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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준비, 제철 가을음식으로

[살림이야기] 도라지밥·소고기뭇국·쪽파김치·감말랭이무침

지리산 정상에서 시작된 가을 단풍이 이제 계곡 아래로 내려와 서서히 빛을 잃어가고 있다. 가을이 깊어졌다. 가을이 깊어지면 나도 모르게 시름이 깊어진다. 그 시름이란 것은 어렵게 살던 어린 시절 기억과 덧씌워져 나타난다. 추운 겨울을 지낼 연료 걱정으로 시작해 먹을거리 걱정으로 마무리하는 묘한 시름을 해마다 반복한다. 그런 까닭에 기온이 떨어지면 우선 먼저 보일러를 점검하고 기름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쌀과 콩, 이런저런 잡곡류를 사서 재어 둔다. 내 신체는 어느덧 이런 가을 갈무리를 닮아 가는지도 모르겠다.

▲ 곶감이 될 지리산 야생감을 놓고 둘러앉았다. ⓒ류관희

외할머니 생각날 땐 도라지밥


이런저런 이름의 비빔밥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도라지, 하얗게 볶은 나물로 명절이나 제사의 상차림에는 어김없이 올라가는 도라지를 한방에서는 길경이라 부른다. 성질은 약간 따뜻하며 약간 맵고 쓴맛이 나고, 특유의 아린 맛에는 약간의 독성이 있는데 그 독성은 아픈 몸을 치료하거나 부족한 것을 채우는 약성으로 작용한다. 도라지를 약으로 쓰지 않고 평소에 밥상에 올릴 때는 굵은 소금으로 빡빡 치댄 후 물에 담가 아린 맛을 빼고 조리한다.

폐의 기운을 좋게 하기 때문에 도라지는 숨이 차거나 목이 아프거나 가슴과 옆구리 통증을 치료하는데 쓰는 식재료이면서 약재이다. 기침을 멎게 하고 폐와 기관지 염증을 치료하므로 가래가 끓고 목이 따끔거리면서 기침이 날 때 도라지를 먹으면 도움이 된다.

도라지는 꽃이 피었다 지고 말라야 비로소 캔다. 도라지를 보면 그 꽃을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 기억으로 가득 차 돌아가신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여름방학 무렵 밭에 나가면 예쁜 꽃을 피우고 있는 작물들이 별로 없었는데, 유별나게 도라지는 하얗거나 얄궂은 보라색의 어여쁜 꽃을 피우고 있어 어린 우리들의 좋은 장난감이 되었었다. 종이로 접은 공 모양과 비슷하게 생긴 도라지꽃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두 손을 모아 탁 치면 꽈리 불 때와 비슷한 소리가 나면서 폭 하고 터진다. 그게 어찌나 재미있었는지 어느 해에는 도라지밭 하나를 다 돌며 꽃을 전부 터뜨렸다. 김을 매시던 외할머니께 씨 안 맺히게 그런 짓을 했다고 얼마 나 지청구를 들었는지.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니 지금은 야단쳐 줄 어른도 계시지 않아 여간 쓸쓸한 것이 아니다. 도라지꽃이 보이면 나는 외할머니를 생각하면서 도라지밥 해 먹을 생각에 설레고 외할아버지 생각하면서 도라지김치 해 먹을 생각에 입맛을 다신다. 도라지밥은 맛도 좋고 다른 반찬들과도 잘 어우러지지만 백미는 비벼 먹는 간장에 있다. 더덕장아찌를 담갔던 간장을 조금 덜어 생더덕 한 뿌리를 갈아 넣고 만드는 더덕간장이야말로 도라지밥을 완성하는 완벽한 조연이다.

