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 단독 처리와 공무원연금법 관련 여야 대표 합의 이행 거부로 대치 중인 여야가, 12일 국회 본회의 안건 처리 문제를 두고 정면으로 충돌했다.
새 협상 파트너가 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이 원내대표의 취임 후 처음 열린 본회의에서부터 격한 갈등을 빚은 것이다.
표면적으로 이날 충돌은 야당 소속 법제사법위원장인 이상민 의원이, 본회의 전 마지막 입법 절차인 법사위 통과 56개 법안에 대해 본회의 부의 절차를 거부하면서 발생했다.
국회는 앞서 여야 원내지도부 간 회동을 통해 '우선 처리'에 의견을 모았던 3개 법안(△소득세법 △지방재정법△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대해서만 이날 표결 절차를 마친 상황이다.
그러나 이 같은 충돌의 밑바탕에는 지난 6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 동의안을 직권상정하고 여당의 단독 표결로 처리됐던 상황이 깔려있다.
박 후보자는 고(故)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은폐·조작 의혹이 제기된 인물로, 야당에서는 지금도 박 후보자의 자진 사퇴와 임명 동의안을 직권 상정한 정 의장의 재발 방지 약속을 요구하고 있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안과 연계 합의됐던 공적연금 사회적기구 구성 논란도 문제가 됐다.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로의 상향 조정을 위한 사회적 기구 구성 설치 국민대타협기구 합의를 '존중한다'는 데 서명하고도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을 사실상의 '합의 파기'로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여야, 지난 주말 3개 법안 '우선 처리'에 합의
사실 이날 충돌은 지난 주말부터 예고된 것과 다름 없었다. 여야 원내지도부는 9~10일 연이어 회동을 하고 5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법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이때에도 새누리당은 지난 6일 본회의에서 처리되지 못한 법안들을 12일 본회의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새정치연합은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통과가 무산됐고 박 대법관 후보자 임명 동의안이 단독 표결된 6일 본회의 파행 책임은 새누리당에 물었다.
문제가 된 두 사안에 대한 새누리당과 정 의장의 명시적 조치가 없다면, 여당이 요구하는 법안 처리는 불가하다고 맞선 것이다.
다만 양당은 이때 연말정산 후속대책을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과 누리과정 관련 지방채 발행을 위한 지방재정법, 그리고 상가임대차보호법 등 3개 법안의 우선 처리에는 의견을 모았었다.
이처럼 '3개 우선 처리'만이 일단 합의된 것임에도 새누리당은 본회의를 앞둔 12일 오전부터 새정치연합을 향해 날을 세웠다. 조해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법사위 통과) 법안 중 상당 부분은 야당 의원이 냈는데 버티고 있는 그 의식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본회의에 앞두고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는 이상민 위원장을 만나 직접 항의를 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이 위원장은 이종걸 원내대표와 얘기를 나눴다면서 "원내대표끼리 말을 잘 해보라. 정치가 주고 받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저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말하면 난처하다"고 말했다. 법사위 통과 안건에 대한 본회의 부의 절차 처리를 거부한 것이다.
본회의 갈등 최고조…여야, 공수 바꿔가며 '너 때문이야'
갈등은 오후 2시 시작된 본회의장 안에서 최고조로 달아올랐다.
회의가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 새정치연합 최민희 의원이 의사 진행 발언을 신청해 정 의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그는 "야당을 철저히 무시하고 권력 순응적 부적격 인사(박상옥 대법관)를 직권 상정하고 밀어붙인 정 의장과 새누리당을 강력히 규탄한다"면서 정 의장을 향해 "사과와 재발방지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그러자 새누리당의 민현주 의원이 나섰다. 민 의원은 "6일 법사위를 통과하고 본회의 처리만 앞둔 시급한 법안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면서 "국회가 밀린 숙제를 꼭 완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후 국회는 사전 합의된 3개 법안 등에 대한 표결 절차를 진행했으나 이 이후에도 갈등은 계속됐다.
새정치연합 이언주 의원은 '일본정부의 조선인 강제 징용시설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등재 추진 규탄 결의안' 처리에 앞서 토론장에 나서 "여야 합의를 청와대 가이드라인으로 깬 것이 누구인가. 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해 여당 의원들의 고성 항의로 이어졌다.
이 의원은 또 여당이 이번 규탄 결의안은 쉽게 처리하면서도 '강제 징용에 대한 손해배상 관련 법안'의 처리에는 소극적이라는 주장을 하다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여야는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이와 연계된 공적연금 사회적기구 설치 문제를 두고도 공방을 벌였다.
공무원연금개혁 특별위원회 야당 간사였던 김성주 의원은 '5분 토론'을 신청해 "청와대가 나서 민간 보험사가 떠들어왔던 기금폭탄, 보험료 폭탄, 세금 폭탄 괴담을 유포해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용기를 가지고 2일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고, 이후 김현숙 공무원연금특위 여당 간사가 나서 "2일 합의는 외려 야당이 지키지 않았다"고 반발했다.
이에 강기정 새정치연합 의원이 다시 "3장으로 된 계약서에 1장만 처리하고 2~3장은 다음에 하자는 게 성립이 되느냐"고 따졌으며, 새누리당은 추가 토론을 하겠다고 요구했으나 이날 사회를 본 이석현 부의장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본회의는 산회했다.
이상민 "유승민 갑자기 태도 돌변…시정잡배도 하지 않을 짓"
새누리당은 이 직후 본회의 장소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이상민 법사위원장과 이석현 부의장에 대한 대책 논의를 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일부 의원들은 이상민 법사위원장에 대한 해임결의안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특별한 의결 절차나 이와 관련한 당 지도부의 입장 표명은 없었다고 민현주 원내대변인은 밝혔다.
새누리당은 그러나 이날 본회의 진행을 맡았던 새정치연합 소속 이 부의장을 상대로는 "불공정한 의사진행"을 한 것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했다.
이 부의장이 안건과 상관없는 내용으로 이언주 의원이 토론을 했음에도 제지하지 않았다가, 이를 반박하기 위한 김진태 의원의 발언은 제지를 했다는 점, 또 공무원연금 개혁안 관련 공방을 할 때 야당에는 2명 의원에게 발언 기회를 줬지만 여당엔 김현숙 의원 1명에게만 토론 기회를 줬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이로써 야당은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직권상정한 정의화 의장에게, 여당은 12일 본회의를 불공정하게 진행했다는 이석현 부의장에게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한 셈이 됐다.
한편, 논란의 중심에 선 이상민 위원장은 이날 본회의 산회 직후 기자들을 만나 "저희당은 오늘 본회의를 하지 말자는 격앙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면서 "그럼에도 지난 일요일 원내대표 (회동에서) 세 건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서 법사위원장의 횡포라고 비난하는 것은 시정잡배도 하지 않는 비겁한 짓 아닌가"라며 유 원내대표를 강하게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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