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질구질하다. 이미 '식물(植物)' 판정을 받은 이완구 국무총리는 이쯤에서 사퇴해야 한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전 새누리당 의원)의 주장이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물론 불법 정치자금 수수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소요될 상당 시간동안 국민이 '식물총리'를 머리에 이고 살 의무는 없다.
이 총리는, 본인은 모르는 것 같지만 이미 '식물총리'가 됐다. 어떤 공무원이 특검 대상이 될지 모를 국무총리의 명을 이행하고 싶어할까.
이 총리가 구설수에 오른 것은 처음이 아니다. 매번 '메가톤급' 이슈의 중심에 섰다. 청문회 과정에서는 각종 부동산 투기 의혹은 물론 병역 기피 의혹, 심지어 '언론 탄압' 의혹까지 샀다. 무려 30여 차례나 사과를 하고, 간신히 국무총리 자리에 올랐다. 3연속 총리 낙마에 대한 여론의 부담감이 작용했다. 그 과정에서 국정 동력은 낭비됐고, 사회적 비용은 소모됐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는 말은, 다름 아닌 총리 본인의 입을 통해 뱉어졌다. 취임 직후 이 총리는 '부정 부패 척결'의 상징처럼 행동했다. 언론이 해석한 것이라 하겠지만, 이 총리 역시 그 상징의 무게를 거부한 적이 없다.
그런 이 총리가 '사정 대상'이 됐다. 그런데 심지어 '셀프 사정'이다.
성 전 회장은 "지난번(2013년 4월 부여·청양) 재·보궐선거 때 선거사무소 가서 이 양반한테 3000만 원을 현금으로 주고 왔다"고 말했다. '회계처리를 했느냐'는 질문에 "뭘 처리해요. 꿀꺽 먹었지"라고 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 총리에 대한 검찰 수사를 강력하게 촉구했다.
묘하다. 국무총리에 대한 수사 상황은 검찰총장을 거쳐 법무부장관에게 보고된다. 국무총리는 법무부장관을 지휘한다. 검찰이 법무부장관을 지휘하는 국무총리를 수사해야 하는 상황이다.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질 수 있을까. 설령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진다고 주장한들, 이를 믿을 사람이 있을까.
적반하장이다. 14일 대정부질문에서 그는 "(국무총리는) 내각을 통할하고 국민 전체를 바라봐야 할 책무가 있음을 느낀다"며 사퇴를 거부했다. 자신이 통할하는 내각에 의해 수사를 받는 아이러니, 모순은 그에게 별 것 아닌 모양이다. 국민이 이 총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지 역시 잘 모르는 것 같다.
모르면 가르쳐야 한다. 임명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결자해지 해야 한다. 박 대통령 본인이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곤경에 처했다. 지지율은 곤두박질하고 있다. (☞관련기사 : '성완종 리스트' 파문…박근혜-새누리 지지율 동반 하락)
이 총리가 스스로 사퇴하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누를 끼치지 않는 길이다. 이 총리가 사퇴하지 않는다면 박 대통령이 결단할 수밖에 없다. '혼외자' 의혹으로 검찰총장을 사퇴시킨 박근혜 정부가 요구하고 있는 '도덕성'에 비춰봐도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앞둔 현직 총리는 결격 사유가 아닌가. 현직 국무총리가 경호원을 대동하고, 서초동 검찰청 문턱을 넘는 것을 기어이 생중계로 지켜봐야 할까.
참고로 새누리당의 전신, 한나라당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2006년 '3.1절 골프 파동' 때 총리직 사퇴는 물론, 의원직 사퇴까지 요구했었다. 당시 한나라당의 이계진 대변인 명의의 논평이다.
"이 총리는 노 대통령 부재 중에 자신의 신변을 모두 정리하고 노 대통령이 귀국하는 즉시 총리직은 물론 의원직을 포함한 모든 공직에서 즉각 사퇴해야 한다…이 총리는 골프를 같이 친 기업인들의 신상내역과 과거의 골프 전력 등에 대해서도 사실 여부를 모두 밝혀야 한다…이번 골프 파문에 대해 여권이 정치적 공세라고 비난하는데 이는 도덕적 불감증에서 비롯된 '적반하장' 격으로, 부도덕한 총리 감싸기에 지나지 않는다."
3.1절 골프보다, 금품 수수 혐의로 피의자 신분이 돼 검찰 수사를 받는 국무총리가 더 결격 사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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