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노동자당과 연립 정부에 참여한 정당들은 페트로브라스의 이사직에 자기 사람을 심으려 했다. 검경에서 조사받은 이사들은 페트로브라스가 발주한 암염하층 프로젝트에 참여한 건설 회사들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았다. 전체 발주 비용의 3%를 노동자당을 비롯한 정당들에 보내고, 스위스 은행의 개인 계좌로 비자금을 송금하고, 고급차를 비롯한 명품을 갖다 바치고 등의 추문이 언론 보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쏟아졌다.

'직권 남용'과 '예산 관리 소홀'이 탄핵 사유?

'부패 척결' 캠페인의 고삐를 쥔 검찰은 양형 거래(plea bargain)를 통해 범죄자에게 유력 정치인의 이름을 요구했고, 그 결과 집권 노동자당의 재정국장을 비롯해 브라질민주운동당과 진보당(PP) 등 연립 정권에 참여한 정당들의 유력 인사는 물론 브라질사회민주당 등 야당 인사들도 수사선상에 오르게 되었다.

지난 3월 말 브라질 검찰은 국고 손실액이 290억~420억 헤알(9조9000억~14조4000억 원)에 달한다고 발표하고, 179명을 기소하여 그 중 93명의 유죄를 끌어냈다. 유죄를 인정받은 수감자의 양형 기간은 모두 1000년에 달했다.

하지만, 호세프 대통령을 검찰이 아무리 털어도 페트로브라스 스캔들에 연루되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자 야당은 행정상 직권을 남용하고 국가 예산 관리를 소홀히 함으로써 헌법과 연방재정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면서 대통령 임무 수행에서의 형사 책임을 탄핵 사유로 내걸었다. 탄핵 소추 과정에서 호세프 대통령이 서명한 추가경정예산 시행령 일부는 의회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으로 밝혀져 혐의에서 빠지기도 했다. 야당은 호세프가 대통령으로서 혐의자들과 거리를 두지 않는 등 페트로브라스의 불법 행위에 대해 부작위의 잘못을 저질렀다고 주장했지만, 이것도 탄핵 소추서에서 빠졌다.

미국 패권과 우익 기득권에 도전한 룰라-호세프 정권

2002년 10월 룰라의 대통령 당선 이후 브라질은 국제적으로는 제3세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주적 외교 노선을 표방하며 미국의 패권에 도전해왔다. 중남미 국가, 아프리카 국가, 중국과 인도 등과 연대하여 남남 협력(South-South Cooperation)을 확대했고, 미국과 유럽에 편중되었던 통상 관계를 다변화시켜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과 교역을 증대시켰다. 특히 브릭스(BRICS)라 불린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블록의 출현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뒤흔드는 듯 보였다.

룰라 정권은 선진국 위주의 무역에서 벗어나 개발도상국과의 무역을 확대했고, 브라질의 골칫거리였던 누적 채무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룰라 집권 후 천연 자원 개발과 제조업의 발전으로 경제가 안정되면서 2005년에는 전년 대비 국내 총생산이 31%나 증가했다. 2007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에 빚을 갚고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돌아섰다.

또한 '기아 제로(Fome Zero)', '가족 수당(Bolsa Familia)', '학교 수당(Bolsa Ecola)', '성장 가속 프로그램(PAC)' 등 노동자층과 빈민에 대한 사회 경제적 지원 사업을 정력적으로 벌였다. 그 결과, 중산층 비율은 인구의 37%에서 50%로 늘었다.

의회 쿠데타를 성공시킨 테메르는 룰라-호세프 집권기에 이뤄진 노동자당(PT) 정부의 좌파 정책을 폐기시키고 있다. 사회복지비 삭감, 세금 인하, 민영화 추진이 대표적이다. 재계와 부유층에 유리한 방향으로 국정을 이끌려는 시도이자 노동자당의 지지 기반을 무너뜨리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검찰과 사법부의 기득권층 지키기

룰라 집권기에 작동했던 노동자당(PT)-브라질민주운동당(PMDB) 연정이 호세프 집권기에 붕괴한 것은 국제 정세와 경제 상황의 악화가 한몫 했다. 브라질민주운동당으로 대표되는 우익 정당들은 재계의 지지 속에 보수 연합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과 사법부는 우익 기득권층을 위한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자신에게 유리해진 정치 지형을 기반으로 민주운동당이 이끄는 브라질 기득권층은 정부의 기조와 방향을 수정하려 했으나, 이들의 거듭된 경고와 위협에도 호세프 대통령과 노동자당이 자기 길을 고수하자 의회를 통한 우익 쿠데타를 감행한 것이다.

한물간 과거의 귀환 : 복지 축소, 규제 철폐, 민영화

'의회 쿠데타'의 강령이라 할 수 있는 <미래로 가는 다리>에는 보건, 교육 예산의 삭감, 복지 혜택의 축소, 은퇴 연령 상향, 규제 완화가 담겨 있다. 민영화 추진과 외국 자본 유치가 뼈대를 이룬다. 테메르가 이러한 구상을 밝힌 아메리카협회는 "서반구에서 경제 사회 발전, 열린 시장, 법의 지배, 민주주의라는 공통의 가치를 공유하는 회원들이 가입한 국제적인 재계 단체(international business organization)"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테메르 정부 하에서 브라질의 대외 정책도 큰 변화를 겪어, 그 중심이 제3세계 개발도상국에서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으로 옮겨질 것이 확실하다.

페트로브라스 스캔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절정으로 치달으며 호세프 대통령이 이끄는 노동자당 정부에 대한 대중들의 혐오가 극에 달했던 지난 2월 브라질 상원은 암염하층 유전 개발에 관련된 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페트로브라스가 갖고 있던 암염하층 유전의 단독 운영자 자격을 박탈함으로써 외국 기업들이 페트로브라스와 합작하지 않고도 브라질 연안의 암염하층 유전을 개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유전 광구에 대한 경매도 가능케 했다.

당시 호세프 정권을 떠받치던 두 축의 하나인 노동자당은 반대했으나, 다른 한 축인 브라질민주운동당은 지지했다. 상원을 통과한 법은 대통령 승인을 받아야 효력이 발생하는데, 부통령인 테메르가 지지한 이 법을 대통령인 호세프는 반대했다. 이로써 룰라 정권 이래 어렵사리 유지되던 노동자당(PT)-브라질민주운동당(PMDB) 연정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그리고 테메르를 필두로 하는 우익 보수 연합은 호세프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한 공세를 본격화했다.

지난 수년 동안에 숨 가쁘게 전개된 좌파와 우파의 권력 투쟁은 다국적 기업과 외세를 등에 업은 우파의 의회 쿠데타로 귀결되면서 브라질 미래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테메르의 문건이 말하는 '미래'란 다름 아닌 이미 효용성을 상실한 지 오래인 신자유주의라는 과거이고, 이런 이유로 2003년 이래 노동자당 정부 하에서 브라질 사회가 성취한 진보와 발전은 당분간 반동과 퇴행이 불가피해졌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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