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자조하는 용어로 떠오른 '헬조선'(지옥인 헬(hell)과 조선의 합성어). '헬조선'의 상징인 '금수저'와 '은수저'를 만드는 것은 부의 상속이다. 소득과 자산의 재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며, 오로지 부와 권력의 세대적 상속이 '핏줄'을 통해서만 일어나고 있는 게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다.
사회적 상속. 도대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풀기 위한 실마리를 어디서 찾아야할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래경 '다른백년' 이사장이 고심 끝에 내놓은 제안이다.
"사회적 상속(공유)은 영국의 경제학자인 제임스 미드(J.E. Meade)가 처음 제안한 개념입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생산된 부의 20%를 자본가와 지주의 몫이고 80%는 노동자․농민과 사회의 몫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20 대 80으로 배분되어야 그 사회는 공유와 순환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장의 요체입니다."
이 이사장은 중소기업 '호이트(Voite) 한국'의 대표다.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그의 은퇴 재산 38억 원의 80%를 세금을 포함해 사회에 환원할 계획이다. 미드가 제안한 사회적 상속은 개별적인 행태로 이뤄지는 '기부'와는 그 궤를 달리한다.
"최근 대림산업의 이준용 회장이 조선일보사가 운용하는 통일과 나눔 재단에 전 재산 2000억 원을 기부하겠다고 했습니다. 또 한샘의 창업주인 조창걸 회장도 자신이 만든 공익재단에 전 재산의 절반 가량인 4000억 원을 한샘 주식 형태로 기부하겠다고 밝혔죠. 우리나라 기업가들 중에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부는 개별적인 자선 행위에 그칩니다. 이런 양식 있고 고민하는 기업가들에게 하나의 화두로서 사회적 상속을 같이 고민해보자고 하고 싶습니다."
운동권 출신이자 중소기업 대표인 그가 사회적 상속을 제안하게 된 이유 세 가지
기부와 달리 '사회적 상속'은 양식 있는 기업가를 포함해 이에 동참하는 이들이 내놓은 자산을 '사회적 투자기금'을 만들어 개별 정권과는 무관하게 공공적인 목적을 위해 운영된다. 이 이사장은 "기회의 평등성을 만드는 교육 기금이나 우리 사회의 혁신을 꾀할 수 있는 종자돈, 즉 중소기업의 연구개발비, 청년 창업자금 등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재벌 체계, 기득권 체계가 아닌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만드는데 쓰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자신이 이 같은 제안을 하게 된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해 설명했다.
"요즘 브라질 출신의 미국 하버드대학 법학교수인 로베르토 웅거(Roberto Unger)의 책을 읽고 있는데, 그도 '상속은 죄악'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는 상속에 중과세를 물어서 이를 사회투자기금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미드와 마찬가지로 이런 투자기금을 일반 시민이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사회적 상속을 제안하는 이유도 개별적 행위인 '기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제가 평생 번 돈의 80%를 '사회적 투자기금'을 만드는데 내놓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저도 70년대 운동권 출신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정치적 민주화 과정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들의 삶이 이렇게 어려워진 것은 사실 운동권들이 제대로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속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70-80년대 운동권들이 또 다른 기득권이 돼서는 안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재벌 체계가 어떻게 만들어져서 여기까지 왔습니까? 일제 강점기엔 매판, 해방 후엔 미군정과 결탁해 적산불하, 이후 박정희 정권을 비롯한 독재정권의 비호 아래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온갖 특혜와 정경유착, 편법과 부정을 저질러 만들어진 재벌체제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모자라서 재벌 총수들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려고 또 다시 온갖 편법과 부정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건 역사적 범죄입니다."
