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언론은 이번 성명이 "북한만을 다룬 최초의 양국 공동 성명으로 평가된다"며 그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그간 실패한 정책을 되풀이해서 서술하는 수준에 머물고 말았다.
성명에서는 "북핵 문제를 최고의 시급성과 확고한 의지를 갖고 다루기로 합의"했다고 했지만, 사안에 대한 시급한 인식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배경에는 9.19 공동 성명에 대한 삐뚤어진 재해석이 똬리를 틀고 있다. 성명에서는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비핵화의 평화적 달성을 위한 우리의 공약을 재확인한다"며, "북한의 핵 및 탄도 미사일 개발은 유엔 안보리 결의의 상시적인 위반이며, 2005년 6자 회담 공동 성명상 북한의 공약에도 위배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이 성명에는 9.19 공동 성명에 없는 두 가지 표현이 담겨 있다. 하나는 "북한의 비핵화"이고, 또 하나는 "비가역적인"이다. 9.19 공동 성명에 담긴 표현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한반도의 비핵화"이다.
이 둘의 차이는 크다. '북한의 비핵화'는 북핵 문제 해결만 겨냥한 것이지만, 한반도 비핵화에는 미국의 대북 핵 위협 해소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비가역적인'이라는 표현은 네오콘들이 즐겨 쓴 것으로 북한은 "패전국에게나 적용되는 것"이라고 반발해 9.19 공동 성명에는 빠졌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표현의 차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북한의 비핵화'와 '비가역적인'이라는 표현은 이명박 정부 때 간헐적으로 사용되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서 고착됐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의 핵무장은 가속화·고도화되고 있고 북한이 농축 우라늄 및 경수로 사업도 착수해 이를 되돌리기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북한의 책임도 크지만, 협상과 타협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상호 위협 감소' 정신을 한미 동맹이 저버린 데에도 있다.
이번 성명에서 가장 유감스러운 것은 '한반도 평화 체제'라는 단어를 아예 찾아볼 수도 없다는 점에 있다. 한미 정상 회담 역사상 첫 대북 성명이라면 이에 걸맞은 역사성과 미래지향성을 갖췄어야 했다. 그런데 노무현-조지 W. 부시 때에도 담긴 이 표현이 이번에도 담기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물론이고 박근혜 정부 역시 평화 체제에 극히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로 인해 핵 협상의 시계는 9.19 공동 성명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그것도 더 나빠진 형태로 말이다. 9.19 공동 성명 이전에 네오콘이 주도한 미국의 대북 정책은 선(先) 비핵화에 맞춰져 있었다. 이에 맞서 북한은 '선 평화 협정'을 요구했다. 한국과 중국이 양측의 간극을 조율해 동시 행동 원칙을 담은 것이 바로 9.19 공동 성명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한미 동맹은 또다시 '선 비핵화'로 회귀했고, 북한도 '선 평화 협정'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또한 9.19 공동 성명 이전에는 간헐적으로 6자 회담도 열렸고, 북한의 핵 개발도 '진행형'이었다. 그러나 정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별도의 평화 포럼'(남-북-미-중 4자 포럼을 의미함)은 10년이 넘도록 한 차례도 열리지 않고 있고, 6자 회담도 7년째 산소마스크를 끼고 있다. 이 사이에 북한의 핵 개발은 '완료형'으로 가고 있다. 9.19 공동 성명 이전 때보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나빠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기본 명제를 재확인할 수 있다. '평화 체제 없는 비핵화는 맹목이고 비핵화 없는 평화 체제는 공허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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