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후보자는 논문에서 "5·16은 군사혁명이고 군의 권위주의가 산업화의 기반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정치·사회적인 무능과 부패, 혼란으로 인한 국가위기, 근대화 필요성 증대, 기회주의적 처신에 익숙한 민간 정치인들의 능력 제한"을 거론하면서 군부가 "군사혁명"을 일으킨 것은 불가피했다고 기술했다.
이에 따라 인사청문회는 이순진 후보자의 5.16에 대한 현재의 견해를 묻는 것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이 후보자는 오전 내내 "개인의 의견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역사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 "좀 더 깊이 연구해 보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다가 오후에는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5.16은 공과가 있으며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에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5.16 쿠데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소신이 현재진행형임을 내비친 것이다.
이러한 이 후보자의 소신(?)은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여전히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먼저 이 후보자는 군 본연의 임무를 착각하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의 민군관계를 이론화한 대표적인 학자인 리처드 콘은 "군의 임무는 사회를 보호하는 데 있지 사회를 정의하는 데 있지 않다"고 일갈한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5.16 직전 상황을 사회 혼란과 정치 무능으로 정의하면서 군사쿠데타를 정당화하려고 했다.
또한 이 후보자는 '개인의 의견'과 '군 지휘관이 가져야 할 철학'을 혼동하고 있다. 그는 '개인 이순진'이 아니라 정전 시 군령계선을 책임지고 있는 합참의장 후보자 자격으로 청문회에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의견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식으로 답변을 회피하려고 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군 지휘관의 핵심적인 덕목은 본인 스스로 군에 대한 문민 통제관을 확실히 하면서 이를 군대 전체로 확산·확립하는 데에 있다. 안타깝게도 이 후보자의 답변에서는 이러한 기본적인 철학조차 발견할 수 없다.
5.16 쿠데타가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다방면에서 대단히 크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국가가 엉망이면 군대가 바로잡아야 한다'는 식의 사고가 아직도 유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방부와 국정원 등 국가안보기관이 선거 국면에서 대남심리전을 벌여놓고는 국민들의 좌경화를 막겠다는 취지였다고 항변하는 모습에서 이러한 사고를 엿볼 수 있다. 또 극우 편향의 '끝판왕'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5.16을 두고 "형식적으로는 쿠데타이지만 정신적으로는 혁명"이라고 밝힌 대목에서도 이러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군대는 국가와 사회의 상태를 규정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세상을 뒤엎으려고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헌법에 군의 정치적 중립을 명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박정희 정권의 업적(?)을 근거로 5.16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도 여전히 유행한다. 그러나 이건 이런 식으로 퉁치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공과를 떠나 5.16은 명백히 헌정을 유린한 군사쿠데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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