이 이사장은 "내 삶은 어떻게 보면 오발탄"이라며 70년대 운동권 출신인 그가 기업인으로 성공하게 된 이유, 그리고 다시 자수성가를 통해 모은 재산의 80%나 사회 환원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에 1973년도 입학했다. 적극적으로 학생 운동에 동참했다기 보다는 독서토론회를 통해 사회의식을 키워가던 그는 1975년 서울대 김상진 열사의 할복 자살 사건 이후 유인물을 만들어 뿌리고 시위를 주도하다가 제적을 당했다. 1980년 복학하게 됐으나 그 해 5월 광주민주화운동 사태를 알리는 유인물을 제작했다는 이유로 수배를 당하게 되면서 두 번째 제적을 당하게 됐다. 그 이후 오파상 일을 시작했고, 1988년 호이트한국(주)를 설립, 현재까지 키워냈다. 이 과정에서 그와 '사회운동'과의 고리를 단단히 연결시킨 사람 중 하나가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다. 1980년대 민주화청년연합 결성 과정에 개입하면서 김근태 전 장관을 만나게 된 그는 평생 정치인 김근태의 후원회 책임을 맡았다. (☞ 관련기사 : "김근태가 아폴로적 인간이라면 노무현은…")
"학생운동이나 김근태 후원회장이나 다소 피동적으로 끌려다닌 셈이었다는 점에서 오발탄이었던 인생이 노무현 정부의 실패가 너무 명확해지면서 처음으로 제가 주체적으로 시작하게 된 운동인 일촌공동체를 만들게 됐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첫 해인 2003년 7월 인천 부평구에서 한 30대 여성이 고층 아파트에서 아이 셋을 집어던지고 자신도 자살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 당시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다고 많은 이들이 기대에 부풀어 있던 때였다. 이 여성은 남편과 둘이 조그만 가구공장을 하면서 살았는데, 법도 없이 살 만한 사람이라고 칭찬 받던 부부가 IMF로 사업이 어려워지고 근근히 살다가 셋째 아이를 낳았는데 분유값도 없어서 결국 비관 자살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가정사의 비극은 우리 사회 전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김근태가 복지부장관을 하던 시절인 2004년 12월 대구에서 다섯 살 남자아이가 벽장 속에서 굶어 죽은 일도 있었습니다. 그 때 제가 김근태 장관에서 현장에 내려가야 한다고 했는데, 못 가게 돼서 제가 부인인 인재근 의원과 함께 대구로 내려갔습니다. 현장에 가니까 관련 공무원들이 모두 나와서 브리핑을 하는데, 어느 누구도 책임이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저 서로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이 두 사건을 계기로 국가, 정부만 믿어서는 안되고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사회적 가족의 개념으로 일촌공동체를 만들게 됐습니다. 그 이후 제가 매년 1억 원씩 지금까지 8억 원 가까이 일촌공동체 운영에 투입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수입의 1/3은 세금, 1/3은 가정, 1/3은 기부로 쓰게 됐습니다."
'아류 정치'로는 미래를 못 만든다
"복지를 구성하는 요소로 가족, 시장, 국가가 있습니다. 과거 우리 사회는 시장 지니계수가 27%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IMF 때 와장창 무너졌습니다. 시장에서의 복지 기능이 사라진 것이지요. 또 가족이 복지의 안전판을 하던 시대도 끝났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영역은 국가인데, 과연 대한민국이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요?"
지난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 모두 복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고, '한국형 복지'를 내세운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다. 하지만 기초노인연금 등 그의 핵심 공약은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이 이사장은 '아류 정치'로는 우리 사회가 나아갈 비전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박근혜, 그 이전의 이명박은 박정희의 아류 정치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민생을 내팽개치고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들고 나온 것도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한 것 이외의 명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표도 미안하지만 노무현 정권의 과오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으로 진보진영은 노무현 정권의 잘못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이제까지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등장한 안철수 의원 역시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한국정치에 실망한 특히 2-30대 젊은층은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비전과 프로그램을 갈망합니다. 이 현상은 안철수라는 인물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반복적으로 있어 왔으나 안철수에 와서 기대열망이 장기간 (1-2년) 유의미한 수치(지지율 20%)로 나타난 것은 의미가 큽니다. 이러한 기대 열망에 대한 대응은 정치학에서 the follower of followers ( 지지층의 지지자) 라고 하는 용어로 설명한다 합니다. 즉 지지층의 열망과 기대을 보다 정교하고 세련되게 자신의 정치적 프로그램에 담고 자신을 헌신하면서 지지층을 안착시키고 확대해가는 과정이지요. 자신을 버리고 지지층이 요구를 역사의 맥락에서 시대과제로 체득해 가는 새로운 안철수로 태어나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안철수는 그러한 기대와 열망의 자신의 살아온 협소한 경험과 관점 속으로 가둬버리고 안철수화 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동시에 정치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시각을 여러번 반복해서 노출했고, 설명이 안 되는 논리로 민주당에 투항하면서 새정치(dealignment- realignment)의 과정을 포기했습니다. 더구나 당대표로 있으면서 혁신을 위한 일체의 노력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냥 부잣집 좋은 도련님, 양식있는 50대 성공한 인물이 하나 정치권에 진입한 셈이죠."
