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초기 창조 경제란 무엇이냐를 두고 논란이 한창이었다. 진정한 뜻을 대통령도 설명해주지 않았으니 여전히 5000만의 미스터리지만, 기존 제조업 중심 국가를 벗어나 '소프트 파워' 강화에 나서자는 의미가 어느 정도 포함된 단어라 추정된다. 특히 이명박 정부 이후 게임 등 IT 산업의 경쟁력 약화가 가속화되었기에 '어떻게 창조 경제 하자는 거냐'는 지적은 차치하고라도, 한국의 IT 기반 산업이 미국의 실리콘밸리처럼 더 창의적이고, 개방적이며, 자유롭게 발전해야 한다는 주장은 당위성을 가지기 충분했다.
불가능하다. 신간 <스마트>(프레데리크 마르텔 지음, 배영란 옮김, 글항아리 펴냄)를 보면, 한국 IT 산업계의 이른바 '선진화'란 지금 생태계에서는 불가능하다는 확신이 생긴다. 교육 체제, 창업 지원 제도, 학생과 교수의 사고방식은 물론 성공에 관한 가치관, 투자에 관한 기준 등 한국인의 의식구조 전반이 바뀌지 않고는 '미국식 벤처 활성화'란 불가능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10년 나온 저자의 화제작 <메인스트림>(권오룡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을 잇는 일종의 후속작이다. 전작에서 저자는 세계 150여개 도시에서 만난 1000명이 넘는 사람과의 인터뷰를 정리해 디지털 시대를 맞아 어떻게 미국식 대중문화가 세계에 침투했는지를 설명하는 한편, 반대급부로 지역마다 일어나는 미국식 대중문화에 관한 저항의 현실을 주목했다.
<스마트>는 이 흐름을 IT 기술의 세계화에 적용해 정리한 책이다. 우리는 인터넷 혁명 이후 세계 시민, 세계 국가 시대의 전조를 보고 있다. 이제 서울에 사는 사람이 뭄바이의 사람과 페이스북으로 친구가 되어 이야기를 나누는 게 자연스럽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슬람국가(IS)의 만행을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사람에게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의 팝 음악은 실시간으로 유럽에서 소비되며, 미국 드라마는 방영 즉시 불법 복제물로 인터넷에 등장한다.
당연히 우리는 인터넷 혁명이 세계인의 사고방식을 보다 '평탄화'하며, 생활양식의 간극을 줄이고, 나아가 기술적 발달 차원을 표준화하리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 곳곳의 IT 기술인과 인터뷰를 나눈 저자는 '아니'라고 확언한다. 오늘날의 IT는 오히려 국경, 문화의 경계 안에서 지역화하고 있으며, 그 차이는 각국이 완전히 다른 방식의 생존 전략을 취하는 양태로 나타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앞서 설명한 실리콘밸리의 사례가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페이스북, 구글, 애플 등 세계 첨단의 IT기업이 즐비한 첨단도시 실리콘밸리는 스탠퍼드 대학교와 히피 정신으로 만들어졌다. 이곳에선 기업을 만들어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이 못잖게 그저 '창업의 짜릿함'을 느끼기 위해 지속적으로 창업에 나서는 '연쇄 창업가'가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 대학 교수부터 제자의 벤처를 지원하는 투자가가 되고, 대학은 거대한 벤처 투자 기관이다. "어떻게 해야 잘 망하느냐"가 문제이지, 창업 후 망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누구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돈에 환장한 IT 청년들만 창업에 나서는 건 아니다.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생은 여태 6만9000여 개의 회사를 창업했는데, 그 중 3만여 개는 비영리 단체다. 낮에는 전공을 살려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서고, 밤에는 맨발로 샌프란시스코 거리를 돌아다니며 기타리스트의 꿈을 실현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한국은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한국에서 창업 후 실패란 곧 인생의 파멸이다. 그저 '기크(geek)'한 이가 꿈을 실현하기 위해 황당한 아이디어를 실현하고자 창업에 나서고, 이 사업에 자금을 지원할 이가 넘쳐나는 생태계란 한국에서 불가능하다. 히피적 마인드가 우대받고, 기술자들이 게이 커뮤니티와 채식주의자 문화와 IT 감성을 자연스럽게 공유하면서 성장할 분위기는 한국에서 찾기 어렵다. 개척가 정신이란, 열린 사고란 한국의 IT 감성과 거리가 멀다. 애당초 실리콘밸리 모델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한국이 열등한 게 아니다. 그저 한국과 미국의 스마트 문화는 다를 뿐이다.
