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만 끝나면 '개새끼'가 된다. 10년 전에도, 지금도 20대는 그렇다. "너희가 투표를 안 해서 졌다"는 얘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지만, 딱히 반박하기도 어렵다. 20대 투표율이 낮은 것은 통계로 확인할 수 있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매번 평균 투표율에서 10% 안팎을 밑도는 것은 물론이고, 지난 2008년 18대 총선에선 급기야 20%대로 떨어져 전 세대에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젊은층에 야권 성향 유권자가 많은 것은 주지의 사실인 바, 20대의 낮은 투표율은 야권에 분통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20대에 대한 야권 성향 유권자들의 불만은 적립금처럼 차곡차곡 쌓였고, 어느 순간 '20대 개새끼론'이 완성되었다. 오는 13일 20대 총선을 앞두고, 20대를 바라보는 '투표 선배'들의 눈초리가 다시금 매서워지고 있다.
왜 20대는 투표를 하지 않을까.
첫 총선 투표를 앞둔 두 20대 청년을 만났다. 이들은 "그놈의 '개새끼' 얘기 좀 안 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밑도 끝도 없이 '20대 개새끼'를 외치는 이들에게 꼭 하고픈 말이 있다고 했다. 다음은 지난 5일 서울 시내 모처에서 권순민, 이연학 두 청년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우리는 개새끼가 아니"라는 20대들의 항변이 궁금한 이들, 그리고 어떻게 하면 20대를 투표장에 보낼 수 있을지 고심하는 야권 관계자와 야권 지지자들에게 특별히 일독을 권한다.
참가자는…
권순민 : 1994년생. 서울 시내 사립 대학교 재학 중. 대학 총학생회 출신. 최근 이재명 성남시장이 SNS에 '투표날 MT 가는 대학 있다'는 글을 올리자, 전수 조사를 통해 '그런 학교 없다'는 반박 글을 올려 화제가 됨.
이연학 : 1994년생. 서울 시내 사립 대학교 재학 중. 권순민 씨와 같은 대학 동기이자 총학생회 친구.
"첫 총선에 대한 기대? 얼마나 나락으로 떨어질지…"
프레시안 : 반갑습니다. 총선이 며칠 남지 않았어요. 두 분은 투표하실 건가요?
권순민 : 네, 하긴 해야죠.
이연학 : 해야죠. 근데 어휴….
프레시안 : (웃음) 왜 한숨을 쉬세요?
이연학 : 아니, 어제 공보물이 와서 봤는데 다들 별로예요. 아무리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공보물이라고 해도 국가 현안에 대한 의견이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 없더라고요. 죄다 토목, 건설 쪽 공약뿐이에요.
프레시안 : 그렇군요. 두 분 모두 22살이니까 총선은 이번이 처음일 텐데, 기대가 되지 않나요?
권순민 : 기대요? 그런 건 전혀 없죠. 넌 기대가 돼?
이연학 : 얼마나 나락으로 떨어질지, (여당 의석이) 180이 될지 안 될지에 대한 그런 기대?
프레시안 : 기대를 안 하는 이유는 뭔가요?
권순민 : 저는 야권 성향이지만, 솔직히 더불어민주당이 된다고 해서 제가 생각하는 의제들이 실현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책이나 신문으로만 접한 역사이긴 하지만, 노무현 정권 시절 평택 대추리 사건 때처럼 시위대를 때려잡거나 하는 부분이 달라질까 싶어요. 새누리당보다 덜 권위적일 순 있겠지만, 덜하거나 더하거나 권위적인 건 매한가지니까요. 총선 국면 들어선 김종인 대표가 위안부 합의 불가역적 합의인 걸 사실이라고 인정하고. 필리버스터도 갑자기 중단시키고. 그런 실정들을 하면서 더 실망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이연학 : 분당 이후로 더민주가 국민의당과 경쟁하면서 중도 지지자들을 데려왔다는 점에서 김종인 대표가 수를 잘 둔 것 같긴 해요. 필리버스터도 오래 안 끌고 가서 역풍을 맞지 않게 된 측면도 있고요. 하지만 적어도 저와 더민주는 더 멀어졌어요.
