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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 이젠 패션도 '비건'하세요

[함께 사는 길] 먹는 비건, 입는 비건으로 확대되다

지난해 11월 27일은 미국에서 가장 큰 폭의 세일과 더불어 연중 최대 쇼핑이 이뤄지는 날이라 할 수 있는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였다. 그날 미국 내 주요 도시에서는 모피 없는 금요일이라는 뜻의 '퍼 프리 프라이데이'(Fur Free Friday) 캠페인이 펼쳐졌다.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 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가 주도한 '모피 없는 금요일' 캠페인은 미국 연간 소비의 20퍼센트가 몰린다는 이날 쇼핑객들에게 '비건'(Vegan) 쇼핑을 권장했다.

비건 패션을 아시나요?

'비건'(vegan)은 원래 채식주의 중에서도 유제품과 달걀까지 먹지 않는 가장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일컫는다. 여기에서 파생된 '비건 패션'이란 용어는 생산과정에서 동물 학대를 수반하는 동물 가죽이나 털을 사용하지 않고 만든 옷이나 가방 등을 의미한다. 먹는 비건이 입는 비건으로 적용된 셈인데, 입는 비건에게 식물성 천연섬유나 합성섬유는 허용되지만 동물성 소재는 피해야 한다.

모피를 위해 수많은 동물들이 좁은 케이지 안에 감금돼 물과 먹이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함부로 취급되고, 살점이 떨어져 나간 상처를 달고 사는가 하면, 병에 감염되어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다. 이 같은 고통은 죽는 순간까지 이어진다. 이들은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거나 털 손상을 제한하기 위해 항문을 통해 감전사 되고 있다.

▲ 모피를 얻기 위해 매년 수천 마리의 동물들이 죽고 있다. ⓒEmma Forsberg

2015년 발표된 '동물에 대한 존중'(Respect for Animals) 보고서에 따르면, 모피 산업에 의해 세계적으로 제일 많이 희생되고 있는 동물은 밍크이고, 그다음은 여우다. 모피의 가장 큰 생산지로 알려진 곳은 유럽이며 중국의 비중도 빠르게 상승 중이다. 2014년 유럽에서만 4100만 마리 이상의 밍크와 200만 마리 이상의 여우가 모피 때문에 죽었다. 중국은 전 세계 모피 수요의 약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비건 쇼핑은 모피(fur), 울(wool), 다운(down), 앙고라(angora), 가죽(leather) 등 원료에 있어 동물에게 잔인함을 수반하는 모든 제품들을 쇼핑 리스트로부터 삭제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렇다고 쇼핑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쇼핑객들은 다운(down) 소재가 들어가지 않은 베개나 재킷 구매를 통해 거위와 오리를 도울 수 있으며, 가죽 소재가 아닌 핸드백이나 신발을 선택해 동물을 해칠 필요 없는 스타일을 선물할 수 있다.

피해야 할 동물성 소재는 모피, 울, 다운, 앙고라, 파시미나(pashmina), 캐시미어(cashmere), 캐멀 헤어(camel hair), 모헤어(mohair), 알파카(alpaca), 실크, 가죽, 스웨이드(suede) 등이다. 반면 비건 소재에는 면, 리넨, 데님, 저지, 캔버스, 나일론, 폴리에스터, 아크릴, 스판덱스, 레이온, 플라스틱 재활용 섬유, 극세사, 고어텍스, 합성다운, 인조 가죽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세계 디자이너들이 주목하는 비건 패션

아크릴로 만드는 인조 모피도 비건 소재에 속한다. 특히 인조 모피는 소재의 고급화에 더해 '하이 패션'(high fashion, 유행되기 이전 먼저 디자인된 스타일로 패션 흐름을 선도함)으로 각광받고 있다. 여러 패션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이 비건 패션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용어에도 반영되고 있다. 가짜라는 뜻의 불어나 영어를 붙여 '포 퍼'(faux fur) 또는 '페이크 퍼'(fake fur) 정도로 불리던 인조 모피가 이제는 '비건 퍼'(vegan fur), '펀 퍼'(fun fur, 재미있는 모피), '에코 퍼'(eco fur) 등으로 불리며 긍정성이 가미되고 있다.

