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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어떤 성격의 '초강대국'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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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중국은 어떤 성격의 '초강대국'이 될 것인가

[백년포럼] 서세동점의 해소, 다른 백 년은 가능한가?

'서세동점'(西勢東漸, 서양 세력이 동양을 지배하는 시대)은 해소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한국은 서세동점의 해소를 통해 다른 백 년을 맞이할 수 있을까?

26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백년을 모색하는 '다른백년 창립준비모임' 주관으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해소, '다른 백 년'을 가져온다"를 주제로 하는 백년 포럼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주제 발표를 맡은 역사학자 김기협은 그동안 세계를 지배해 온 서구 중심의 '원자론적' 질서가 한계에 도달했다면서, '유기체적인 질서'가 그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협 선생은 "19세기에 유럽을 완전히 사상적으로 지배했던 이론이 원자론이다. 여기서 개인주의 풍조가 일어났는데, 문제는 원자론이 이렇게 긴 시간에 걸쳐 강한 지배력을 가진 적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춘추전국시대 법가 사상에서 원자론적 원리에 입각한 사회조직 방법이 장기간 광범위하게 차용됐던 사례가 있는데, 당시 중국은 철기 보급으로 생산력이 급속히 확산되던 때"라고 진단했다. 급격한 생산력의 발전이 일어나는 시기에서는 원자론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평가다.

▲ 역사학자 김기협 ⓒ진선영

그런데 근대 이후 원자론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김 선생은 "급격한 기술 발전으로 자원 공급이 무한대로 확대될 것 같이 느껴지는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지속성이 가능하긴 하다"면서도 "그런 급속한 발전은 자연을 타자화 시키고 뭉개면서 우리가 필요한 자원을 뽑아 내는 방식으로 이뤄졌고 20세기 후반에는 결국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그는 "1970년대 로마클럽보고서 '성장의 한계'가 나오고 오일쇼크가 겹쳐지면서 지속가능성 문제가 비로소 전면에 나서게 됐다. 근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한계가 확인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한계를 뛰어넘을 만한 대안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세계적으로, 그리고 각국 내부의 모순은 점점 커지고 있다.

중국, 서구 자본주의 뛰어 넘을 대안?

세계를 움직이는 대안적인 세계관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김 선생은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이제 관심은 중국이 초강대국이 될 것인가 여부가 아니라 어떤 성격의 초강대국이 될 것인가로 모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선생은 세계체제론을 발전시켜온 비교사회학자 조반니 아리기의 분석을 참고했다. 그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전개 과정을 개관하고 미국 헤게모니의 말기 증상을 살펴본 아리기는 1994년 <장기 20세기>라는 책에서 중국의 약진에 관심을 집중하고 세계체제의 다음 단계를 내다보는 열쇠를 찾았다"고 설명했다.

김 선생은 "책에서 아리기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제시된 '시장경제'가 자본주의의 무제한적 축적을 지향하는 원리와 다른 것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자본주의가 아닌 경제 발전 방식이 가능하며 전통시대 중국의 경우를 구체적 사례로 검토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고 덧붙였다.

아리기는 스기하라 가오루가 제기한 '근면혁명'(Industrious Revolution)을 예로 들었다. 이는 경제적인 향상을 추구하면서 인적 자원을 동원하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자본 집약적인 자본주의 발전에 대항하는 노동 집약적인 발전 원리를 제시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리기는 이 개념이 전통시대의 중국에도 적용되고 20세기 후반 이래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급속한 경제 발전에도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김 선생은 이에 대해 "근대 문명의 원자론적 관점에 밀려난 전통 문명의 유기론적 관점의 부활 가능성을 여기에서 본다"면서 "'서세동점'의 본질인 원자론적 관점의 극복에서 그 해소의 결정적 열쇠를 찾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성공회대학교 이남주 교수는 "아리기는 중국의 변화를 중국의 전통적인 요소와 결합시켜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를 이야기했고, 이것이 자본주의와 다른 길을 갈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서 설명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아리기는 중국의 농업사회적 전통에서 오는 규정력 또는 중국 공산당이나 사회주의 안에 있는 전통적 요소, 이데올로기가 가지고 있는 힘, 정부나 국가가 가지고 있는 공공적인 역할 등이 작동하는 부분에 주목하면서 중국의 변화를 다층적으로 설명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 성공회대학교 이남주 교수 ⓒ진선영