프레시안 : 여당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권순민 : 거들떠도 안 보죠. 더민주가 그나마 고쳐 쓸 만한 그릇이면, 새누리는 똥이죠. (웃음)
"친구들과 정치 얘기? '안녕들' 때 말곤 글쎄?"
프레시안 : 또래 친구들과는 정치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인가요?
권순민 : 대학 다니면서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를 한 건 '안녕들 하십니까' 자보 열풍 불었을 때랑 세월호 참사 초기 때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안녕들' 때는 정말 쉬는 시간에 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신기했어요. 물론 일부 서울 대학에서나 이슈였겠지만요. 최근에 국회의원 불러다 토론한다고는 하는데, 선거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그런 것뿐이지, 정치가 일상의 영역으로는 전혀 들어오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나마 온라인에서는 하지만,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상에서도 그런 이야기에 반응하는 건 언제나 하던 사람들뿐이에요.
이연학 : 서로 알 거 아는 사람들끼리만 얘기해요. 아, 이런 얘긴 하는 것 같아요. '선거날 뭐 할 거야?' (일동 웃음)
권순민 : 맞아요. 투표날이 '선거'로 인식되는 게 아니라 휴일 같은 거죠.
프레시안 : 주변에서는 총선 당일 뭘 한다고 합니까?
이연학 : 친구들은 '투표하러 가겠지'라고 해요. 그럼 전 '1번만 찍지 마' 이 정도로 얘기해요.
권순민 : 쉬겠다는 친구들이 제일 많은 것 같아요. 물론 투표는 할 거긴 할 거예요. 저 같은 경우는 사전 투표할 거고요.
프레시안 : 학내 부재자 투표소가 사라진 데 대해 각 학교 총학들이 연대 기구를 만들어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죠?
권순민 : 네. 그런데 그게 큰 의미가 있을까 싶긴 해요. 제도적으로 투표 접근성만 높이면 뭘 하나요. 정작 정치에 대해 관심이 없는데.
이연학 : 저는 약간 생각이 달라요. 투표는 어디서든 할 수 있으면 가장 좋은 거잖아요. 투표소는 살짝 멀고 나가기는 귀찮고 그러면 투표를 할까 말까 종일 고민만 하다가 하루를 다 보내는 사람들이 아마 많을 걸요. 투표를 꼭 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투표장이 멀어도 갈 거예요.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까지 투표하라고 하려면, 투표장이 어디에나, 가까이에 있어야죠.
권순민 : 듣고 보니, 그게 맞는 말 같네요. (웃음)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 학내 부재자 투표소 설치를 위해 으쌰으쌰하는 총학생회들이, 과연 지금까지는 정치의 일상화를 위해서 뭘 했느냐는 거예요. 다른 정치는 버려두면서 투표만 신성시하고 챙기는 게 정상인 걸까요?
"'안녕들' 자보 붙이면 교장이 찢던 학교에서 자랐다"
프레시안 : 20대 투표율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비교적 낮습니다. 특히 50대, 60대 이상 연령층과 비교하면 확연하게 차이가 나죠. 왜 20대 투표율은 낮은 걸까요.
이연학 : 세대별 투표율 그래프를 보면, 20대가 제일 낮고, 그 다음이 30대, 그리고 그 다음이 40대예요. 왜 20대가 투표율이 낮느냐라고 묻는다면 전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정치에 접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에요. 저희가요, 19살 때까지는 '화장실 가도 되냐'고 물어보던 사람들이거든요. (일동 웃음)
애초에 성인이 되기 전부터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면 누구나 거리낌 없이 투표를 하러 갈 텐데, 우리는 그런 교육을 그동안 받지 못했던 것 같아요 어차피 투표 안 해도 누가 안 잡아가니까, 굳이 할 필요를 못 느끼는 거죠.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이해관계가 많아지니까요.
