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부자들에게는 참 특별한 재주가 있다. 1원의 힘을 1억처럼 쓰기도 하고, 등기이사도 아닌데 회사의 모든 업무지시를 내리며 회사 경영을 진두‧지휘하기도 한다. 0.75%의 지분을 가지고 삼성전자 주인 노릇을 하는 이재용 부회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삼성전자의 등기이사도 아닌데 경영에 관한 모든 주요한 결정을 하고, 주요 이사들은 그의 눈치를 본다. 참 희한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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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경영자로서 책임져야할 순간에는 주주의 위치로 돌아선다. 때문에 책임질 필요가 없으니 참 속 편한 이사다. 이재용 부회장이 탁월한 경영능력이 있다면야 무엇을 어찌하든 뭐가 문제겠는가? 문제는 그렇지 못하다는데 있다. 이미 데뷔작인 'e-삼성'이 낸 400여억 원의 손해를 계열사들이 나눠 막은 전례가 있다. 그 이후에도 그가보여준 이렇다 할 경영성과는 찾기 어렵다.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그룹 승계는 불법과 탈법을 교묘하게 피해간 에버랜드 전환사채와 삼성SDS신주인수권부사채의 저가 발행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또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통해서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내 지배력은 커졌다. 이재용 1인을 위한 합병이었다. 이 사건은 단적으로 삼성의 지배구조가 얼마나 비민주적이고 후진적인지를 잘 설명한다. 기업의 합병이란 기업 간 결합을 통한 중복투자 해소, 시너지 효과 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두 회사의 합병은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심지어 자본주의 가치관에서 최우선으로 치는 주주들의 이익도 찾기 어려웠다. 일부 삼성물산 주주들은 오히려 손해를 본 셈이라, '엘리엇'이라는 투기자본에 공격당하는 빌미마저 제공했다.
이제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 차기 경영권자가 되리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재용의 삼성그룹 승계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무소불위의 제왕적 그룹총수의 영향력이 그룹의 정책결정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구조라면, 그 그룹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삼성의 이런 지배구조의 비민주성을 지적하고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왔지만, 삼성은 요지부동이다. 총수 1인의 의견이 절대적인 구조, 다양한 의사결정과정이 무시되는 구조, 회사 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가 전달되지 못하는 구조가 계속 될수록 역설적으로 후진적인 지배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문제는 이런 개혁과 변화의 요구를 삼성이 스스로 알아서 할리 만무하다는 데 있다. 삼성은 노동조합 문제나, 백혈병 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전 사회적인 요구도 제대로 수용하지 않고 있다.
삼성을 바꾸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우선 이재용 부회장의 3대 경영 승계 문제의 정당성을 따져 물어야 한다.
둘째, 내부 이해 당사자들이 경영에 참가하면서 경영을 더 투명하게 해야 한다. 삼성의 경영 방식은 지금까지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결정은 총수가 하고 책임은 회사 구성원과 사회 전체가 지게 된다. 내부의 제대로 된 견제와 감시장치가 필요하며 이를 대표할 수 있는 기구는 노동조합 아닐까.
세 번째, 차선이라도 전문경영인 체제를 통해서 삼성의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전문경영인이 재벌구조의 비민주성, 반노동조합의 성격을 일시에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삼성의 기업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는 출발점에 설 수는 있을 것이다.
네 번째로는 금산분리법, 공정거래법 개선 등 삼성을 제어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삼성의 경영 세습은 그 자체로 기업 내 비민주성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또 이 과정은 정경유착을 통해 법적, 제도적 틀을 뛰어 넘을 수 있기에 가능했다. 이런 힘을 바탕을 노동조합 파괴, 직업병 문제 등 사회적 문제까지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총수 일가가 지배하는 삼성 지배구조 문제가 바뀌어야 삼성이 바뀌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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