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가 꽉 막힌 가운데, 한미 양국과 북한 사이의 '불신 쌓기'가 계속되고 있다. 북한이 미국에게 대화 조건으로 한미합동군사연습 중단을 요구하자, 한미 양국이 일축한 것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7월 29일 "미국이 합동군사연습 같은 적대 행위를 그만두고 다른 길을 갈 결단을 내린다면 대화도 가능해지고 많은 문제들이 풀릴 수 있다"고 밝혔다. 동시에 "미국이 합동군사연습의 중지로 '대화 의지'의 진정성을 보이기 전에는 정세 격화의 악순환만 계속되고 대화도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 말해 한미합동군사훈련 강행 시 이에 대한 대응조치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한국 국방부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은 연례적이고 방어적인 것"이라며 군사훈련 중단은 대화의 전제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미국 국방부 역시 "한미 연합군사훈련은 투명하고 방어용"이라며 "지난 40년간 정례적으로, 또 공개적으로 실시돼왔다"고 말했다. 한미 양국이 군사훈련을 중단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지겨운 레퍼토리
북한의 한미군사훈련 중단 요구와 이에 대한 한미동맹의 일축은 수년째 지겹도록 반복되고 있는 레퍼토리이다. 그만큼 양측이 문제 해결 지향적인 자세보다는 문제 회피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지난 수년 동안 누적되어온 불신으로 인해 한미군사훈련에 대한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한반도 정세의 악순환은 불가피해 보인다.
우선 초미의 관심사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여부이다. 북한은 최근 동창리 로켓 발사대를 대거 증축하는 등 장거리 로켓 발사에 필요한 기술적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발사가 유력한 시점은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즈음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만약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하면 올해 가을부터 내년 봄까지 한반도 정세는 또다시 격랑에 휩싸일 공산이 크다. 북한의 로켓이 인공위성을 지구 궤도 위에 올려놓기 위한 우주발사체라고 하더라도 이는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에서 금지한 사항이다. 이에 따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 채택→북한의 반발 및 4차 핵실험→유엔 안보리의 추가 제재→한반도 위기 도래'로 이어지는 '코리아 위기'의 양상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내년 2월에는 한미합동군사훈련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도 예정되어 있어 위기 지수가 더욱 높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울러 한반도 위기 도래 시 초미의 관심사인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론도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역제안으로 예방외교 나서야
그렇다면 올해 말부터 내년 초에 불어 닥칠 것으로 보이는 한반도 위기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지금으로서 유일한 길은 북한의 제의에 대해 한미동맹이 역제안을 내놓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움직임을 저지할 수 있는 물리적인 방법이 없는 만큼, 외교 협상을 통해 김정은 정권의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6월 초에 이미 이러한 주장을 펼친 바 있다.(☞관련 기사 : 죽어가는 6자 회담, 살릴 방법 없나)
핵심적인 요지는 '한미 양국이 한미군사훈련을 중단할 의사가 있으니 북한은 핵실험은 물론이고 장거리 로켓 발사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남-북-미 3자 대화를 제안하는 것도 고려할 법하다.
관성이 만들어낸 안보 딜레마
악화 일로를 걸어온 한반도 정세의 전환점을 만들기 위해서는 양측 모두 '관성의 법칙'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40년간 한미군사훈련을 지속해왔으니 앞으로도 계속하겠다는 관성으로는 꽉 막힌 한반도 정세의 돌파구를 만들 수도, 다가오는 위기를 예방할 수도, 갈수록 고도화되는 북핵 능력을 제어할 수도 없다는 것이 자명해지고 있다. 북한 역시 도발적인 언행으로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려는 관성에서 벗어나 한미 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우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일방적 안보에서 공동 안보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는 자세도 필요하다. 대규모 한미군사훈련에 담긴 의도는 '북한을 불안하게 만들어 우리의 안보를 튼튼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핵 억제력'도 마찬가지 의도를 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방적 안보는 상대방의 반작용을 야기해 한미동맹과 북한 모두 더욱 불안해지게 만드는 '안보 딜레마'만 가중시켜왔다.
새로운 안보는 '상대방이 안전해져야 나도 안전해진다'는 발상의 전환에 기초한다.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이 총성 한방 울리지 않고 냉전을 종식할 수 있었던 힘도 여기에서 나왔다.
모쪼록 남-북-미 3자가 이러한 역사적 교훈과 한반도가 직면한 위중한 상태를 직시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필자 저서 <MD본색 : 은밀하게 위험하게>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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