패션 브랜드인 '보트 쿠튀르'(Vaute Couture)는 '비건'과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가 조합된 용어다. 고급 의상점이라는 뜻의 오트 쿠튀르는 원래 패션 흐름을 선도하는 패션쇼의 권위를 담고 있는 말인데 보트 쿠튀르는 모델이자 패션 디자이너이기도 한 린 힐가트(Leanne Mai-ly Hilgart)로부터 유래한다. 린은 세계 최초 비건 패션 브랜드인 '보트'(VAUTE)를 2009년 런칭해 2013년 뉴욕 패션 위크(New York Fashion Week)에서 첫 번째 비건 패션을 선보였다. 보트(VAUTE)는 동물에서 유래한 소재를 쓰지 않는다.

▲ 뉴욕 패션 위크에 선보인 비건 패션. ⓒADinfinitum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이자 디자이너인 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도 비건 패션의 선두주자로 알려졌다. 비틀즈 멤버인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의 딸이기도 한 스텔라 매카트니는 채식주의자이면서 자신의 브랜드를 친환경적으로 운영해 왔으며 동물 가죽이나 모피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인조 가죽과 합성 스웨이드를 사용해 온 스텔라 매카트니는 유독 인조 모피와는 거리를 둬오다 가을/겨울 2015 패션위크부터 인조 모피를 사용한 'FUR FREE FUR' 라인을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했다. CNN과 <가디언> 등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텔라 매카트니는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 모피 때문에 내가 진짜 모피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소비를 촉진하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며 "그런데 이제는 진짜 모피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도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파리 패션위크에서도 'FUR FREE FUR' 상표를 옷 위에 드러내는 방식으로 인조 모피의 식별 가능성을 높였다.

과거 인조 모피는 값비싼 진짜를 대체하기 위한 저렴한 대체재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인조 모피는 동물 모피를 대신하는 윤리적 소비로서, 그리고 연출이 자유로운 패션 소재로서도 새롭게 각인되고 있다. 고급 인조 소재들이 많이 나와 촉감, 보온력, 외관 등 다방면에서 질적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비건 패션은 몇몇 브랜드를 통해 이미 대중화되었다. 2013년 등장한 영국의 인조 모피 브랜드 '쉬림프'(Shrimp)는 전 세계 패셔니스타들을 열광시키며 단숨에 럭셔리 브랜드로 급부상했다. 비건 패션에 대한 전략적인 확산 움직임도 관찰된다. 인도의 패션 산업을 선전하기 위해 설립된 FDCI(the Fashion Design Council of India)는 패션 디자이너들의 비영리 협회다. FDCI는 2012년 'PETA'와 함께 비건 패션의 확산을 독려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the Fashion for Freedom Boycott Bill)을 발표했다.

무엇을 입을 것인가

사실 패션은 태생적으로 친환경적이기는 어려운 분야다. 패션 정보 업체인 '패션바이'(Fashionbi)는 패션 분야가 석유 산업 다음으로 큰 오염자라고 했다. 섬유 처리에 쓰이는 화학물질이 수질을 오염시킨다는 것이다. 인조 모피는 제작 과정에서 화학물질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진짜 모피 역시 동물의 부패를 막기 위해 많은 양의 화학물질을 쓴다. 인조 모피의 태생적 위치상 환경파괴와 무관할 순 없지만 그것은 인조 모피여서가 아니라 모피이기 때문이요 소비를 수반하는 패션 산업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패션 안에서 발버둥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으로서의 인조 모피의 등장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밀라노 패션 분석자이자 패션바이(Fashionbi)의 CEO인 엠비카 주치(Ambika Zutshi)는 "오늘의 세대는 그 어느 때보다 에코 의식적(eco-conscious)"이라며 패션업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속가능한 움직임들에 시선을 던진다. 비건 패션의 대두는 동물 학대 문제를 고민하는 시민의 확산 그리고 지속가능한 패션을 향한 인류의 노력의 일환으로서 새롭게 접근될 필요가 있다.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바로 가기 : <함께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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