책은 웨이보, 바이두, ZTE 등 떠오르는 중국의 IT 거대 자본을 훑어보며 또 다른 지역화 모델을 찾아낸다. 이곳에는 복제로 덩치를 키운 회사를 공산당이 보호하며, 그 회사를 통해 인민을 관리하는 국가적 통제 시스템이 자리했다. 저자는 타이완으로 망명한 사회운동가와의 인터뷰, 떠오르는 거대 하드웨어 제조 업체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중국의 IT 생태계 모델이 미국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미래를 묻는다(아울러 중국 공산당도 한국의 국정원처럼 정치 댓글 알바를 고용해 여론을 조작한다는 쏠쏠한 재미를 주는 사실도 알려준다. 중국 인민은 이들을 '우마오당(五毛黨, 댓글 하나를 달 때마다 5마오를 받는다는 사실에서 유례)'이라고 비꼰다).
책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오늘날 일어나는 스마트 혁명이 다양한 모습으로 소개된다. 스마트 혁명은 기존 그 나라가 걸어온 길을 '스마트하게' 강화한다. 저자가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찾아간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곳에서는 영미산 슈팅 게임의 불법 복제물이 판친다. 내용이나 게임 진행 방식은 같지만 주인공은 헤즈볼라 전사고, 사살해야 하는 이는 이스라엘 군인이나 미군이다. shiatv.net은 온라인 게임을 무료로 배포한다. 헤즈볼라는 자체 관리하는 방송국을 알 자지라의 경쟁자로 키우려 한다. 이곳에서 스마트 혁명은 헤즈볼라의 저항과 이슬람 혁명의 당위를 전파하기 위한 선전 도구로 활용된다.
팔레스타인 난민의 고난을 상징하는 가자 지구는 어떨까. 이곳으로 들어오는 순간 모든 이집트의 무선 통신망이 끊긴다. 격리된 팔레스타인 사람이 사용하는 모든 통신망은 이스라엘 에레즈 국경 기지국을 거친다. 이스라엘 군대는 팔레스타인 사람의 모든 통신 사용 내역을 감청 가능하다. 자연히 팔레스타인의 모든 인터넷은 곧 저항의 도구다. 이곳에서 스마트 혁명이란 곧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폭력과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현대화하는 상징일 뿐이다.
저자의 전작 <메인스트림>을 잇는 주제는 책 후반부부터 본격적으로 다뤄진다. 대중문화가 스마트 혁명을 맞아 어떻게 변하는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저자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리우데자네이루를 방문하고 범 아랍 위성TV그룹 MBC(한국의 문화방송과 다르다)가 <아랍 아이돌>을 제작하는 모습, 뉴욕현대미술관이 디지털 시대를 맞아 시행한 새로운 시도를 소개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스마트 혁명이 지닌 한계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 무바라크 독재 정권이 추진하던 '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프로젝트'는 현재 아랍어 관련 자료를 인터넷 상에 최대한 보존하는 일에 집중하는데, 난제가 있다. 아랍어 방언이 너무 많아, 이를 표준화된 정보로 축적하는 게 어렵다. 이와 같은 문제는 세계적이다. 현재 위키피디아는 287개 언어를 서비스하지만, 세계에는 6000여 개 언어가 사용된다. 이는 스마트 혁명이 점차 더 지역화하리라는 저자의 전망의 근거가 된다. 세계인이 제대로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의 축적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스마트 혁명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미국은 점차 다양화하는 인구를 어떻게 통합하느냐를 고민할 운명에 처했다. 라틴계, 아시아계 미국인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스마트 혁명이 세계 표준을 가속화하는 도구가 되길 바랄 수 있다. 반대로 멕시코나 한국의 경우, 스마트 혁명이 고유의 문화를 지켜주는 매개체가 되길 희망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저자가 만난 콘수엘로 사이사르 게레로 전 멕시코 문화부 장관은 그들의 언어를 스페인어가 아닌 "멕시코어"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어쩌면 미국이 드리운 그늘에 너무 오래 머물렀기에, 미국인의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된지도 모른다. 인터넷이 세계를 연결하리라는 전망은 어디까지나 아주 비현실적이고 나약한 바람에 그칠지도 모른다. <스마트>는 결코 세상은 그리 돌아가지 않는다는 현실을 발품을 팔아 알려준다. 우리의 미래는 더 '스마트하게' 과거를 소환하고, 스스로를 살찌울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역시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한국판 스마트 혁명은 어떤 미래를 만들까. 현실은 조금 디스토피아적이다. 우리는 이미 인터넷이 지나치게 검열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국가정보원을 위시한 정부의 여러 시도는 이런 통제된 미래상을 더 짙게 채색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 중 이른바 '업자'가 생산하지 않은 정보는 얼마나 될까. <스마트>는 현대판 산업 혁명이 어디까지 왔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를 알려주는 흥미진진한 책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역시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한국판 스마트 혁명은 어떤 미래를 만들까. 현실은 조금 디스토피아적이다. 우리는 이미 인터넷이 지나치게 검열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국가정보원을 위시한 정부의 여러 시도는 이런 통제된 미래상을 더 짙게 채색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 중 이른바 '업자'가 생산하지 않은 정보는 얼마나 될까. <스마트>는 현대판 산업 혁명이 어디까지 왔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를 알려주는 흥미진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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