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5년이 지난 7월 22일, 부산고등법원 301호 법정. 현대자동차가 업무 방해와 폭행 등으로 고소한 47명이 피고인석부터 방청석까지 법정을 가득 메웠습니다. 2010년 11월 15일부터 시작된 울산 1공장 점거 파업, 2012~2013년 파업과 296일 철탑 농성, 2013년 현대차 희망 버스 등 사건 때마다 현대차 회사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소한 재판이었습니다.
역사적인 7월 22일, 대한민국 법원은 무덤으로 사라진 '제3자 개입 금지'보다 더 해괴망측한 '업무 방해 방조'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7월 2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무슨 일이?
지난해 9월 22일 검찰은 현대차 비정규직 박현제 전 지회장과 강성용 전 수석부지회장에게 징역 5년, 대법원 판결 당사자인 최병승 조합원에게 징역 3년 구형 등 53명에게 총 69년 10월형을 구형했습니다.
바로 직전인 9월 18~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1274명 전원에게 현대차 정규직이라며 노동자들이 옳았다고 판결했지만, 검찰은 불법을 저지른 현대차는 손끝 하나 대지 못하고, 노동자들에게만 중형을 구형했습니다.
한 달 뒤인 10월 17일, 울산지방법원 형사3부(재판장 정계선)는 박현제 전 지회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강성용 전 수석부지회장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등 8명에게 징역형을 선고했고, 최병승을 비롯한 46명에게는 50~300만 원의 벌금형을 내렸습니다.
법원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생산 업무 방해, 경비 폭행, 고공 농성, 집행관 공무 집행 방해 등으로 “실정법 위반 행위가 수년간 반복적으로 이루어졌고, 이로 인하여 현대자동차가 적지 않은 손해를 입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의 집행을 유예한 이유로 △비정규직 고용이 불안한 불합리를 해결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에 관한 사회적 갈등이 입법적, 정책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적으로 반복됐으며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라 사내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현대자동차의 근로자임을 확인하는 민사 판결이 선고되었다는 것입니다.
검찰 징역 5년 등 중형 구형, 법원 집행 유예·벌금
특히 법원은 현대차와 검찰이 표적으로 삼은 대법원 판결의 당사자 최병승 씨의 2010년 11월 공장 점거 파업의 '업무 방해' 여부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법원은 "최병승은 비정규직지회의 임원이 아니었고, 현장에 있지도 않았으며, 점거 농성을 결정하는데 공모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또 법원은 "최병승이 현대자동차에 대해 부당 해고를 다투는 소송에서 승소함으로써 조합 내에서 어떠한 상징적인 인물로서 떠올랐다는 사정만으로 최병승이 구체적인 업무 방해 행위까지 지시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업무 방해 행위에 대한 공모 및 그에 대한 본질적 기여를 통한 기능적 행위 지배가 인정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최병승에게 2010년 겨울 공장 점거 파업에 대해서는 무죄, 이후 공장 앞 철탑 농성 등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해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법원이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준 판결이었습니다.
검찰은 곧바로 형량이 낮다며 항소했습니다. 특히 현대자동차와 검찰은 1심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최병승에 대해 공소장을 '업무 방해'에서 '업무 방해 방조죄'로 변경해 부산고등법원에 항소했습니다.
뒤집힌 2심
대법원 판결 5주년이 되는 7월 22일, 항소심 재판부인 부산고등법원 형사 2부(재판장 박영재)는 검찰과 변호사의 항소를 대부분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 당사자인 최병승에 대해 '업무 방해 방조죄'를 인정해 벌금 400만 원을 판결했습니다.
① 비정규직지회가 창설된 이래 임원들이 금속노조 미조직 국장직으로 경험이 풍부한 피고인 최병승으로부터 조합의 활동 방향을 정함에 있어 일정 부분 영향을 받은데다가, 피고인 최병승은 비록 비정규직지회의 직책을 맡고 있지는 않지만, 현대자동차에 대한 소송에서 승소한 이후 비정규직지회의 상징적 인물로서 2012년 대통령 선거와 국정 감사를 앞두고 사내하청 문제를 쟁점화하기 위하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앞 송전 철탑에 올라가 296일간 고공 농성을 하는 등 장기간 파업의 구심점이 되어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에게 상당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② 그런 지위에 있는 피고인 최병승이 ⅰ) 2010. 11. 15.부터 2010. 12. 5.까지 7회에 걸쳐 현대자동차 정문 앞에서 CTS 라인점거 농성에 참가한 조합원들을 지지하는 취지의 집회에 참여하여 사회를 보거나 기자 회견을 열었고, ⅱ) 2010. 11. 17. CTS 라인 점거 농성장에 들어가 농성장에 있던 비정규직지회 간부들과 조합원들에게 인사하고 농성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였으며, ⅲ) 2010. 11.경 금속노조 또는 쟁의대책위원회의 파업과 관련한 공문 등을 비정규직지회 등에 이메일로 보냄으로써, 정범인 조합원들의 업무 방해 범행을 인식하고 그 결의를 강화함과 아울러 그 범행을 용이하게 하였다고 판단된다.
