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치료를 받았는데 왜 더 아픈가요? 원래 아팠던 곳은 물론이고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파서 밤새 잠도 잘 못 자고 고생했어요."
진료를 하다 보면 간혹 치료를 받은 후, 더 아파서 혼났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연로하신 분들이지만 종종 젊은 분도 그런 증상을 호소하곤 합니다. 이럴 때는 침 치료 후 몸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소모되는 에너지를 몸이 감당하기 힘들어 생기는 몸살 증세라고 설명합니다. 그만큼 기력과 체력이 떨어졌다는 신호이므로 영양섭취에 좀 더 신경 쓰고, 가능하면 잠을 조금 더 자라고 당부합니다.
연세가 좀 있는 분 중에는 "예전에는 침 맞을 때 북어 대가리를 고아 먹어야 금속의 독을 풀어낼 수 있다"고 하던데 그게 맞는 말이냐고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도 대답은 앞서와 다르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일회용 침을 쓰지 않고 여러 번 쓰다 끝이 무뎌지면 갈아서 쓰곤 했기 때문에 감염의 우려가 있었겠지만, 북어를 먹은 이유는 그보다 침을 맞아 소모된 기운을 보충하려 했기 때문이리라고 말씀드립니다. 북어가 구하기 쉽고 크게 비싸지도 않은 데다, 머리 부위는 음식으로 먹는 부위는 아니니까 그런 말이 나온 것 같다고요.
그러던 어느 한가로운 오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침 치료는 특정한 효용이 있는 혈(穴)에 침을 놓아 경락의 흐름을 조정해서 문제가 생긴 부위를 치유하는 행위다. 이를 통해 우리 몸의 기능이 활성화되고, 자연히 세포들의 대사도 활발해진다. 그러면 세포 대사와 면역 작용의 부산물로 인해 처리해야 할 노폐물이 늘어난다. 그런데 이때 몸의 전반적인 기능이 떨어져 있거나 이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물질이 부족하면 노폐물을 처리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침 치료 과정에서 생긴 노폐물이 독소로 작용해 몸살을 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북어는 왜?'
그래서 이번에는 북어에 관한 문헌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19세기 조선의 학자 이규경이 쓴 책이다. 천문, 의학, 역사, 지리 등의 방대한 지식을 기록했다. 현재는 일부만이 남아 있다.)> 만물 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북어는 해변에 사는 사람들이 그 내장을 꺼내 기름을 짜서 불을 밝히고, 그 껍질을 고면 끈적끈적하게 된다. 그 머리를 끓여 먹으면 체한 것을 없애고, 몸 전체를 오래도록 끓이면 고가 되는데 허한 것을 보하고 산후에 생긴 복통에 효과가 있다. 말린 것을 끓여 빈속에 먹으면 설사를 그치게 할 수 있다. 끓일 때 나오는 증기를 쐬면 머리에 생긴 부스럼에 효과가 있다.'
이렇게 보니 북어의 허한 것을 보하고 속을 편하게 하는 효능과 구하기 쉽다는 장점이 합쳐져 침을 맞고 북어 대가리를 고아 먹으라는 말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몸을 보하는 식재료야 많이 있겠지만, 위장에서 소화하는 데 부담이 된다면, 도리어 그것을 소화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므로 적절치 않지요. 그런데 북어는 속을 편하게 하고 막힌 것을 소통시키는 효능과 함께 부족해진 기운을 보충해 줄 수 있으므로 잘 어울리는 것이지요. 술을 마시고 북엇국으로 해장하는 이유 또한 같은 선상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한참 동안 머릿속에서 생각을 굴리고 이런저런 자료를 찾고 나서 사소하지만 조금 불분명했던 의문이 풀리고 나니 꽤 기분이 좋아집니다. 앞으로 침을 맞고 더 아프다는 환자분이 있으면 이렇게 설명할 생각입니다. 진료실이 한가할 때는 이런 소소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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