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살아났다. 공정택, 곽노현 등 전임 서울시 교육감처럼 임기 중간에 낙마할 가능성은 일단 낮아졌다. 조 교육감의 리더십과 함께, 진보적인 교육 개혁 의제도 새로운 동력을 얻을 전망이다.
조 교육감은 취임 직후부터 '일반고 전성시대'라는 구호를 내걸고, 자사고·국제중의 지정취소 등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지지부진했다. 교육청 관료들 역시 등을 돌렸었다. 그러나 오는 7일 출근하는 교육청 관료들의 표정은 확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적어도 2년 10개월가량은 조 교육감과 함께 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4년, 혹은 8년이 추가될 수도 있다.
이게 다 재판 결과 덕분이다. 조 교육감에게 당선 무효 형을 선고했던 1심 판결이 2심에서 뒤집어졌다. 2심 재판부는 선고를 유예했다. 2심 판결이 최종 확정되면, 조 교육감은 남은 임기를 채울 수 있다.
대법원 선고, 3개월 안에 있을 듯
결국 열쇠는 대법원이 쥐고 있다. 검찰이 2심 판결에 불복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2심과 다른 입장을 택한다면, 조 교육감의 운명은 또 달라진다.
최종 판결을 기다리는 시간은 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2심과 3심 모두 전심 판결 선고 이후 3개월 이내에 선고해야 한다는 훈시 규정을 뒀다. 훈시 규정은 강제성이 없다. 그러나 따르는 게 관례다. 오는 12월 4일 전에 대법원 선고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먼저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2심 판결을 확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조 교육감은 자리를 지킨다.
양형은 더 이상 따지지 않는다
나머지 가능성은 2심 판결을 파기해서 고등법원에 돌려보내는 경우다. 조금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 경우는 다시 두 가지로 쪼개 봐야 한다.
우선 조 교육감의 유, 무죄에 대한 2심 재판부의 판단이 과연 옳았는지가 쟁점이 되는 경우다. 이 때, 대법원은 죄에 대한 처벌 수위는 따지지 않는다. <조선일보> 등은 조 교육감에게 '선고 유예' 처분을 한 2심 재판부의 결정이 지나치게 관대한 것이라고 본다. 이런 문제는 대법원이 따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에서 형의 양정이 부당하다고 인정할 현저한 사유가 있는 때"에 한해서만, '양형 부당'을 이유로 상고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조 교육감 사건은 이런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1차는 '무죄', 2차는 '유죄'
조 교육감이 지은 죄에 대해 2심 재판부는 1심과 다른 판단을 했다. 지난해 교육감 선거 당시 조 교육감은 상대 후보였던 고승덕 변호사의 미국 영주권 의혹을 제기했다.
이런 사실을, 2심 재판부는 둘로 쪼개서 판단했다. '1차 공표'는 지난해 5월 25일 국회 기자회견이다. '2차 공표'는 그 뒤 배포한 보도자료 및 라디오 인터뷰다.
1심 재판부는 이 두 가지를 한 덩어리로 묶어서 유죄로 판단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1차 공표'에 대해선 '무죄', '2차 공표'는 '유죄'라고 봤다. '1차 공표'는, '고승덕 변호사가 미국 영주권자라는 의혹이 제기됐으니 해명하라'라고 요구하는 수준이다. 선거 과정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발언이다. 그래서 '무죄'다.
'2차 공표'는 고 변호사가 나름의 해명을 한 뒤였다. 조 교육감은 사실상 해명을 무시했다. 그리고 조 교육감은 "고 후보는 공천 탈락 뒤 지인들과 언론인들에게 '상관없습니다. 저는 미국 영주권이 있어서 미국에 가서 살면 됩니다'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의혹의 최초 제기자인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의 기억에 근거한 발언이다. 법원은 이런 발언 내용이 허위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해명 무시, 허위 발언 등이 합쳐져서 '유죄'가 됐다.