권순민 : 저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고등학교 때까진 아무것도 못 하게 하다가, 갑자기 스무 살 되니까 '넌 이 나라의 미래고 너의 손가락에 미래가 달려있어'라고 압박을 줘요. 황당하죠. 저희가 대학 총학생회를 했는데, 학생회도 마찬가지예요. 초‧중‧고 때도 반장 뽑고 학급회의도 하긴 하죠. 그런데 하나마나예요. 회의에서 손들고 말하게 하다 보면 갑자기 담임이 정리하는 식으로 끝나버려요. 학교에선 투표가 뭔지 왜 해야 하는지를 안 알려줍니다. 그런 걸 알려주기는커녕 독재에 유리하도록 교과서도 바꾸는 판이죠. 이런 상황에서 이제 막 성인이 된 20대의 투표율이 높기를 바랄 수 있을까요.
그런데도 "왜 너희는 투표 안 하냐"라고 하는 '진보 꼰대'는요, 이를테면 청소년이 성적 자기 결정권을 말하면 "요즘 애들 왜 이래"라고 하는 사람이나 거의 균질한 집단이라고 봐요.
프레시안 : 좋은 지적이네요. 학교 현장에서 정치가 제대로 교육되지 않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오히려 정치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많이 심어주죠.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교육부의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탄압 같고요.
권순민 : 저희 학교는 사립 학교였는데, 이사장이 '우리 학교는 전교조가 없다'라고 자랑하듯이 말하더라고요. 굳이 전교조 문제까지 안 가더라도, '안녕들' 한창일 때 고등학생이 자보를 붙였더니 교장이 찢고, 세월호 리본도 못 달게 하는 사례도 많이 있었잖아요. 그런데도 20대 투표율이 높으면 이상한 거 아닌가요?
이연학 : 정치 혐오는 이렇게 탄생하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 교육은 신성시되면서 정치는 폄훼되어 왔으니까요. 그걸 학습해온 게 갓 20대가 된 우리들이죠.
"게임 채팅창에서도 '정치질 하지 마'"
권순민 : 페이스북에서 본 건데, 서로 협력하는 게임을 하다가 누가 실수를 했더니, 게임 채팅창에서 왜 못 하냐고 욕을 하니까, 그 사람이 네가 더 못 하잖아, 이런 식으로 얘기했대요. 그랬더니 다시 '정치질 하지마' 이렇게 얘기했다고 하더라고요. 정치질한다는 말이 '책임을 떠넘긴다'는 뜻으로 관용어처럼 쓰이는 거죠. 랩에서도 가사 중에 '나는 정치인이 아니야', '정치질은 국회에서나 해' 이런 게 되게 많아요.
이연학 : 이때 정치질은 '나선다', '선동한다'에 가까운 뜻으로 보면 될 것 같아요.
권순민 : 우리 사회에서는 누군가 나서서 뭘 주장하면, '나대지 말라'는 정서가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저도 학생회나 어디서 사회적인 행동을 하려고 하면, '너는 떳떳하냐'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이건 어떻게 보면 정치에 대한 숭배거든요. '정치를 하려면 이런저런 조건이 있어야 해'라고 하는 거죠. 정치가 특별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이란 인식이 굳어지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그리고 뭔가를 하려는 걸 두려워하기도 해요. 예전에 총학생회에서 대학 평가 반대 운동 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게 이거 해서 불이익보는 거 아니냐고. 저희가 대학 평가 반대 운동 할 때 티저 광고를 냈었거든요? 그때 하필이면 삼성 총장 추천제 공채 시작인지 발표인지 하는 날이었어요. 댓글에 '이거 했다가 고대생들 우르르 떨어지면 너희가 책임질 거냐' 이런 얘기도 있었죠.
프레시안 :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하죠? 입사 시험 볼 때 SNS 검열도 한다던데요.
이연학 : 엄청 많죠. 특히 학생회 하면요. 아마 저도 취직 못 할 것 같아요. (웃음)
프레시안 : 그래도 여러분은 비교적 정치에 관심이 많은 편인 것 같은데, 계기가 있었나요.
권순민 : 토론이나 논술 훈련을 계속해왔어요.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소위 사교육이나 대학을 마음 편히 다닐 수 있는 중산층 가정 출신이라는 환경 덕이 큰 것 같아요. 물론 학원 알바를 해보긴 했지만 다른 알바를 안 해도 되니 시간적인 여유도 있어서 사회 이슈를 숙고할 수 있는 여건이 된 거죠. 전 '정치 사교육'을 받은 게 아닐까 싶어요. (일동 웃음) 정말이요. 농담이 아니라. 왜나면, 공교육에선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까.
