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미국 공화당 내 안보 보수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트럼프의 막말로 인한 지지율 하락을 계기로 11월 대선에서 아예 그를 찍지 않겠다는 집단 공개선언이 나오는가 하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인사도 등장했다.
공화당 주류인 네오콘이 주도한 기존의 강경한 대외 정책과 선을 그어 온 트럼프에 대한 불만이 당 안팎으로 표출되는 양상이다.
역대 미국 공화당 정권에서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 국가안보 부처 고위직을 지낸 50여 명이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 반대하는 공개서한을 8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이들은 서한에서 "트럼프는 대통령이 될 만한 인격과 가치관, 경험을 갖지 못했다"며 "트럼프는 미국의 안보와 안전을 위험에 빠뜨리는 위험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트럼프가 미국의 적은 칭찬하면서 미국의 동맹과 친구는 끊임없이 위협한다"며 "외교분야의 경험이 부족한 역대 다른 대통령과 달리 스스로 배울 생각도 하지 않고 현대 국제정치의 기본적인 사실에조차 놀라울 정도의 무지를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들은 "우리는 많은 사람들처럼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도 우려한다"면서 "그러나 트럼프는 미국이 직면한 벅찬 도전에 해답이 될 수는 없다"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능력도 의사도 없다. 그는 자제력이 부족하며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개인적 비판을 참을 줄도 모른다"면서 "이런 모든 자질은 핵무기 통제권을 가진 최고 통수권자가 되기에는 위험하다"고 했다.
공개서한에는 마이클 처토프, 톰 리지 전 국토안보부 장관, 마이클 하이든 전 CIA·NSA 국장이 서명했다. 차관보급으로는 국무부에서 일했던 존 네그로폰테와 로버트 죌릭과 국방부에서 근무한 윌리엄 태프트4세도 동참했다.
이 같은 반발의 표면적인 계기는 무슬림계 전사자 부모에 대한 트럼프의 인종 차별적 발언이 제공했다.
그러나 개입주의적 대외 정책과 거리를 둔 트럼프에 대한 공화당 안보 보수의 누적된 반감이 이번 공개서한에 노골적으로 드러난 측면도 있다. 이에 따라 대외정책에 대한 트럼프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 한,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공화당 주류와 트럼프의 반목은 심각한 양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대선후보 경선 당시 트럼프의 대선 후보 지명을 저지하려 했던 공화당 대의원들이 전국위원회(RNC) 위원들에게 탄원서를 보내 트럼프를 대체하라고 설득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AP통신이 이날 보도한 탄원서에 따르면 '공화당 책임 프로젝트'(GOP Accountability Project)를 이끄는 리자이나 톰슨은 "절실한 순간에 절실한 조치를 요구한다"며 "전당대회 이후의 그의 행동은 개탄스럽다"라며 트럼프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비판에 그치지 않고 "트럼프 저지를 위해" 무소속 대선출마를 선언한 인사도 나왔다.
이날 CIA 요원 출신으로 공화당 하원 수석정책국장인 에번 맥멀린은 자신의 웹사이트에 올린 성명에서 "지난 1년간 미국인들은 주요 정당 대선후보들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며 "지금이 바로 새로운 리더십이 나설 시기"라고 주장했다.
특히 트럼프에게 투표하는 것은 "아주 무책임한 일"이라고 비판한 뒤 "공화당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자리에 가까이 간 한 남성 때문에 분열됐다. 많은 이들이 트럼프를 공화당의 실질적인 위협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맥멀린은 민주당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에 대해서도 "대선후보가 반드시 갖춰야 할 판단력과 윤리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늦게라도 옳은 일을 해야 한다"며 "미국인은 트럼프와 클린턴이 제시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맥멀린은 '베터 포 아메리카'라는 단체의 지지에 힘입어 출마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단체는 지난 2012년 대선에서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밋 롬니를 지지했던 존 킹스턴이라는 거물급 후원자의 지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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