"일방적인 흑색선전은 아니다"
2심에서 양형이 가벼워진 건 그래서다. 절반만 유죄라고 봤으므로, 벌금 역시 절반이 됐다. 1심은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고, 2심은 250만 원을 선고했다. 조 교육감에게 적용된 혐의에 따른 최저 형량은 벌금 500만 원이지만, 법관이 재량껏 줄여준(작량감경) 결과 벌금이 250만 원이 됐다. 그러나 이 역시 당선 무효 형이다. 현행 선거법에 따른 당선 무효 기준은 벌금 100만 원 이상이다.
요컨대 2심 재판부 역시 조 교육감이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다고 판단했다. 다만, 그 선고를 유예해서 실질적으로 당선이 유지되게끔 한 것이다. 조 교육감의 의혹 제기가 일방적인 흑색선전은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 대해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가 경고 처분에 그친 점도 고려했다.
대법원이 '1차 공표'를 유죄로 판단하면…
앞서 설명한 것처럼, 대법원은 양형에 대해선 따지지 않는다. 2심 재판부가 '무죄'로 판단한, 조 교육감의 '1차 공표'가 과연 무죄인지에 대해 따지게 된다. 무죄라고 본다면, 2심 판결은 확정되고 조 교육감은 남은 임기를 무사히 채울 수 있다.
'1차 공표'가 '2차 공표'와 마찬가지로 '유죄'라고 판단한다면, 혹은 2심 재판부의 법리 해석에 다른 문제가 있다고 본다면, '파기환송'의 절차를 거치게 된다. 서울고등법원이 파기환송심을 진행한다. 양형은 더 따지지 않으므로, 벌금은 2심 판결 그대로 250만 원이 된다.
그러나 대법원이 판단한 죄의 무게는 더 무거워졌으므로, 선고 유예 처분은 기대할 수 없다. 벌금 250만 원이 선고되면, 조 교육감은 물러나야 한다. '벌금 100만 원 이상'이라는 당선 무효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조 교육감은 30억 원에 달하는 선거 보전금도 반납해야 한다.
2심 변호인단, '선고 유예 고려' 요청
2심 판결을 대법원이 파기하는 경우에 대한 두 가지 가능성 중 하나를 위에서 설명했다. 나머지 가능성은, 이 사건이 선고 유예의 요건을 갖췄는지에 대해 따지는 것이다. 2심 재판부가 내린 선고 유예 결정이 과연 요건에 부합하느냐, 라는 것. 형법에 따르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자격정지 또는 벌금의 형"에 대해 법관이 재량껏 선고를 유예할 수 있다. 다만 조건이 있다. "개전의 정상이 현저"해야 한다.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이 뚜렷해야 한다는 뜻이다.
조 교육감 측이 '무죄'를 강력히 주장해 왔던 게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대법관들이 보기에, 조 교육감 측이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말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니,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도 없다. 따라서 선고 유예는 부당하다'라는 논리를 적용하면, 조 교육감은 다시 위태로워진다.
다만 1심과 달리, 2심 재판에선 조 교육감 측 변호인들이 무죄 주장과 함께 '선고 유예에 대한 고려'도 요청했다. 2심을 앞두고 새로 구성된 변호인단은 1심과 다른 변론 전략을 취했다. 조 교육감에게 죄가 있을 가능성도 열어뒀다. 다만 교육감 직을 박탈할 정도의 잘못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관련 기사: 조희연, 항소심 첫 공판 "선고유예 내려달라")
또 2심 판결 이후 조 교육감 역시 "재판부가, 제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더욱 섬세하고 신중하게 처신했어야 한다고 판단한 점에 대해 겸허하게 수용"한다고 말했다. 또 항소심(2심) 결심 공판 최후 진술에서도 반성하는 발언을 했었다. "(선거운동 당시) 세심하게 판단하고 실정법을 꼼꼼하게 신경 썼다면"이라는 반성이다. 이런 점들은 선고 유예 결정이 요건을 갖췄다고 볼 근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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