도라지밥

재료
쌀 2.5컵, 도라지 100g, 물 2.5컵
양념장 : 더덕간장 3큰술, 더덕 보푸라기 1큰술, 쪽파 5뿌리, 들기름 1큰술, 깨소금 1큰술, 고춧가루 1작은술

만드는 법
① 쌀을 씻어 30분간 불린다.
② 도라지를 깨끗이 씻어 끓는 물에서 한 번 데친 후 껍질을 벗긴다.
③ 껍질을 벗기고 손질한 도라지를 잘게 찢거나 채 썬다.
④ 불린 쌀을 솥에 넣고 밥물을 잡은 후 채 썬 도라지를 얹어 밥을 한다.
⑤ 더덕의 껍질을 까서 보푸라기를 낸 후 양념장을 만든다.
⑥ 밥이 다 되면 양념장과 곁들여 낸다.

무와 소고기의 하모니

소고기는 할아버지 밥상에나 가끔 올랐다. 아이들은 병이 나서 심하게 앓고 난 다음에 몸을 추스르라고 먹던 죽에서나 소고기를 보았다.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먹을 것이 흔해진 요즘에도 여전히 소고기는 밥상에 쉽게 올릴 수 있는 먹을거리가 아니다. 소고기는 닭처럼 성질이 따뜻한 것도 아니고 돼지고기처럼 몸을 차게 하지도 않으니 형편이 되면 자주 먹어도 크게 무리가 없다. 맛이 달고 비장이나 위장을 도와 몸에 기와 혈을 더해주고 근골을 튼튼하게 하며 오래된 병으로 허약할 때 먹으면 좋다. <동의보감>에서도 비위를 보하고 토하거나 설사를 멈추며 소갈증과 수종을 낫게 하고 힘줄과 뼈, 허리와 다리를 튼튼하게 한다고 전한다. 하지만 부추와 같이 먹는 것은 금한다. 여름에 소는 수분이 많은 풀을 먹는데 그런 소의 고기를 먹으면 약간 지리고 단맛이 덜하다. 땅의 기운이 건조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마른 풀을 먹은 소의 고기를 먹으면 달고 고소하다. 소고기도 이때부터가 제철이다.

가을이 제철인 식재료를 말하면서 무를 빼면 여간 섭섭하지 않다. 날것으로도 먹고 익혀서도 먹는 무는 맵고 서늘한 성질을 가졌지만 위와 폐에 이롭다. 소화를 돕고 식욕을 돋우고 섬유질이 많아 위장 유동을 촉진시켜 변비에 좋고, 담을 삭이고 기침을 그치게 하는 작용과 열을 내리고 갈증을 풀어 주는 이뇨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복부가 더부룩하면서 소화가 안 되는 사람이나 만성기관지염을 앓거나 가래기침을 오래 하는 사람이 먹으면 아주 좋다. 하지만 인삼을 먹고 두통이나 어지럼증, 구토 등이 생겼을 때 무를 갈아 즙을 내어 먹으면 그 증상이 해소된다고 하니 아무리 좋은 무라도 인삼과 같이 먹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가을이 제철인 소고기와 무의 환상적인 궁합은 소고기무국에서 발현된다. 양지머리나 사태를 덩어리로 사서 무를 덩어리째 넣고 다시마를 손바닥만 하게 넣어 푹 끓인 뒤 건더기들은 꺼내 썰고 국물은 체에 한 번 걸러 쓰면 맑고 개운하고 달디 단 국이 완성된다. 간장으로 살짝 색을 내고 소금으로 마무리하여 대파만 어슷하게 썰어 넣으면 완성되는 소고기뭇국은 가을보양식으로 손색이 없다.

소고기뭇국

재료
소고기 200g(양지머리나 사태), 무 200g, 다시마 3장, 대파 2뿌리, 국간장 1큰술, 소금 약간, 물 1ℓ

만드는 법
① 소고기는 덩어리째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다.
② 냄비에 소고기와 다시마, 무를 덩어리째 넣고 물을 부은 뒤 센불로 끓이다가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20분간 더 끓인다. 거품을 걷어 내야 국물이 맑고 맛이 깔끔하다.
③ 국물이 완성되면 체에 밭쳐 국물을 따로 두고 소고기와 무는 흐르는 물로 한 번 씻어 나박썰기를 한다.
④ 대파는 깨끗이 씻어 어슷썰기를 한다.
⑤ 따로 둔 국물 4컵에 소고기와 무를 넣고 간장으로 색을 내고 간을 하여 끓인다.
⑥ 모든 재료가 어우러지고 무와 소고기가 익으면 썰어 놓은 대파를 넣는다.
⑦ 모자라는 간은 소금으로 하고 마무리한다.

