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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동운동가의 유언 "노조도 동지도 차갑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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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 노동운동가의 유언 "노조도 동지도 차갑더군요!"

[박점규의 동행] 사내하청노조 10년, '신분 상승 운동' 반성

오는 5일은 금속노조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한 지 꼭 10년이 되는 날입니다. 2005년 7월 5일, 구로공장에서 파견 노동자로 일하던 230여 명이 금속노조에 가입해 8월 23일부터 10월 17일까지 55일 동안 공장 점거 파업을 벌이며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올해로 10주년 생일을 맞은 비정규직 노조가 많습니다. 2005년 2월 23일 현대차 전주공장, 4월 10일 GM대우 창원공장, 6월 4일 기아차 화성공장, 6월 13일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 9월 4일 기아차 모닝공장(동희오토), 10월 11일 KM&I 군산공장까지. 2005년 한 해에만 7개의 비정규직 노조가 태어났습니다.

비정규직 노조의 효시인 한라중공업 사내하청 노조가 1999년 결성된 것을 시작으로 2000년 대우캐리어, 2003년 현대자동차(아산, 울산)와 현대중공업, 2004년 하이닉스매그나칩을 거쳐 2005년 봇물 터지듯 노조 결성이 잇따랐습니다. 사내하청 노동 운동의 1차 부흥기가 시작됐습니다.

노동 역사상 가장 처절한 싸움과 작은 결실

한국 노동운동 100년의 역사에서 가장 처절한 싸움이 이어졌습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다섯 차례 고공 농성과 생사의 경계를 넘어서 94일 단식이라는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현대하이스코 노동자들은 두 차례 크레인 점거 농성 이후 130미터 타워크레인이라는 노동운동 역사상 가장 높은 곳에 올랐습니다.

노조 깃발이 오른 공장은 어김없이 대량 해고가 이어졌고, 하청 노동자들은 공장 점거 파업으로, 고공 농성으로 맞섰습니다.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도장 공장 점거 파업, 하이닉스매그나칩 하청 노동자들의 도청 옥상 점거 파업, 비정규직법을 막아내기 위한 국회 타워크레인 고공 농성…. 인권 변호사 출신 노무현 정권과 자본에 맞선 하청 노동자들의 싸움은 처절하고 처연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항과 희생은 작은 결실을 싹틔웠습니다. 대법원은 2010년 7월 22일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 파견이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인정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단, 하루만 불법 파견으로 일해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파견법이 일부 개정됐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운동 10년이 흘렀습니다. 2013년 7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민주노조의 깃발을 올린 것을 전후로 케이블 통신 비정규직, 제조업 사내하청 등 노조 결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동양시멘트, 현대위아 광주공장, 한국지엠 군산공장, 구미 아사히글라스에서 잇따라 하청노조가 만들어져 제2의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현대차의 잘못된 합의를 반복한 기아차 정규직 노조

6월 11일, 비정규직 노조 결성 10주년을 맞이한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두 명의 하청 노동자가 국가인권위원회 광고탑 위에 올랐습니다. 성대한 기념식 대신 기아차와 정규직 노조가 맺은 합의를 파기하고,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요구를 내걸었습니다.

지난해 9월 18~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정규직 소송을 낸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1274명에 대해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밀린 임금을 주라고 판결했습니다. 이어 9월 25일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468명에 대해서도 같은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기아자동차 회사와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는 지난 5월 12일 특별교섭을 열어 사내하청 노동자 3400명 중에서 2015년 200명, 2016년 265명 등 465명을 정규직으로 특별채용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사내하청 당사자들이 강력히 반발했지만 정규직 노조는 합의를 강행했습니다.

지난해 8월 18일 현대자동차 회사와 정규직 노조, 아산과 전주 비정규직지회가 6000여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 중에서 1962명을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하기로 한 '8.18 합의'의 판박이입니다.

ⓒ프레시안(선명수)

비정규직 없는 세상 단초를 만들었다고?

대법원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 내용은 자동차 조립 생산 공정의 노동자는 원청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동차 회사의 첫 공정부터 차를 검사하고 선적하는 일까지 전체 공정이 ①일련의 작업이 연속적으로 진행되고 ②정규직 업무와 밀접하게 연동되어 이루어지며 ③작업 결과가 누구의 작업인지 구별이 곤란하기 때문에 '합법 도급' 공정이 단 한 곳도 없다는 판결입니다.

법원이 모든 자동차 공정을 '불법 파견'으로 판결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기아차 회사는 비정규직 불법 사용을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직접 공정만 정규직으로 바꾸고 간접 생산 공정은 하청 노동자들로 채우고, 계약직을 늘려 사내하청을 대체한다는 것입니다.