하지만 그는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중국이 아리기가 이야기한 가능성을 실현시키고 있느냐는 부분에서는 조심스러운 평가가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 교수는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자본주의의 성과를 수용했는데, 중국 내에서 이를 수용하는 정도를 넘어서 자본주의의 긍정적 측면들이 사회의 기본 논리로 뿌리를 내릴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즉 지금의 중국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요소와 자본주의의 긍정적인 측면을 결합시켜 새로운 대안체제를 만드는 것보다는, 기존 자본주의 국가들과 유사한 양상으로 국가 체제를 가져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중국이 자본주의로 갈 것인지, 아니면 사회주의로 갈 것인지 양자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양자의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중국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 나가면서 동아시아나 세계 차원의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One Road) 프로젝트가 서세동점의 해소와 연결되는 부분에 주목했다. 그는 "일대일로가 가지고 있는 문명적 전환의 계기가 있다"면서 "바다와 육로를 통해 유럽으로 향하는 길을 연결하겠다는 것인데, 이게 '서진'(西進)적인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 전략의 핵심은 중국-중앙아시아-유럽으로 가는 대륙 네트워크를 다시 만드는 것인데, 이것이 자본주의의 세계적 팽창과 어떤 협력 모델을 만들 수 있을지, 대륙적인 협력이 해양적인 협력과 어떤 다른 측면을 만들 수 있을지 등의 문제들이 떠오른다"며 "(일대일로가) 다른 가능성을 이야기할 때 새로운 협력 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사실 우리에게도 서진적인 요소들이 많다. 냉전 붕괴 직전부터 노태우 정부 시절 북방정책이 있었고 DJ 정권때는 남북 정상회담, 노무현 정부 때 활발했던 남북관계를 넘어 박근혜 정부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기치로 내걸고 있다"면서 "이것이 모두 전부 서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인데, 여기서 많은 잠재력을 발굴해야 할 상황이다. 서세동점의 해소와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실질적인 움직임"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주의를 돌아본다

원자론에 입각한 서구 중심의 자본주의가 물러난다면 그 자리는 어떤 대안으로 채울 수 있을까? 김기협 선생은 흔히 '좌익' 사상이라고 알려져있는 사회주의가 실제로는 "좌우를 뛰어 넘는, 중도 노선적인 '제3의길'로써 잠재성을 가졌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820년대 사회주의가 처음 등장했을 때 '개인주의'에 대비되는 의미로 '사회주의'가 쓰였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1848년 <공산당 선언>이 등장하면서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모두 사회주의인 것으로 규정되기 시작했다. 그는 이러한 개념 정의는 곧 "범주 착오"라고 일갈했다.

김 선생은 "공산당 선언이 나오면서 제대로 된 사회주의는 '과학적 사회주의', 즉 공산주의이고 그전에 사회주의를 운운했던 것은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규정됐다"면서 "1820년대 사회주의는 원자론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원자론을 따르는 공산주의 계파 중에서 '사회주의도 자본주의에 반대했잖아. 그럼 우리 편이야'라면서 사회주의를 납치해 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산주의도 원자론적인 원리에 따른다는 점에서는 자본주의와 가깝다"고 평가했다.

김 선생은 해방 이후 1946년에 실시한 여론조사를 예로 들며 20세기 원자론이나 개인주의 지배가 확립돼있지 않은 사회에서는 사회주의를 '반(反) 개인주의'로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조사에서 응답자의 70%는 사회주의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당시 조선인의 대다수가 지키고 있거나 기억하고 있던 '전통질서'는 유기론적 원리에 따른 것이었다"면서 사회주의가 개인주의에 반대되는 체제로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 왼쪽부터 성공회대학교 이남주 교수, 김기협 역사학자, 박인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이사장 ⓒ진선영

이에 대해 이남주 교수는 "사회주의가 열린 개념일 수 있었는데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정통 개념에 의해서 그런 가능성이 제약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반 개인주의적인 의미로서 사회주의를 강조하고 이것이 반(反) 자본주의와 차이가 있는 것으로 이야기했는데, 이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개인주의 논리와 원자론을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반자본주의 성격을 갖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다만 "사회주의에 대해 열린 논의가 있어야 하고 그를 통한 대안적 상상, 더불어 '서세'의 진정한 해결 등이 우리의 과제라고 한 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 교수는 개인주의나 원자론이 지배적인 사상이 아닌 사회에서 사회주의가 어떻게 수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중국을 꼽았다. 그는 "중국에서 과학적 사회주의가 지배적인 사회주의 해석이 되기 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사조는 무정부주의였다"며 "무정부주의자들은 사회의 원리를 경쟁이 아니라 협동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실천적 차원에서 이와 연관돼있는 것이 쑨원(孫文)의 민생(民生)주의였는데, 실제 나중에 국공합작 때 쑨원의 민생주의가 많이 수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공산주의자들은 쑨원의 이론은 과학적 사회주의로 가기 전에 제대로 발전되지 않은 이념이라고 평가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런데 개혁개방이후 쑨원의 사상은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덩샤오핑(鄧小平)은 사회주의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며 여러 실험들을 실행했는데, 쑨원의 생각들이 많이 수용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물론 공산주의와 쑨원의 민생주의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바로 계급투쟁을 수용하느냐의 문제다. 공산당은 계급 투쟁을 사회의 진화·발전의 기본 원리로 간주했지만, 쑨원은 이를 사회적 병리 현상이라고 규정했다. 이 교수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원자론과 사회주의 해석 문제를 둘러싼 논의를 발전시키는 것이 앞으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서세에 대한 저항과 극복이 대체로 지금까지는 서세에 대비되는 아시아적 특수성을 대립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면서 "서세를 극복하는 방법은 서세와 아시아를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보편주의를 구성하는 과정이 돼야하기 때문에, 철학적 수준에서 미래의 비전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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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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