살아서는 톡 쏘고 죽어서는 단 쪽파

이상하게도 나는 어릴 때부터 파 종류를 모두 좋아했다. 남들이 상추와 쑥갓을 겹쳐 올려 쌈을 쌀 때도 어린 나는 상추 위에 실파를 한두 뿌리 얹어 쌈을 쌌다. 상추의 쌉쓰레한 맛에 실파의 매운맛이 더해지고 구수한 된장 맛으로 마무리되는 그 쌈을 입이 미어지게 먹었다. 지금도 실파만 보면 상추쌈을 싸고 싶다. 대파는 대파대로 좋다. 고기를 구울 때 굵게 썰어 같이 구우면 육류의 기름이 느끼하고 지겨워질 무렵 구운 대파의 맛과 향이 그 지루함과 느끼함을 한 번에 없애 주므로 애용한다. 국을 끓이거나 찌개를 끓이거나 나물을 무칠 때도 원재료의 맛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대파를 넉넉히 넣으면 맵고 단맛을 내 음식의 맛이 한 차원 올라간다.

파에 대한 나의 애착은 아무리 바빠도 쪽파김치를 담그는 것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쪽파를 다듬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번거롭고 성가시지만 김치를 담가 놓으면 대견하기 이를 데 없다. 김치를 막 담갔을 때는 일상의 무료함을 일깨우는 톡 쏘는 매운맛이 나고 푹 익었을 때는 단맛이 깊어진다. 잘 익은 쪽파김치를 갓 지은 뜨거운 밥 위에 얹어 입에 넣으면 숟가락도 목으로 넘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밥을 부르다. 겨울이 제철인 굴전을 부칠 때도 쪽파를 송송 썰어 달걀 풀어 부친다. 쪽파 향이 굴 비린내도 잡아 준다.

쪽파는 혈관 내의 콜레스테롤 함량을 줄이고 동맥경화나 고혈압 등의 성인병을 예방하게 돕는다. 비타민C와 비타민A가 다량 함유되어 피로에서 회복하게 하고 노화를 지연시키고 피부 건강에 좋다. 섬유질이 풍부해 장운동을 활발하게 한다. 몸을 따뜻하게 해 겨울에 제격이며 감기를 예방하는 효능이 있다. 쪽파가 내는 독특한 향은 살균력을 지니고 있어 면역력을 강화시켜 준다. 잡냄새를 없애 음식의 맛을 올리고, 익혀 먹는 음식에 자연스러운 단맛을 내니 인위적인 감미료를 적게 쓸 수 있다.

김치를 담그려고 넉넉히 사온 쪽파를 다듬다 지치면 좀 남겨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고추장에 무쳐 먹는다. 돌돌 말아 예쁘게 접시에 담으면 '파강회'라는 꽤나 이름이 있는 음식이지만, 식구들끼리 먹을 땐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초고추장에 그냥 무치면 되는 쉬운 요리이다. 매운맛은 다 사라지고 오롯이 달기만 하니 고추장과 아주 잘 어울린다. 먹고 남은 쪽파의 마지막은 김과 함께 무친다. 손질한 쪽파에 간장을 미리 부었다가 쪽파에서 나온 물에 갖은 양념을 넣고 김과 함께 무치면 전혀 새로운 맛을 내는 반찬이 하나 완성된다.