2014년 기준 현대자동차에는 기간제 3684명, 간접고용 1만1066명 등 모두 1만475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하고 있습니다. 이 중 현대차 노사 합의대로 1962명이 정규직이 되어도 1만2788명의 비정규직이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차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 단초를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기아자동차가 노사 합의대로 2016년까지 465명을 채용해도, 479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남게 되는데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원년 실현 토대"라고 강변합니다.

자본의 목표는 사내하청 노조 없애기

현대차 자본은 비정규직 노조를 무력화 하겠다는 속셈입니다. 8.18 특별채용 합의 당시 전주와 아산공장 조합원의 80%가 2015년 7월 현재 정규직으로 채용됐습니다. 회사는 파업을 주도한 핵심 노조 간부들까지 정규직으로 뽑으면서 합의에 반대해 외롭게 싸우고 있는 울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2010년 공장 점거 파업으로 해고됐던 '강성' 비정규직 해고자도 신규 채용 원서만 넣으면 곧바로 정규직으로 채용되고 있습니다. 현대차는 2010년 25일 공장 점거 파업 당시 핵심 지도부까지 정규직으로 뽑고 거액의 손해 배상을 취하해주고 있습니다.

현대차 울산 비정규직지회만 무너지면, 회사는 원하는 공정에 비정규직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2008년과 같은 경제 위기가 닥쳐도 비정규직 노조가 없다면 아무런 저항도 없이 비정규직을 내보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정규직 노조의 외면과 배신

현대와 기아차 비정규직은 사내하청 노동 운동의 최전선이었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05~2006년 불법 파견 파업, 2010년 25일 공장 점거 파업, 2012~3년 296일 철탑 농성으로 사내하청 정규직화 투쟁의 중심이었습니다.

기아차 비정규직도 2005년부터 매년 파업을 벌여 원․하청 3자 고용 보장 합의를 끌어냈고, 2007년 8월, 9일 동안의 도장 공장 점거 파업을 전개했습니다.

▲ 지난 2012~2013년 296일 철탑 농성을 벌인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천의봉, 최병승 씨. ⓒ연합뉴스

불법파견 투쟁 10년,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양 날개였던 현대와 기아차에서 근속과 체불임금을 포기하고, 사내하청 노동자 중에서 일부만을 정규직으로 채용해 불법 파견에 면죄부를 주는 합의가 버젓이 일어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규직 노조의 야합과 배신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2000년 8월 생산 공정에 사내하청을 16.9% 사용하기로 한 이후 현대차 정규직 노조의 15년은 비정규직을 외면하고 배신한 역사였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 통합도 세 차례나 부결됐고, 2008년 경제 위기에서는 1000명이 넘는 사내하청 노동자를 공장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2010년 11월 15일부터 시작된 하청 노동자들의 25일간의 공장 점거 파업에서 현대차지부는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된 연대 파업을 거부하고, 비정규직에게 농성 중단을 협박했습니다.

비정규직 노조를 통제하기 위해 강제적 '1사1 노조'를 시행한 기아자동차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기아차 사내하청분회는 정규직 노조의 일개 부서 수준으로 전락했습니다. 기아차 정규직 노조는 김학종 광주 사내하청 조직부장이 신규채용 중단, 사내하청 우선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분신 자결을 시도했는데도 불구하고 '정규직 장기 근속 조합원 자녀 우선 발탁 채용'을 합의했습니다.

계급 투쟁이 신분 상승 투쟁으로

노동 운동의 연대 정신을 훼손한 것은 바로 사내하청 지도부 자신들입니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 운동은 2010년 11월 15일부터 25일 동안 공장 점거 파업을 전개하며 "모든 사내하청은 정규직"이라고 선언하고 전체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대신한 계급 대리전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농성 중단 이후 104명이라는 대규모 해고와 200억 원이 넘는 손해 배상, 현대차 자본과 정규직 노조의 협박과 회유 앞에서 조금씩 무너져 내렸습니다. 노동위원회에서 직접 생산 공정과 간접 생산 공정을 구분해 불법 파견을 판정하고 나자, 법원 판결에서 일부 조합원이 패소할 것을 우려해 '조합원 우선 정규직화'의 유혹에 빠졌습니다.

2012년 8월 2일 단 하루라도 불법 파견이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파견법 개정이 이루어지고 회사가 불법을 피하려고 한시 하청 노동자들을 촉탁 계약직으로 전환했지만, 이에 맞서 함께 싸우지 않았고, 촉탁 계약직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2013년 이후 불법 파견 특별 교섭은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이 전원 포함되느냐로 집중됐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운동 15년, 사내하청 노동 운동 10년의 빛나는 투쟁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8.18 합의서'라는 종이 쪼가리가 남았습니다. '비정규직 철폐 투쟁'은 '투쟁하는 조합원 정규직 되기'로 바뀌었고, '비정규직 없는 공장 만들기 운동'은 '비정규직 조합원 신분 상승 운동'으로 변질됐습니다.