부산고등법원 형사 2부 박영재 재판장이 쓴 판결문 내용입니다. 점거 농성 당시 공장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발언을 한 사람은 국회의원, 유력 정치인,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위원장 등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울산1공장 CTS 점거 파업 농성장에도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핵심 지도부들 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홍영표 노동위원장,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등 야당 국회의원들이 들어와 "인사하고 농성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법원은 국회의원도, 민주노총 위원장도 아닌 최병승이 '업무 방해 방조'에 해당하는 이유를 '비정규직지회의 상징적 인물'이라고 밝혔습니다. 상징적 인물이기 때문에 업무 방해를 방조했다는,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가 없는 판결이 세상 어디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더군다나 법원은 최병승이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에게 상당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근거로 범죄 여부를 다투는 2010년 11월 공장 점거 파업 이전이 아니라, 2년이 지난 2012년 송전 철탑 고공농성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어떻게 2년 후에 한 행동이 2년 전 업무 방해를 방조하는데 '상당한 파급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상징적 인물이기 때문에 업무 방해 방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 노동자의 파업을 업무 방해로 처벌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업무 방해죄는 산업 혁명 이후 유럽에서 노동자의 파업을 막기 위해 만든 법으로 현재 이 법을 운영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국제노동기구(ILO)도 2012년 11월 "한국 정부가 형법 314조(업무 방해)를 결사의 자유 원칙에 부합시키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즉각 취하고, 이에 대해 지속적으로 보고해줄 것"을 촉구했습니다.
현대차, 쌍용차 등 사용자들이 노동자에 대해 청구한 손해 배상 소송에 맞서 지난해 '노란 봉투' 캠페인이 벌어졌고, 3개월 동안 시민 5만여 명이 15억 원을 모았습니다.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손해 배상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법률 개정안도 국회에 상정되었습니다.
세계에서 대한민국밖에 없는 '파업에 대한 업무 방해죄'를 넘어 대한민국 법원이 '업무 방해 공조죄'를 인정한 것입니다.
세계 유일의 파업에 대한 업무 방해죄+공조죄
현대자동차는 7월 22일 부산고등법원 선고 직후 언론에 판결 내용을 알렸습니다. 경제 신문과 울산 지역 언론은 "최병승이 2심에서 비록 벌금형을 받았지만, 무죄가 아닌 유죄 판결을 받은 이상 하청 불법 행위와 관련된 민사 소송 책임 소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 의미가 크다"며 똑같은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이어 신문들은 "2013년 10월 1심 재판부는 증거 불충분으로 최 씨에 대한 손해 배상 청구를 기각했다"며 "이번 형사 항소심의 유죄 판결은 불법 행위 손해 배상 소송의 결정적 증거로 작용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습니다.
현대차가 '제3자 개입 금지'의 최신 버전인 '업무 방해 방조'라는 해괴한 법률을 가져와 최병승을 고소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에게 손해 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서입니다.
현대자동차는 2010년 25일간의 공장 점거 파업에 대해 조합원 475명을 상대로 총 203억원의 손해 배상 소송을 청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법원은 11명에 대해 20억 원, 22명에 대해 90억 원, 122명에 대해 70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당시 20억 소송의 대상이었던 최병승은 2013년 법원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손해 배상에서 제외됐습니다. 그러자 현대차는 최병승에 대해 업무 방해로 고소했고, 1심 재판부에서 무죄 판결을 받자 공소장까지 변경해가며 '업무방해 방조'로 고소한 것입니다.
대법원에서 '업무 방해 방조'가 인정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최병승에게 지급해야 할 체불 임금이 8억 원이 넘습니다. 손해 배상이 인정되면 현대차는 최병승에게 20억 원을 받아낼 수 있게 됩니다. 법원에서 인정된 손해 배상액 20억 원은 대상자인 12명이 나누어 내는 게 아닙니다.
현대차는 당시 울산1공장 25일 점거 파업의 핵심 지도부였고, 양재동 광고탑 농성까지 벌였던 노아무개 수석부지회장의 손해 배상을 취하했고, 그는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이 됐습니다. 현대차가 최병승을 제외한 11명의 손해 배상을 취하해주면, 최병승 혼자 20억을 물어낼 수도 있습니다.
불법 파견 판결 상징, 최병승 혼자 20억 원 갚아라?
영업 이익이 지속적으로 추락하고 있는 세계 5위 현대자동차가 자동차 품질을 높이고 국제 경쟁력을 올리는데 골몰하지 않고, '최병승 죽이기'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불법 파견의 상징 최병승을 '손해 배상의 올가미'에 가둬,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용기를 내서 싸우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최병승의 용기에 힘입어 법원에 불법 파견 소송을 제기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려는 이들에게 "최병승처럼 되지 않으려면 입 닥치고 살라"는 것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한민국 최대 재벌 현대자동차에 감히 덤비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정말 현대차의 뜻대로 되는 걸까요? 군사 독재 시절의 '제3자 개입 금지'가 무덤에서 살아나 대법원에서 노동자 파업에 대한 '업무 방해 방조죄'가 인정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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