쪽파김치

재료
쪽파 800g
김치 양념 : 찹쌀풀 1컵, 멸치액젓 4큰술, 새우젓 3큰술, 고춧가루 1컵, 통깨 2큰술, 배즙 1/2컵, 생강즙 1작은술

만드는 법
① 쪽파를 다듬어서 깨끗이 씻는다.
② 쪽파를 뿌리가 아래쪽으로 가도록 큰 볼에 담고 젓갈에 절인다.
③ 뿌리 쪽이 어느 정도 절여지면 잎 쪽도 뉘어 같이 절인다(약 1시간 정도).
④ 파가 절여지면서 나온 국물에 김치 양념을 넣고 잘 섞는다.
⑤ 양념에 쪽파를 살살 버무려 한입에 먹기 좋게 돌돌 말아 김치통에 담는다.
⑥ 하루 이틀 상온에서 익힌 후 냉장고에 넣어 두고 먹는다.

지리산 야생감의 새로운 변신, 곶감과 감말랭이

남편은 밤에 일하고 오전에는 자기 때문에 나는 혼자 아침을 먹고 혼자 집을 나선다. 어머니가 김포로 가시고서는 집을 나서는 나를 배웅하면서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하나 없어 쓸쓸하기만 하다. 다행스럽게도 단풍이 지고 있는 지리산의 능선이 위로가 되고 잎은 떨어지고 없지만 꽃보다 고운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들이 위안이 된다. 집을 나서서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단풍들 속에서 단풍보다 더 빛나는 감나무들을 차를 멈추고 넋을 잃고 바라본다. 가을이 깊어 간다. 지리산 북쪽 자락 마을들에서 곶감을 깎는 시기가 되었다는 뜻이다.

지리산의 겨울은 곶감으로 한 계절 밥벌이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리산 야생감으로 만드는 곶감이 적어 서글프다. 대부분의 곶감은 외지 감 산지에서 들여다 깎고 매달아서 만든다. 지리산의 바람과 그곳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진다. 영광굴비나 안동간고등어와 비슷한 생산과 유통 방식이다. 대개 청도나 상주 것을 들여오는데 청도의 반시는 씨 없는 감이라 지리산의 야생감과 사촌지간처럼 느껴진다. 허균의 <도문대작>에는 지리산의 야생 먹감을 곶감으로 만들어 먹으면 좋다고 쓰여 있다.

곶감은 감이 덜 익어 떫을 때 만든다. 감의 떫은맛을 내는 타닌이 자신의 상처를 보듬으면서 마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감은 떫은맛 외에 단맛을 내고, 독이 없으나 성질이 차다. 감의 찬 성질은 곶감으로 숙성되면서 누그러진다. 생감은 심장, 폐, 대장을 이롭게 하며 열을 내리고 몸에 필요한 진액을 만들며 폐를 촉촉하게 하고 기침을 멎게 하는 효능이 있다. 하지만 <본초강목>에는 게와 함께 먹으면 복통 설사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으니 둘 다 제철인 때라 조심해야 한다. 또한 감은 고구마와 같이 섭취하면 위장에 결석이 생길 수 있으니 몸이 허약하여 병이 많거나 산후, 감기 등에 먹지 않는 것이 좋다. 타닌 성분이 많아 과식하면 변비가 될 우려도 있지만 배탈로 인한 설사에는 감을 먹어 역으로 이용할 수 있다.

곶감을 깎으려면 감을 딸 때 감꼭지에 가지를 남겨 둔다. 그 가지에 기구를 엮어 매달면 감에 상처를 내지 않고 곶감을 만들 수 있다.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하지만 감을 따다 보면 가지가 떨어져 버린 감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럴 땐 마음을 비우고 썰어 말리면 된다. 그렇게 말린 감말랭이는 겨울을 나면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간식으로 즐겨 먹지만 오늘은 밥상에 반찬으로 올린다. 고추장과 조청, 통깨만 넣고 버무리면 쫄깃하고 달콤하고 매콤하니 이 가을과 제법 어울리는 반찬이 된다. 뭐든 풍성한 가을이라 마음도 넉넉해지니 좋다.

감말랭이무침

재료
감말랭이 300g
무침 양념 : 마늘고추장 50g, 조청 50g, 참기름 1큰술, 통깨 1큰술

만드는 법
① 감말랭이를 한입 크기로 썬다.
② 볼에 무침 양념을 넣고 잘 섞는다.
③ 무침 양념에 감말랭이를 넣고 잘 버무린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살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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