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불평등을 보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내가 사는 동네가 옆 동네보다 사망률이 높다고 적힌 지도를 본다 해도, 사망률이 가장 높은 구에서 가장 낮은 구보다 두 배 이상 더 많이 사망한다는 설명이 붙어도, 조금은 충격적이겠지만 역시 잠시 뿐, 곧 내 일이 아닌 것처럼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것은 지역의 일, 혹은 어떤 집단의 일일 뿐이다.
이는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불평등이 몸에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그 경로 또한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불평등은 결코 빈곤하거나 특수한 집단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에게나 영향을 미치는 기울어진 경사면(gradient)과 같다.
세계보건기구(WHO)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 위원회'가 건강 불평등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제시한 3대 총괄 권고안 중 첫 번째가 바로 '일상적인 삶의 조건 개선'이다. (☞관련 자료 : Closing the gap in a generation) 이는 건강 불평등의 개입 지점뿐만 아니라 발생 지점 또한 그리 거창한 데에 있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물론 그것들을 해결하는 일이 별 것 아니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다면 너무 일상적이라서 오히려 그러한 불평등의 문제에 무뎌져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찬찬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위기는 한 사회의 취약 지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최근 한국 사회를 덮친 메르스 사태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제도와 정책 차원의 문제점을 수없이 지적하고 있다. 그 중에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의사 소통의 실패였다. 정부 내, 혹은 정부와 의료 기관 간의 의사 소통 문제는 많이 언급되고 있으니 여기에서는 그보다, 그 동안 불확실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정보의 홍수와 소통의 혼란 속에서 고통 받은 사람들의 일상에 눈을 돌려보자. 이 안에서는 과연 불평등이 없었을까?
사회에 어떤 공중 보건 위기가 생기게 되면 인구 집단을 잠재적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소통(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사용된다. 감염성 질환 유행의 경우 감염 실태 보고, 감염원에 대한 지식 제공, 예방과 대응 지침 홍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때 메시지를 받고, 정보에 접근하고, 지침을 이해하며, 이를 행동에 옮기는 역량에 사회적 불평등이 존재한다면 이를 커뮤니케이션 불평등이라 정의하게 된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리사 린(Leesa Lin) 연구 팀은 2009년 세계적으로 신종플루(H1N1) 유행이 있었던 시기에 수행된 커뮤니케이션 관련 118개의 연구를 종합하여 커뮤니케이션 불평등에 관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 연구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의 불평등이 건강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관련 자료 : What have we learned about communication inequalities during the H1N1 pandemic : a systematic review of the literature)
1) 광고 캠페인이나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은 신종플루에 대한 지식 수준을 높이고, 질병에 대한 우려(감정), 심각성과 감염 가능성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인다.
2) 신종플루에 대한 지식, 질병에 대한 우려, 심각성과 감염 가능성에 대한 인식은 권고된 예방 행동의 효과 및 정부의 대응에 대한 신뢰와 연관된다.
3) 권고된 예방 행동과 정부의 대응에 대해 신뢰하는 태도를 가질 경우 예방 접종이나 손 씻기 등 위생 지침을 따르는 경향을 보인다.
이때 교육 수준에 따라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에 노출되는 정도가 달라지는데 교육 수준이 낮은 경우 신문이나 인터넷과 같은 다른 수단보다는 텔레비전에만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소득 수준이 높고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신종플루에 관해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할 기회를 가졌다. 결과적으로 위생 지침과 사회적 거리 두기(밀폐된 복잡한 장소에 가지 않기) 등 예방적 행동을 따르는 것도 높은 사회 경제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약하면, 감염성 질환으로 인한 공중 보건 위기 상황에서 사회 경제적 수준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수단에 접근하는 정도와 얻게 되는 지식 수준에 불평등이 있고 그 결과 예방 수칙이나 대응 방법에 대한 태도와 신뢰에 영향을 미쳐 결국 이를 따르는 정도에도 불평등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건강 결과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이번 메르스 사태 속에서 우리는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누군가는 아는 사람 중 의료인이 있어서, 혹은 빠르게 정보를 수집할 능력과 이해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줄여나갈 수 있는가 하면, 텔레비전만을 바라보면서 여전히 불안해하는 사람, 생업이 바빠 저녁 뉴스마저도 잘 볼 수가 없어서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문으로만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집에 인터넷은커녕, TV, 신문도 없는 가난한 이웃들은 어떻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사회적 요인에 따라 생기는 불평등에는 당연히 이를 보완해줄 제도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라면 보다 접근이 취약한 곳에 정보가 잘 전달되고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아프지 않고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없을 때는 건강 불평등에 대해서 생각할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에서 드러나듯, 사회적인 요인에 의해 내가 무엇에 노출되는지 어떻게 반응하게 되는지가 달라진다면 건강 불평등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위험 커뮤니케이션만의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불평등에 대한 감수성을 더 민감하게 가지는 것, 그것이 바로 건강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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