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를 놓고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국회 정치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이완구 국무총리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이 총리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전 새누리당 국회의원) 간의 관계에 대한 추궁도 이어졌다.
새정치연합 홍영표 의원은 13일 오후 대정부 질문에서 "성 전 회장이 조직한 '충청포럼'이 이 총리를 지지하는 불법 현수막을 충청 지역에 수천 장 내걸었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이 내용을 알고 있었나? 성 전 회장이 이 총리의 총리 인준을 위해 노력한 것을 몰랐나?"라고 물었다.
문제의 현수막은 "충청 총리 낙마되면 다음 총·대선 두고보자"라는 내용으로, 이 총리가 언론 외압 등으로 인해 인사 청문회 과정에서 궁지에 몰리자 충청 지역 곳곳에 나붙었었던 것이다. 홍 의원은 "현수막은 1장당 7만 원이고, 5000장 정도 걸린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총리는 이에 대해 "전혀 몰랐다"며 "제가 충청포럼에 전화해 부탁했다고 (야당 등이 주장)하는데, 충청포럼이 무슨 실체가 있는 게 아닌 것으로 안다. 저는 충청포럼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누가 관여하는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이 총리는 "저는 제 인준을 놓고 누구와 통화한 게 없다"며 "수천 개 플래카드는 자발적인 것으로 알고 있고, 저와는 관계 없다"고 했다.
이 총리는 이어 "필요하면 휴대폰을 제출하겠다"며 "충청포럼이나 성 전 회장과 통화했나 안 했나…(보시라)"고 자신은 무관함을 강조했다. 이 총리는 박완주 의원 등 다른 야당 의원들이 같은 추궁을 계속하자 "(충청포럼이 현수막을 제작해 건 것이 맞는지) 수사를 해 봐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홍 의원은 이와는 별개로 "제가 받은 제보에 따르면, 성 전 회장이 죽기 전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집 근처를 2시간가량 배회했다고 한다"며 "무엇을 (김 전 실장에게) 말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리스트에 언급된 이들 중) 누구도 성 전 의원을 '잘 모른다'고 하고 있다"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박완주 의원도 "망자가 자살 직전에 김 전 실장을 찾아갔다면 왜 찾아갔는지 검찰 수사로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총리는 자신이 십수 차례 전화를 걸었던 성 전 의원의 측근 2명이 '총리의 전화가 협박성으로 느껴졌다'고 주장한 데 대해 "과한 말씀이다. 통화 내용까지 다 공개하는 마당에 무슨 협박이 있을 수 없다"고 반박하며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라. (질의하신) 의원은 자신 관련 내용이 보도됐는데 말한 분과 친분이 있으면 전화를 안 했겠느냐"고 주장했다. 전화한 게 당연하다는 투다. (☞관련 기사 : '성완종 측 15번 전화' 이완구 "자연스러운 일")
이 총리는 자신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이유를 잘 모르겠다며 "총리 담화와 인과관계가 있는 게 아니겠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부정부패와의 전면전'을 선언한 자신의 3월 담화문에 대해 성 전 의원이 서운함을 느낀 것 같다는 주장이다. 그는 성 전 회장이 반기문 총장의 대선 출마에 적극 관여한 것이 같은 충청 출신 '잠룡'으로 거론되는 자신에게 못마땅한 일 아니었냐는 박완주 의원의 질문에 대해 "그런 루머가 있는 것을 들었지만, 저는 대권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검찰 출신 與 의원들도 "검찰 별건 수사 문제", "특검해야"…황교안 '진땀'
이날 대정부 질문에서는 새누리당 소속인 검찰 출신 의원들이 황교안 법무장관에게 검찰의 별건 수사 관행에 대해 따지는 이례적인 일도 벌어졌다. 검사 출신인 박민식 의원도 "별건 수사는 그동안 검찰에서 실제로 이뤄진 잘못된 수사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역시 검사 출신인 권성동 의원도 "검찰 수사를 받은 기업인들은 정말로 황당해 한다"며 "처음 수사 대상이 되었던 부분에 혐의가 없으면 수사를 끝내야 하는데, 아무런 단서 없이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에게 제공한 뇌물을 자진 납세하지 않으면 분식회계·탈세·횡령으로 피의자를 장기간 구금시킬 뿐만 아니라 회사를 공중분해시키겠다'고 협박한다"고 주장했다.
황 장관은 이에 대해 "분식회계는 기업 비리의 뿌리가 되는 것"이라며 "분식회계가 발견되면 당연히 그것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 조사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 장관은 "(성 전 회장 관련 수사는) 별건 수사가 아니다"라며 "특정 기업에 정치적 목적으로 수사하는 것이 전혀 아니고 범죄가 발생했기 때문에 수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 의원 등이 성 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를 비판한 것은, 친이계 출신인 이들이 '자원 외교' 수사 자체에 대해 가지는 불편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권 의원은 이날 질의에서 "성 전 회장의 죽음은 국회, 정부, 검찰, 언론의 합작품"이라며 "총리는 취임하자마자 '부패와의 전쟁' 성명을 발표하면서 해외 자원 개발 관련 비리를 척결 대상으로 천명했고, 검찰은 총리 담화 발표에 따라 마치 군사작전 하듯 동시다발적으로 해외 자원 개발 관련 업체에 대한 압수 수색 등 수사에 착수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박 의원도 "성 전 회장의 생전 수사에 대해 기획 수사다, 사정 수사다, 또 별건 수사다 하는 지적이 있지 않았느냐"며 권 의원과 비슷한 시각을 보였다. 박 의원은 "검찰에서 특별수사팀을 꾸렸지만, 한편에서는 아예 특검을 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차라리 바로 처음부터 특검을 하는 게 검찰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나"라고 묻기도 했다. 검찰 출신 여당 의원이 선제적으로 특검 도입을 촉구하고 나선 것.
황 장관은 이에 대해 "검찰 수사가 어렵다는 판단을 서야 제가 특검을 요청할 텐데, 아직 그렇게 판단하지 않는다"고 거부했다. 황 장관은 '성완종 리스트'로 불리는 메모지의 증거 능력과 관련해 "그 자체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고, 특신상황(特信狀態, 특별히 신뢰할 수 있는 상태)에 해당하는 경우 증거 능력이 인정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증거로 인정되지 않을 것"이라며 "종합적으로 수사를 통해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 장관은 권 의원이 "성 전 회장이 노무현 정부에서 두 번이나 특별사면을 받았다. 한 정부에서 사면을 두 번 받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라며 "이 부분 역시 수사 대상인가?"라고 질문하자, "범죄의 단서가 되는지는 파악해 봐야 한다"며 "말씀하신 것만으로는 범죄일 수 없고, 이번에 수사를 하다 보면 그런 자료가 확보될 수 있는데 그 경우 판단해 보겠다"고 답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