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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로…새누리, '도로 친박당'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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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로…새누리, '도로 친박당' 되나

[기자의 눈] 정진석 비대위, 원유철 비대위와 다른가?

새누리당이 무기력한 모습으로 '도로 친박당'의 길을 걷고 있다. 4.13 총선 참패 이후 당내 계파 정치를 청산하고 당을 쇄신할 뚜렷한 의지나 계획, 심지어 구호, 뭐 하나 보이는 게 없다. 결정된 것이라고는 권한도, 수장도, 기간도 불분명한 혁신 특별 기구 설치뿐이다. 이대로 전당 대회까지 밀려가면 친박계의 당권 장악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원내 2당'이라는 참사를 부른 장본인들이 곧바로 당권을 쥐는 일이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청와대의 지침만 쳐다보며 수동적으로 갈 길을 정하는 거수기당 말이다.

새누리당이 지금까지의 '관성'을 극복하고 변화할 의지가 있느냐를 볼 수 있는 첫 번째 바로미터는 원내대표 선출과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및 인선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범 친박'계로 분류되는 정진석 원내대표가 선출됐다. 당선자 122명 중 70여 명에 이르는 친박계의 지지를 받았다고 분석된다. 본인은 '계파 정치에서 자유롭다'고 주장했으나, 어쨌거나 자신을 원내대표로 만들어준 세력은 친박계인 것이다. 정진석 69표, 나경원 43표, 유기준 7표라는 개표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이렇게 정 원내대표 운신의 폭은 이미 정해졌다.
'정 원내대표가 결국은 친박계의 이해를 대변할 것'이라는 우려는 곧 이어 발표된 원내 지도부 구성에서 현실이 됐다. 정 원내대표가 함께하길 선택한 원내 지도부는 오히려 이전보다 친박 색채가 한층 짙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는 19대 국회에서 대표적인 친박 초선 공격수였다. 여기에 청와대 대변인 출신 민경욱 당선자가 공동 원내대변인으로 인선 돼 당의 '입'이 되었다.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 출신의 이양수 당선자도 공동 원내부대표에 포함됐다. 강석진 이만희 원내부대표는 친박계 사령관 최경환 의원과 가까운 이들이다. 강 당선자는 최 의원이 원내대표를 하던 시절 그의 비서실장이었고, 이 부대표는 최 의원의 고등학교 후배다.

11일에는 1시간 남짓 중진 회의의 결과로 정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까지 겸임하게 됐다. 비대위는 9월 정기 국회 이전에 치르기로 한 전당대회까지 당을 '임시'로 운영한다. 친박 원내대표의 비대위원장 겸직이라면, 불과 20일 전 무산된 '원유철 비대위원장' 체제와 다를 것이 없다. 원유철 원내대표 또한 전대 이전까지의 당 운영을 한시적으로 맡겠다고 했음에도 이는 황영철·이학재 의원 등이 꾸린 '혁신모임' 등의 반대로 좌절됐다. 그런데 사람만 바뀌었을 뿐 그 성격은 다를 게 없어 보이는 비대위 체제가 결국 들어섰다. 20일이라는 시간이 있었지만 새누리당은 새로운 대안을 만들지 못했다.

비박계가 요구한 '혁신 비대위'를 외면하고 '도로 친박 비대위'를 선택하기까지의 의사 결정 과정도 참으로 볼품없었다. 정 원내대표는 제 손으로 쇄신의 키를 쥐려 하지 않고 외려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뜻의 신조어)' 설문 조사 뒤에 숨어버렸다. 새누리당이 10일 당선자 전원에게 돌린 비대위 구성 방식을 묻는 설문조사는 △관리형 비대위 △관리형 비대위+별도 혁신위 △진단 비대위 △혁신 비대위라는 4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었다. 그리고 응답자의 70% 이상이 두 번째 답변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문 조사로 의견을 모으면 무조건 더 민주적이고 반드시 합리적인 결과가 나오나. 당선자 중 60% 이상이 친박계로 분류되는 현실에서 설문 조사는 친박계 입장을 모으는 기능을 할 뿐이다. 이 설문 조사는 정 원내대표에겐 비판을 차단하고 책임을 분산할 수단이었을 뿐이고, 친박계 입장에선 '관리형 비대위' 출범을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로 쓰였을 뿐이다.

정 원내대표는 이렇게 진행된 설문조사 결과를 들고 11일에는 4선 이상 중진 의원들을 만났다. 1시간 남짓 회의 결과, 회의에 참석한 중진들은 정 원내대표의 비대위원장 겸직과 함께 혁신 특별 기구 구성에 의견을 모았다. 아니, 의견을 모았다기 보다는 설문 조사 결과를 공유하고 특별히 '비토(veto·반대)'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겠다. 당선자 다수가 '관리형 비대위+별도 혁신위'를 택했다는데 '그것은 혁신의 길이 아니다'라며 나설 용자(용기 있는 사람)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렇게 '면피' 성격으로 결정된 혁신 기구니 구성도 전부터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형식적으로 혁신위는 전대 전까지 당 지도 체제와 당권·대권 분리 여부, 정치 개혁안 등 주요 쇄신 방향을 결정해 내놓아야 한다. 전대 전까지 주어진 시간은 3달 정도에 불과하며, 혁신안의 수용을 지도부에 강제할 방법도 없다. 이러니 당 안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고 나온다. 수도권의 한 3선 의원은 "이왕 이렇게 된 거라면 혁신위라도 제대로 구성돼야 하는데 누가 이런 권한도 불분명한 직을 맡고 욕은 욕대로 먹을 일을 하겠다고 나설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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