2006~7년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파업과 국회 타워크레인 고공 농성을 벌이며 노무현 정권의 비정규법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2015년 비정규직을 양산하려는 박근혜 비정규직 종합 대책에 맞선 투쟁은 보이지 않습니다.

'더 낮은 비정규직' 외면하는 비정규직 노동 운동

"조직도 노조도 친구도 동지도 차갑더라구요."

2013년 1월 28일,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비정규직 해고자 윤주형이 남긴 유서입니다. 2010년 4월 해고된 윤주형은 3년 동안 해고자 복직 투쟁, 희망버스와 연대운동을 활발하게 벌였습니다. 2012년 9월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대의원대회에서 해고자 원직복직 요구안이 통과되지 않자, 그는 노동 운동을 계속할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끊었습니다.

동료 해고자들은 고인의 원직·복직이 이뤄지지 않으면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정규직으로 복직시켜달라는 것도 아닌, 하청업체에 원직으로 복직 발령을 내 저승길에서라도 '부당 해고'를 인정받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는 윤주형이 죽은 날 '재입사' 안을 가져와 장례를 치르겠다고 했습니다. 2월 1일 노동조합 대의원들이 장례식장에 몰려와 염과 입관을 하고 장례를 강행했습니다. 해고자들과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눈물로 막자, 장례비를 치르고 장례식장을 떠나가 버렸습니다. 백기완 선생님이 장례식장에 내려온 후 원직·복직 합의가 이뤄졌고, 11일 만에 장례를 치렀습니다.

장례를 강행하려고 했던 그들은 정규직 노조 간부들만이 아니었습니다. 기아차 화성 사내하청분회 노조 간부들도 많았습니다. 지금 국가인권위원회에 올라가 '기아차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노동자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기아자동차의 어느 비정규직 활동가는 주형이가 생각나서 차마 그 자리에 가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장례식장에 와서 펑펑 울면서 그 장면을 목격한 어느 노동 가수도 국가인권위원회 농성장이 불편하다고 합니다.

윤주형과 함께 해고자 복직 투쟁을 했던 이동우 전 기아차 비정규직지회 부지회장은 지금도 해고자로 남아 있습니다. 현 비정규직 노조는 이동우의 복직을 위한 싸움에 적극 나서지 않았습니다. 공장 안의 2~3차 하청, 촉탁 계약직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 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박근혜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막아내기 위한 싸움에 앞장서지 않았습니다.

▲법원 판결에 따라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며 지난 12일 국가인권위원회 전광판 위에 오른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 ⓒ금속노조

아래로 흐르는 노동 운동

사내하청 운동 10년. 당사자들의 희생이 가장 컸지만, 함께 연대하고 투쟁했던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희생도 적지 않았습니다.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다 구속, 수배, 연행되고 수십 억의 손해배상을 맞고, 지금까지 법원에 불려 다니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쌍용자동차가 단순한 노사 간의 협상이 아니라 한국사회 정리해고를 둘러싼 노사 간의 계급 대리전인 것처럼, 현대·기아차 비정규직도 900만 비정규직을 대신한 사회적 투쟁입니다. 이 싸움의 결과에 따라 전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용기를 얻을 수도,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무릅쓰고 기꺼이 연대에 나섰던 것입니다.

현대와 기아자동차가 비정규직 없는 공장이 될 때까지 농성을 계속하고, 대한민국이 비정규직 없는 나라가 될 때까지 파업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다만,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던 현대와 기아차 비정규직 투쟁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의 돌파구를 여는 부끄럽지 않은 결과를 남겨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소문이 돌아다닙니다. 기아차 노사가 추가 협의를 통해 특별채용 대상을 몇백 명 늘리면 농성을 중단하고 노사가 합의를 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광주공장에서는 일부 대의원들이 앞장서서 신규 채용 인원을 한 명이라도 더 광주로 할당받으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많은 이들이 바라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광고탑 고공 농성이 당신들만의 정규직 신분 상승을 위한 싸움이 아니기를. 당신들보다 더 힘든 2~3차 하청노동자, 계약직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나아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박근혜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맞서 함께 싸워나가기를.

오는 7월 11일 전국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국가인권위원회 앞으로 모여 비정규직 문화제를 엽니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부터 멀리 울산, 순천, 강원 삼척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로 올라와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응원하고 함께 싸웁니다.

10주년 생일을 맞은 비정규직노조부터 갓난쟁이 하청노조까지 함께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려고 합니다. 비정규직 노동 운동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앞으로 부끄럽지 않게 싸우겠다고 다짐하려고 합니다. 낮은 곳으로 흘러 바다가 되는 물처럼, 아래로 흐르는 노동 운동을 하겠다고 마음을 모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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