이연학 : 저는 개인적인 경험이 좀 더 큰 것 같아요. 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 한 명이 성적 비관으로 자살을 했어요. 그 일을 계기로 교육 제도 전반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또 주위에 자퇴한 친구들이 어렵게 생계 꾸리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정치 세력이 선택이 되어야 내 주변이 편해질까를 많이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너무 선민의식 같긴 하지만요.
권순민 : 학생회 경험도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이 친구랑 저랑 둘이 알게 된 것도 학생회 선거 준비를 하면서였어요. 학생회를 통해 좀 더 작은 영역의 미시적인 영역의 정치에 대한 경험을 하게 됐어요.
"'20대 개새끼론', 어른들이 책임 면피하려 만든 것"
프레시안 : 그렇군요. 지금까지 여러분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중고등학교 때부터 교육되지 않았기 때문에 갓 성인이 된 20대는 정치에 대해 관심이 적은 건 당연하다는 얘기네요. 요즘 20대는 취직도 잘 안 되고 그러다 보니 예전보다 더 먹고 살기 벅차서 더욱 정치에 관심을 두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어요.
권순민 : 저도 많이 들은 얘긴데, 사실 대학 안에 있으면 체감하기 어려운 문제 같긴 해요. 저희 학교 전교생의 80%가 국가 장학금을 신청했는데, 그 중 30% 후반대가 소득 10분위였거든요. 10분위면 연 소득 1억이니 말 다 했죠. 저는 최근에 어려운 환경에 있는 청년들 이야기를 다룬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사실 저도 서울 살고, 부모님도 안정적인 직장 다니시고, 저도 대학 다니니까 '헬조선'이라느니, 사회가 불평등하다느니,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실제로 몸소 느낀 적이 없거든요. 문제는 어려운 친구들의 이야기는 더 대표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20대의 목소리라고 해봐야 대학생의 목소리고, 대학생이 아니면 잘 들어주지도 않겠죠.
프레시안 : 똑같은 20대조차 또래 친구들이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를 체감하지 못하는데, 윗 세대는 알기 더 어렵지 않을까요?
권순민 : 그렇긴 하겠죠. 그런데 체감을 못 할 것 같으면, 이래라 저래라 하는 말을 아예 안 하면 되지 않나요?(웃음) 같은 동네에서 살아도 대학을 다니는 20대랑 아르바이트하는 20대는 서로 사회적 위치가 전혀 다른데, 대학생들이 알바하는 친구들한테 "너희는 왜 투표 안 해?"라고 하는 건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것 아닌가요? 예의의 문제예요. 전 윗 세대가 20대에게 그런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건, 나이 차이로 생긴 권력 덕분이라고 봐요.
권순민 : 다 떠나서, 그런 얘기 들으면 할 사람도 안 할 것 같거든요. 그 이야기의 목적이 투표율을 올리는 데 있을까 의심스러워요. 투표율을 올린다기보단, 졌을 때 면피하기 위한 떡밥을 던지는 게 아닐까 해요. 시험 못 볼 것 같으면 '아, 내가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라고 하는 것처럼요.
프레시안 : 재밌는 통계가 있어요. 20‧30‧40대가 '옹립'했다고 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됐을 당시, 그러니까 17대 대선에서의 20대 투표율이 56.5%였어요.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20대 투표율은 68.4%였어요. 물론 전체적으로 전 연령층을 아울러 투표율이 점점 올라가는 추세이긴 하지만, 20대 투표율 상승률도 결코 뒤지지 않아요.
이연학 : 전 세계적으로도 20대 투표율이 낮더라고요.
권순민 : 그게 당연한 것 같아요. 20대는 아직 직업도 정해지지 않았고, 그러니 자신의 위치를 뚜렷하게 알 수 없잖아요. 누구를 나의 대변자라고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는 거죠. 재산 정도나 직업이나 사는 주소와 같은 게 확정된 게 많을수록 투표를 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 같아요.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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