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오래 살고 건강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 많은 연구들에 따르면 사회 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대체로 키가 크고 비만 위험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는 잘 사는 사람들이 못사는 사람들보다 어린 시절부터 더 좋은 영양 상태의 먹을거리를 접할 수 있고, 운동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영국 의학 잡지에 실린 한 연구에 따르면, 반대로 키가 크고 날씬한 사람들이 삶의 전반에 걸쳐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이에 따라 자신의 사회 경제적 지위를 높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지위가 외모에 영향을 미치는 것 뿐 아니라 외모가 지위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관련 자료 : Height, body mass index, and socioeconomic status : mendelian randomisation study in UK Biobank)
영국 엑세터 의과 대학의 타이렐 등은 영국 바이오뱅크에 등록된 사람들 가운데 37세에서 73세 사이에 해당하는 영국 백인 11만9669명의 유전자 정보와 실제 키, 몸무게 자료를 이용해 유전자형별로 키와 체질량지수(BMI, 체중을 신장의 제곱으로 나눈 값으로 비만도 평가에 이용)를 예측하였다. 이후 이 예측치를 이용해 교육, 소득, 직업 계층, 사회적 박탈 지수 등으로 측정된 개인의 사회 경제적 지위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였다.
일반적으로 현재 어떤 개인의 키나 체질량 지수는 앞서 얘기한 영양 상태나 그 밖의 다른 환경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회 경제적 지위와의 인과성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다시 말해, 키가 크고 날씬해서 사회 경제적 지위가 높은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사회 경제적 지위가 높아서 키가 크고 날씬한 건지 인과관계를 따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는 개인의 유전 정보를 활용함으로써 후자의 가능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는데, 개인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키, 몸무게 유전자는 미래의 자신이 위치할 사회 경제적 지위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키가 크고 날씬한 사람일수록 교육 수준 및 가구 소득이 높았고, 전문직에 종사할 확률이 높았다.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키보다는 체질량 지수가, 남성의 경우에는 키가 사회 경제적 지위에 더 유의한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지적 능력과 생활 환경이 비슷한 같은 키의 여성이라 하더라도 체중이 4~5킬로그램 정도 더 나가는 사람은 1년에 약 3000파운드(한화로 약 500만원) 적게 버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남성의 경우에는 다른 조건은 모두 같으면서 키가 2인치(약 5센티미터) 더 큰 사람이 1년에 1500파운드(약 250만 원) 가량 더 많이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연구 결과를 놓고서, 유전자 결정주의적 해석과 시각을 경계하며, 오히려 외모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과 낙인 그리고 개인의 자존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사회적 현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즉, 우리 사회에 실재하는 외모 차별 문화가 개인의 사회적 기회와 경제 수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비만의 경우 그 자체로도 건강에 위험할 수 있지만, 비만으로 인해 사회 경제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처하게 된다면 이로 인한 추가적인 건강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연구진들이 한계점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개인의 유전자는 결국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고, 자식의 사회 경제적 지위 역시 부모로부터 대물림되는 경우가 많음을 고려할 때 해당 연구 결과에서 부모의 효과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취업 성형'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외모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돌아보자면 외모가 지위를 결정한다는 연구 결과가 새삼 놀라울 것도 없다. 우리 사회 차별과 불평등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씁쓸한 연구 결과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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