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들 와, 오늘이 마지막이지? 앞으로도 건강해야 해."
명랑하게 학교 언덕을 내려오는 아이들을 보는 손철균 보안팀장의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 세월호 참사 후 동네 주민으로 자원봉사를 하다 단원고 경비원이 된 그는 벅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고 나고 처음엔 말썽을 많이 피워서 정말 걱정이 많았는데, 고맙게도 잘 자라줬어요. 매일 아침저녁으로 얼굴 보던 애들이라 보내는 게 섭섭하기도 하지만, 잘 되길 바라야죠."
12일 오전, 졸업장을 품에 안은 86명의 아이들이 단원고 교문을 나섰다. 250명 친구와 12명의 선생님을 가슴에 묻은 채로.
"'세월호 사건'이라는 겨울...함께 극복하고 성장하는 법 배웠다"
때 되면 손에 쥐는 게 졸업장이라지만, 단원고 학생들에게 졸업장은 너무도 각별할 수밖에 없다. 이날 졸업식에서 졸업생 대표 최모 양은 답사를 통해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우리에겐 세월호 사건이라는 겨울도 찾아왔지요. 혼란스런 병원 생활, 새로운 환경의 연수원, 다시 돌아온 학교, 그리고 그 속에서 따라오는 수많은 시선과 비난들. 아마 모두에게 힘겨운 여정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학창시절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다른 전국의 고등학생처럼 온전히 학업과 꿈에 열중하지 못했다 말할 수도 있지만 말로는 차마 표현할 수 없는 삶의 고난과 역경을 겪었고 그것을 함께 극복하고 성장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모든 아픔을 털어낼 순 없었다. 참사 후 겨우 1년 8개월이 지났을 뿐이다. 오지연 단원고 생존학생 학부모대책위원회 대표는 "여전히 아이들은 아프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밤새 약으로 버티는 아이들이 있고, 세상의 끈을 놓으려는 아이들도 있어서 걱정이 된다"며 "사회에 나가면 더욱 밝게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바라는 것은 그걸로 족하다"며 안쓰러운 마음을 드러냈다.
"게임 좋아하던 창현이, 졸업하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는데..."
4월 16일이 지나도, 졸업식이 끝날 때까지도 250명의 친구들은 끝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이날 86명의 학생들은 함께 졸업하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꽃 250송이를 준비했다.
4·16가족협의회가 미수습자 등의 문제로 이미 졸업식 불참 의사를 밝힌 터라, 희생자 부모 가운데에는 7명만이 졸업식에 참석했다.
졸업식에 온 희생자 부모들은 생존 학생들의 졸업을 축하하면서도, 슬픈 마음을 드러냈다. 고(故) 이창현 군의 아버지 이남석 씨는 "생존 학생들이 많은 아픔이 있을 텐데 하루빨리 치유하고 학업에 충실해서 사회에 적응할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 "유가족들은 나머지 학생들이 다 올라왔을 때 졸업식을 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창현이가 생전에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많이 해서, '졸업하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는데, 그런 삶을 살 수 없고 별이 됐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생존 학생과 가족들만 참여한 졸업식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한 시간 만에 끝났다. 학교 차원에서 외부인 출입을 차단해, 시민들은 교문 밖에서 '고마워요, 응원할게요', '미안해요 다 어른들 잘못이에요'라고 쓴 손 피켓을 들고 학생들의 졸업을 축하했다.
"단원고 교실, 추모 아니라 새로운 교육 위해 보존해달라"
단원고 졸업식 불참 의사를 밝힌 4·16가족협의회는 이날 안산 화랑유원지 세월호 참사 합동분향소에서 졸업식 대신 추모식을 별도로 진행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졸업하는 아이들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었는데, 생존자 학부모님들이 허락하지 않아서 이 자리에서 하게 됐다"며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공개한 축사를 낭독했다. 그는 "그동안 잘 해왔지만 앞으로도 절대 주눅 들지 말라.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떳떳하게, 자신 있게 대하라"며 "별이 된 250명 친구들과 열두 분 선생님들이 언제나 여러분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했다. (☞관련기사 : "여러분의 졸업은 슬픈 졸업이 아닙니다")
이어 희생자 부모들이 단원고 교실을 추모 공간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 "추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4월 16일 이후로 학교가 변하고 새로운 교육이 시작되기를 바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분향을 마친 유족들은 400여 명의 시민들과 함께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단원고로 행진한 뒤, 아이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교실을 방문했다.
분향소에서부터 눈물을 감추지 못하던 고(故) 김수정 학생의 부모님은 2반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오열했다. 부부는 딸의 책상을 연신 쓰다듬으며 한동안 자리에 머물렀다. 시민들도 함께 눈물을 훔쳤다.
슬픈 졸업식 날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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