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분단 이후 양안관계의 불안은 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최대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62년 쿠데타 이후 반세기 넘게 이어져 온 미얀마의 군부독재는 아시아의 정치적 후진성의 상징처럼 거론되어왔다. 그런데 각각 정상회담과 자유총선을 통해 평화와 민주주의를 향한 거보를 내딛은 것이다. 가히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물론 양안관계가 진정한 평화로, 미얀마가 민주주의 국가로 가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또한 양안관계의 변화와 미얀마의 민주화는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이 충돌하면서 빚어지고 있는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변화에도 중대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주목할 부분은 분명히 있다. 특히 우리의 입장에선 그렇다. 우선 시진핑-마잉주 정상회담의 경우 내년 초 대만 대선을 앞두고 이뤄진 '정치적 깜짝쇼'라는 비판도 있지만, 지난 10여 년간 양안 관계의 괄목할 만한 발전에 토대를 두고 있다. 정상회담에 대해 대만 국민 다수가 지지를 보내고 내년 정권 탈환이 유력시되는 민주진보당(민진당)도 이번 회담의 성과를 계승해 정상회담을 비롯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미얀마의 군부 세력이 91년 때와는 달리 선거 패배를 인정하고 있는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민주화의 대세가 군부도 거역하기 힘들 정도로 커져 온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양안 관계의 훈풍과 미얀마의 민주화는 한국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한국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남북관계 개선에도 적극 나서면서 세계적인 모범으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은 씁쓸하기만 하다. 경제는 양적으로 저성장의 함정에, 질적으로 양극화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민주주의도 '유신'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역주행을 거듭하고 있다. 한때 양안관계의 모델처럼 일컬어졌던 남북관계도 서로 삿대질하는 관계로 바뀐 지 오래다.
그런데 경제와 민주주의, 그리고 남북관계의 동반 추락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재벌과 권위주의적 정치세력, 그리고 냉전 극우세력이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하면서 대한민국의 후진화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화되는 소수의 기득권과 절망 어린 다수의 불행이 겹치면서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는 것은 이러한 현실의 반영이다.
집권 세력은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며 '역사 쿠데타'에 나서고 말았다. 그러나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면서 과거사를 자기 입맛에 맞게 쓰겠다는 몰상식이 야기할 미래는 자명하다. 미래의 역사 교과서에 기록될 부끄러운 역사를 남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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