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영화 <연평해전>을 봤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상영관에 들어섰지만, 영화를 보면서 안타깝고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영화는 "한국 전쟁 직후 유엔 사령관이 북방한계선(NLL)을 선포하고 북한도 이를 인정했다"는 자막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NLL을 그은 당사자인 미국의 비밀 해제 문서는 이와 전혀 다른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 북한이 NLL을 인정한 것은 고사하고 통보받지도 못했다는 게 그 내용이다.
영화는 서해교전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이 계속되고, 김대중 대통령이 한일 월드컵 결승전 참관 및 한일 정상 회담을 위해 출국할 예정이라는 뉴스로 끝난다. 당시 김대중 정부의 이러한 입장에 대해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에 대한 장면은 일체 없었다.
극장 밖의 풍경은 더욱 살벌하다. 일부 언론과 전문가, 전직 관료, 그리고 정치인까지 나서 '햇볕 정책이 우리 장병을 죽였다'거나 '연평해전은 김대중의 책임이다'라는 말이 서슴지 않고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서해교전 발생 13년이 지나도록 진실 규명에 한 발짝도 다가서지 못했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의 지적처럼, 왜 참수리호가 6노트라는 느린 속도로 북한 경비정에, 그것도 전투 대형도 갖추지 않고 접근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당시 교신 기록과 전투 상보를 공개하면 어렵지 않게 규명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렇듯 진실이 묻혀 있는 사이에 제2연평해전은 이미 고인이 된 김대중 대통령을 공격하는 정치적 무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처럼 서해 문제는 탈동조화(decoupling) 현상으로 치닫고 있다. 진실과 정치가 갈수록 따로 가고 있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꺼내든 NLL 대화록 파문은 '죽은 노무현을 불러내 산 문재인을 잡겠다'는 정치적 기획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서해교전을 제2연평해전으로 둔갑시킨 보수 세력은 교전 사태를 이미 고인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 NLL을 이용한 '부관참시의 정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NLL이 '삼중 분단'을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점은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 1999년, 2002년, 2009년 세 차례 서해에서의 교전과 천안함 침몰 및 연평도 포격전을 거치면서 NLL은 남남 갈등-남북 대결-미·중 경쟁으로 얽히고설킨 한반도 분단 구조를 대표하고 있다. 이러한 실타래를 풀어야 할 정치는 오히려 이를 꼬이게 만들고 있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진실 규명에 있다. NLL의 역사적 진실은 무엇인지, 왜 참수리호가 무방비 상태에서 느린 기동에 나선 것인지, 천안함 침몰의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 등이 이에 해당된다. 불편할 수 있지만, 진실에 다가설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비극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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