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은 지난해 경영권을 둘러싸고 총수 일가에서 벌어진 '형제의 난'으로 자중지란에 빠졌다. 여기에 검찰이 기업을 대상으로 한 압수수색 사상 최대 규모의 인원을 동원하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 등에 대해 전방위적인 수사에 나섰다. 그야말로 롯데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형제의 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려는 듯 지난해 8월 '신동빈 시대의 새 롯데'의 청사진도 당당하게 발표했다. 하지만 1년도 안 돼 일본기업이라는 낙인을 벗기 위한 호텔롯데의 상장마저 철회되는 등 청사진 자체가 순식간에 백지화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롯데그룹이 이번 파고를 잘 수습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확장성이 있는 기업으로 존립할 근거가 무너질 우려가 크다는 시각들이 확산되고 있다. 악재가 비자금 수사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롯데그룹은 국내 재계 서열 5위의 재벌그룹에 걸맞지 않은 기업지배구조와 사업행태로 "국부유출의 잠재적 위험이 큰 사실상 일본기업"이라는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다. 여기에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주범기업으로 영국계 다국적 기업 옥시에 이어 롯데마트가 지목되면서 책임자가 구속되기도 했다.
오랫동안 내사를 거쳐 사상 최대 규모의 인원이 동원된 만큼 검찰의 비자금 수사에 진척을 보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부장 조재빈),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손영배)로 구성된 롯데 수사팀은 롯데그룹의 심장부로 불리는 정책본부 '금고지기' 역할을 한 고위임원과 직원들을 조사해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자금들을 발견했다고 13일 밝혔다.
신격호(94) 총괄회장 명의 190억 원과 신동빈 회장 명의의 200억 원 등 자금 조성 경로가 의심되는 '부외자금' 390억 원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신동빈, 신격호에 매년 수백억원대 자금 흘러가"
롯데 측은 이 자금은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의 배당금과 급여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검찰은 액수가 지나치게 크다는 점에서 계열사를 통해 조성한 비자금일 가능성과 사용처들을 추적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신 총괄회장의 재산관리인 격인 이 모 전무로부터 롯데호텔 33층 비서실 내 비밀공간에 금전출납 자료가 보관돼 있다는 진술을 확보해 금전출납자료와 통장 등도 확보하는 한편, 이 전무 등으로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이 매년 각각 100억 원대와 200억 원대 자금을 받아갔다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계장부 조작이 전제된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의 수사까지 받게 되면서 신동빈 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굵직한 사업들은 잇따라 좌초되고 있다. 호텔롯데는 13일 금융위원회에 상장 철회신고서를 제출하고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화학회사 액시올을 인수해 롯데케미칼을 연간 매출액 21조 원을 넘어서는 글로벌 12위 수준의 종합화학사로 육성한다는 구상에 따라, 지난 3일 액시올 인수전에 뛰어든 롯데는 불과 1주일 만에 계획을 철회했다.
지난해 재승인에서 탈락한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은 올해 말 서울지역 시내면세점 추가 입찰에서 사업권 재획득에 기대를 걸었으나,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올해 12월 예정인 롯데월드타워 완공도 일정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시되고 있다.
롯데월드타워 공사를 진두지휘한 롯데물산의 노병용 대표이사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일으킬 당시 롯데마트 책임자로서 지난 11일 구속돼 버렸기 때문이다.
검찰의 압수수색 전인 지난 7일 멕시코 칸쿤 국제스키연맹 총회 참석차 해외로 떠난 신동빈 회장은 이달 말 일본에서 열리는 롯데홀딩스 정기주주총회가 끝난 뒤에나 귀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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