새로운 사회적 비전과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된 일이 '다른백년'이다. '다른백년'은 동학혁명(1894년)이 실패한 뒤 외세에 의해 강요된 근대화, 독재정권에 의한 산업화 과정에서 지난 100년 동안의 정치, 경제 질서가 현재의 '헬조선'으로 귀결됐기 때문에, 앞으로 100년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100년이 돼야 한다는 반성과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성장중심주의, 낙수효과에 대한 '맹신'을 깨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무엇이 성장이냐고 묻고 싶습니다. 거시적 경제 수치를 놓고 성장이라고 한다면 민주 정부라고 하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면, (경제적 하층인) 1-2분위의 소득은 절대적으로 줄어들었고, (상층인) 9-10분위는 엄청나게 늘어났어요. 그런데 그 성장이 과연 성장이냐,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고통을 동반하는 성장이 지속 가능할 것이냐 의문을 품어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용 가능한 자원을 투입했을 때 나오는 부가가치가 재벌기업과 건설업이 제일 낮습니다. 이미 통계 수치로 확인된 사실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자원을 투입하는 건 성장이 아니라 기득권의 자기 이해 관철이라고 봐야 합니다.
또 우리나라 성장 기반이 수출입니다. 세계에서 1인당 수출을 제일 많이 하는 나라가 독일, 그 다음이 한국입니다. 산업 구조를 놓고 봤을 때, 한국 국민 1인당이 수출은 이미 한계에 왔어요. 인구가 5000만 명에 불과한 한국이 세계 주요 산업에서 모두 10위권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더 몰아쳐서, 국민들 허리띠를 더 조여서 성장을 한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런 점에서 다른 성장을 찾아야 하고, 그는 인도 출신 경제학자인 아마티하 센(Amartya Kumar Sen)이 규정한 발전과 성장 개념에 방점을 찍었다.
"센은 자유를 향해 가는 것을 발전이고, 발전을 위해 성장이 필요하다고 봤어요. 그런 점에서 새로운 성장을 위한 '경로 변경'이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87년 6월항쟁이 갖는 의미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87년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룬 뒤 너무 허송세월해서 우리사회가 이 모양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시민주권과 삶의 질을 중심 주제로 잡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복지도 단순히 정책적인 차원에서 머무르는 게 아니라 산업 체계와 함께 맞물려 고민해야 합니다. 복지는 한번 도입되면 현상유지에 고착되는 경향(embedding effect)이 있는 반면 현실의 사회경제의 움직임은 대단히 가변적이며 예측이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복지와 생산/산업 체계의 조건이 서로 상응하는 선순환적 프로그램의 입체적 설계가 미래사회를 논함에 있어 매우 주요한 주제가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다른백년'은…
'다른백년'은 (1) 중장기적인 비전과 대안제시를 위한 학술연구 활동 (2) 공론과 여론 형성의 시도로서 다양한 채널의 논평과 사회적 이슈의 심층진단과 대안제시를 위한 기획 르포 활동 (3) 한국현실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민회적 토론의 장으로서 포럼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얼핏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학술연구 중심의 싱크탱크로서의 활동에 중심을 둘 예정이다. 싱크탱크로서의 활동은 민주주의의 재발견 또는 재정의, 이른바 대안민주주의 연구, 주변부 민중들의 삶에 대한 실태조사와 연구, 새로운 대안으로서 사회경제시스템 연구와 실천적 시민사회의 네트워크, 시민들의 삶의 실질적 발전을 측정할 수 있는 사회개발지수 개발 등을 주요 주제로 설정하고 있다.
올해 연말 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키고, 내년 5월 창립을 목표로 하고 있는 '다른백년'은 이래경 이사장,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 등이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오는 29일 첫 외부 행사로 백년포럼을 개최한다. '1987년의 꿈, 2015년의 현실'이라는 주제로 87년 민주화운동의 주역이었던 이부영 전 의원과 권형택 전 민청련 부의장, 그리고 청년세대인 나유경 씨(‘청년연합 36.5’ 대구경북위원장)가 발제자로 참여, 대한민국 민주화운동과 그 세력은 왜 좌초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짚어볼 계획이다. (☞ 관련기사 : 민주화세력은 왜 좌초했나? '1987년의 꿈과 2015년의 현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