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 시 반. 동도 트지 않은 이 시각, 에블린은 벌써 분주하다. 다섯 식구의 아침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타워빌 봉제 협동조합 '익팅'의 회장 에블린은 집에서는 둘째 딸과 손녀, 그리고 막내 아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다.
2009년 '온도이' 태풍 이후 대피소를 전전하다 타워빌에 정착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집은 어수선하다. 건물이 다 지어지지 않은 건지, 엉성하게 발린 시멘트 벽 아래로 시멘트 가루가 수북이 쌓여 있다. 대문도 없다. 지붕에는 평형이 맞지 않는 슬레이트가 몇 장 얹혀있다. 칸막이로 쓸 나무판자도 없어 커튼, 옷장으로 임시 벽을 만들어놨다.
방, 부엌, 화장실 모두 합쳐 7평 남짓. 다섯 식구가 살기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그래도 야외 대피소에서 시체 옆에 눕던 시절에 비하면 천국이다. 게다가 집에 부엌이 따로 있을 정도면, 에블린네는 이 동네에선 꽤 잘 사는 축에 속한다.
새벽 다섯 시. 손자 저스틴의 볼을 쓰다듬던 에블린이 시계를 보고는 황급히 부엌에 들어갔다. 찬장에서 계란 두 개, 소시지 두 개를 꺼냈다.
타워빌에 입주한 가정 대부분이 그렇듯, 에블린네 집에 냉장고는 없다. 지금은 집을 나간 며느리가 저스틴을 낳을 때 돈이 없어서 냉장고를 팔았다. 부엌은 썰렁했다. 식재료도 얼마 없다. 필리핀은 더운 나라다 보니, 냉장고가 없으면 집에서 음식을 보관하기 힘들다. 보통은 그때그때 사다 먹고, 아니면 소금에 절인 음식을 구비해둔다.
"조벨, 학교 가야지, 빨리 안 일어나면 늦어."
음식하랴, 아이 깨우랴 분주한 에블린의 모습은 한국의 여느 집 엄마, 할머니 모습과 다르지 않다.
부스스 일어난 조벨이 씻기도 전에 먼저 쪼르르 부엌으로 가 얼굴만 빼꼼 내민다.
"오늘 메뉴 뭐야?"
"계란 볶음밥이랑 소시지 볶음"
고봉으로 쌓은 밥을 다 먹은 조벨은 어느새 씻고 나와 용모 단장에 한창이다. 9학년. 우리나라로 따지면 중학교 2학년.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을 때다. 옷장에 달린 거울에 얼굴을 처박다시피 하던 조벨이 "왁스 사야 한다"며 에블린에게 손을 내민다. 조벨을 한참을 째려보던 에블린이 마지못해 아들 손에 5페소를 쥐여준다. 머리에 왁스를 바르고 얼굴에 파우더까지 바른 조벨이 집을 나선다.
다음은 손자 저스틴을 깨울 차례다. 방 한복판에서 쿨쿨 잠든 저스틴은 도통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에블린이 저스틴을 깨우는 소리에, 옷장 뒤에서 함께 자던 딸 조셀린과 손녀 저메인이 먼저 몸을 일으켰다.
딸 조셀린은 세 살배기 어린 저메인을 돌보느라 직장을 다닐 수 없다. 저메인 아빠이기도 한 조셀린의 남자친구는 마닐라에서 건축 일을 하느라 주말에만 집을 찾아온다.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 결혼하는 것'이 지금 조셀린의 꿈이다. 여력이 된다면, 언젠가는 직장을 찾아 일도 할 계획이다. 똑똑한 딸이 공부도, 일도 그만둔 채 집에만 있는 게 에블린은 내심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나이 예순, 다섯 식구의 가장이 되다
마닐라에 있을 때 에블린네 가정은 형편이 좋았다. 남편은 꽤 직급이 높은 경호원이라 벌이가 좋았다. 풍족한 살림 덕에 집은 평화로웠다. 그런데, 태풍이 모든 걸 앗아갔다.
