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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불매 운동' 없는 소비자 의식으로는...

[기자의 눈]미국에는 1인당 1천만원 배상, 한국은 무시하는 이유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한국 정부와 소비자들을 우습게 본 외국업체 옥시의 탐욕에서 비롯됐다. 옥시는 사과와 배상에도 소극적이었다. 이때문에 옥시에 대한 불매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연비조작 사건을 일으킨 폭스바겐은 한국의 소비자들로부터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 60개월 무이자 할부 및 현금할인 등의 방식으로 값을 좀 깎아주자 판매량이 오히려 급증하고 있다.

게다가 29일 미국에서만 폭스바겐 차량 구매자 한 명당 1000만 원 안팎, 합계 약 17조 원에 달하는 배상을 해주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일각에서는 폭스바겐의 차량 판매가 급증한 현상에 대해 "한국인의 불매운동이란 그저 집단 이기심의 발로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조롱까지 하고 있다. 한국 소비자들이 가습기 살균제처럼 제품 사용자에게 직접 피해가 가는 문제에는 발끈하고, 배출가스 조작처럼 사회 전체에 피해가 가는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결국 불매운동이 소비자들이 직접 나서는 사회적 운동처럼 보이지만, 한국의 경우는 "공공심이 아니라 이기심이 지배하는 집단 시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광우병이나 메르스 사태에 대한 국민적인 경각심이 수많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사태에는 전혀 작동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지적도 나온다.

폭스바겐, 환경법 정면으로 위반하고도 한국에만 배짱


폭스바겐은 미국에서 경유차 배출가스 조작으로 피해를 본 48만여 명의 소비자들에게 147억 달러(약 17조 원)의 배상에 합의했다. 미국 소비자 집단소송 합의액 중 가장 큰 규모다. 폭스바겐은 배상에 합의할 수밖에 없는 똑같은 사유를 가진 한국에서는 사실상 보상을 거부하고 있다.

문제가 된 차량은 국내에서도 12만 5000대가 팔렸다. 폭스바겐이 보상을 거부하며 버티는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1990년대부터 임의설정(배출가스 조작) 금지 규정이 있었지만 한국은 2012년 1월에야 고시 규정으로 시행됐고 해당 차종은 그 이전에 정부 인증을 받았다는 것이다.

같은 논리라면, 옥시도 가습기 살균제 판매 당시 규제하는 규정이 없었다는 이유로 배상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게 된다. 현재 옥시 관계자들이 사법처리된 이유는 "사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판매했다"는 혐의 때문이다. 하지만 이 혐의가 아니고도 옥시는 사과의 진정성이나 배상액 규모는 크게 미흡하지만, 결국 위법행위에 따른 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협상에 나서고 있다.

게다가 폭스바겐은 임의설정을 금지하는 고시 규정보다 상위법을 이미 위반했다. 환경부는 배출가스 관련 부품의 설계를 고의로 바꾸거나 조작하는 행위를 금하는 대기환경보전법 46조 등 법 위반을 문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폭스바겐의 논리는 궤변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심지어 폭스바겐은 최근 디젤차에 이어 휘발유차인 골프 1.4TSI도 배출가스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나 인증 담담 임원 한 명이 검찰에 구속됐다. 독일 본사가 배출가스 조작을 직접 지시하고 한국법인은 이를 은폐했다는 혐의다. 검찰은 폭스바겐 코리아가 설립된 2005년부터 사장을 역임했던 박동훈(올해부터 르노삼성자동차 사장) 씨도 다음주 중 참고인으로 소환할 예정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기업을 옹호하는 태도로 질타를 받았던 환경부도 배기가스 배출 조작 사건에 대해서는 최근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폭스바겐이 배상이나 리콜 등의 조치를 거부하거나 미온적일 때 환경부가 "부품의 교체로 문제해결이 불가능할 때는 자동차 교체를 명령해야 된다"는 대기환경보전법 50조 7항 규정을 동원해 강한 압박을 행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번에도 정부 부처끼리 핑퐁게임이나 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콜 권한을 갖고 있는 국토교통부는 "배출 가스는 환경부 소관이며 연비 논란은 기본적으로 소비자가 선택하는 문제"라고 떠밀고 있고, 자동차 산업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환경부와 국토부에서 알아서 할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환경부 역시 폭스바겐의 미온적 태도를 바꿀 만한 조치에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소비자 보호 정책 전문가들은 정부의 소극적 태도가 변하려면 소비자로서의 국민의 인식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내가 직접 당하는 피해가 아니면 사회적 해악을 끼치는 기업과 제품을 문제시하지 않는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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