"지금도 가끔 그때가 생각나 무서워요."
태풍, 홍수로 이미 동네가 초토화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당시 정부가 댐을 열어버리는 바람에 에블린네 이웃 72명이 급류에 휩쓸려갔다.
임시 대피소 생활은 더욱 끔찍했다.
"가진 거라곤 입고 있던 옷 한 벌밖에 없었어요. 대피소 말곤 갈 수 있는 데가 없었어요. 대피소로 쓰인 작은 야외 농구장에는 천 명 정도가 살았어요. 화장실은 너무 더러웠고, 그나마도 가려면 하루 종일 줄을 서야 했어요. 그리고 자다가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옆에 시쳇더미가 있었죠. 그런 곳에서 3개월을 살았어요."
그러다 정부가 시키는 대로 이곳 타워빌에 왔다. 처음엔 막막했다. 물도, 전기도 없고 먼지만 풀풀 날리던 이 곳에서 무얼 할지 암담했다. 레스토랑, 베이커리 아르바이트, 건축 일. 마닐라를 오가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예순에 가까운 나이었다. 몸이 견디질 못했다.
타워빌에 '캠프' 봉제 센터가 생긴 건 에블린에겐 큰 행운이었다.
"마닐라까지 멀리 가지 않아도 정기적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게다가 나이 먹어서도 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고, 마을 주민들과 어울릴 수도 있고, 봉제센터에 오면서 불행하던 제 삶이 달라졌어요."
봉제 센터에서 일하며 생활의 안정을 찾아갈 무렵, 남편이 파킨슨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넉넉지 않던 살림살이가 더욱 빠듯해졌다. 남편 대신 에블린이 가장이 되었다. 마닐라에서 일하는 첫째 셋째를 제외한 나머지 식구의 생계가 에블린에게 달려 있다.
"매달 납부해야 하는 수도세가 300페소(한화 약 7500원) 정도예요. 남편이 죽고 나서 만 2000페소가 밀려있어요."
이런 상황을 생각할수록 에블린은 '캠프'가 더욱 고맙다.
"캠프가 없었다면, 아마 마닐라로 가서 일자리를 찾아 헤맸겠죠. 그런데 예순 다 된 저를 누가 받아주겠어요."
이미 몸도 성치 않다. 에블린은 15년째 고혈압 약을 복용하고 있다.
"체력이 허락하는 데까지, 일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하고 싶어요."
에블린이 벽 어딘가를 손으로 가리켰다. 자격증을 담은 액자가 걸려있었다.
"봉제 센터 4개월 훈련이 끝나고 받은 자격증이에요. 많은 나이에도 이런 자격증을 따게 돼서 뿌듯해요. 이 자격증을 받은 게 타워빌에 와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유치원 덕에 엄마‧할머니 마음 놓고 일해요"
떼쟁이 손자 저스틴을 어르고 달래 집 밖에 나선 게 오전 7시 30분. 손자 챙기느라 정작 에블린은 머리도 제대로 말리지 않아 어깨에 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래도 발걸음이 가볍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스틴은 유치원을 다니지 못했어요. 그래서 엄마 없는 저스틴을 떼어놓고 집을 나서는 제 마음은 항상 찜찜했어요. 다행히 캠프 내에 유치원이 생기면서 마음 놓고 저스틴을 맡기고 저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몇 달 전, 캠프 부지 내 유치원이 만들어졌다. 캠프 봉제 센터에서 봉제 강습을 받고 싶어도, 일을 하고 싶어도 아이들 보육 때문에 신청을 못 하는 타워빌 어머니들을 위해 지은 것이었다. 수업료는 인근 유치원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 정도다. 수업료도 거의 아이들 급식 비용으로 쓰인다. 영양 불균형, 발육 부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이다. 현재 에블린네를 포함한 마흔다섯 가정이 이같은 혜택을 받고 있다.
캠프 부지까지는 집에서 십오 분 거리. 저스틴을 먼저 유치원에 데려다준 뒤, 에블린이 봉제센터에 들어섰다. 출근 카드를 작성한 뒤, 에블린이 향한 곳은 '간식 코너'로, 봉제센터 근무자들의 협동조합 '익팅'이 운영하는 곳이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15분, 또 오후 3시부터 15분 동안은 '간식 시간'이다. 그런데 가게가 먼 탓에, 먹을거리를 사오고 느긋하게 먹기엔 시간이 빠듯하다. 그래서 조합 차원에서 한꺼번에 싸게 많이 사다 놓고 조합원들에게 정가대로 판 뒤, 남은 돈은 조합 공동 기금으로 사용하기로 한 것.
이렇게 간식을 사고 팔고 장부를 정리하는 것은 '익팅' 회장인 그의 몫이다. 꼼꼼하게 장부 정리를 하고,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채우고, 음료수를 넣어놓은 에블린은 그제서야 자기 자리에 가서 재봉틀 주변 정리를 한다.
'감시자' 없어도 잘 돌아가는 행복한 공장
70여 명의 동료들이 속속 들어오자, 봉제 공장에는 활기가 피어난다.
"나나이, 굿모닝 뽀!"
영어와 타갈로그어가 섞인 인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오전 8시. 이제 일을 시작할 시간. 그런데 약속이나 한 듯 조합원들이 제 자리에서 일어난다. 스피커에서는 빅뱅의 '뱅뱅뱅' 노래가 나오고, 조합원들이 활기차게 몸을 움직인다. 작업 중 다치지 않도록 몸의 긴장을 푸는 아침 운동이다.
에블린은 영 쑥스러운지 쭈뼛거리면서도 몸을 살랑살랑 흔든다.
서로의 어설픈 춤 동작을 보며 웃음을 터뜨리던 조합원들이 노래가 끝나자 자리에 앉아 재봉틀을 돌리기 시작한다. 멀찍이서 보면 여느 공장과 비슷한 분위기인 것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사뭇 달랐다.
흥이 남았는지 휴대폰으로 노래를 크게 틀고 흥얼흥얼 거리는 조합원, 어제 본 TV 드라마 줄거리를 신나게 떠드는 조합원, 자리 앉자마자 남편 욕 삼매경인 조합원 등 작업장 분위기가 무척 자유로웠다.
"여기선 일을 시작하라고 명령하는 사람이 없어요. 나는 '익팅'의 회장이긴 하지만, 조합원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사람이지, 관리자가 아니에요. 우리를 지원해준 NGO 단체 '캠프'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공장을 세워주고, 많은 도움을 줬지만, 우리를 다른 사용자처럼 '부리지' 않아요. 감시자가 없어도 각자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해요."
이처럼 자유로운 분위기는 공동으로 수익금을 나눠 갖는 협동조합 구조에서 기인한다.
"지금 당장 마닐라에 있는 공장에 가면 돈은 더 많이 받을 순 있어요. 하지만 온갖 인격적 모독과 고된 노동에 시달리겠죠. 그렇게 힘들게 돈 버느니, 아주 많지는 않더라도 우리 스스로 알아서 열심히 일하고 수익을 얻는다면, 그게 더 좋은 길 아닐까요.
게다가, 여기가 아니면 어디서 마음 편하게 아이들 걱정 없이 돈을 벌 수 있겠어요? 우리 모두 그걸 잘 알고 있어요."
에블린은 익팅과 같은 형태의 지역 일자리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일자리는 생계뿐 아니라 개인의 자존감과도 직결된 문제라고 했다.
"타워빌 전체 숫자에 비하면 여기 봉제 센터에서 일하는 주민은 소수에 불과해요. 하지만 봉제 센터가 생기면서 동네 분위기가 달라진 걸 느껴요. 타워빌에는 아직도 너무나 가난하고 희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런 일자리가 더 많이 생긴다면, 타워빌은 더욱 좋은 동네가 되리라고 믿어요."
* 이 기사는 미디어 다음과 공동 게재합니다.
(☞바로 가기 : "나나이(Nanay), 슬럼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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