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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져 떠난 애들인데, 비 맞으면…"

[현장] 세월호 시행령 폐기 촉구 '영정 도보 행진'

딸의 영정 사진을 꼭 껴안은 엄마는 몇 번이나 사진 속 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혹여 빗물에 젖을까, 비닐을 사진 위에 씌우고도 두 팔로 단단히 감쌌다. "물에 빠져 떠난 애들인데, 비 맞게 하면 안 되잖아요." 사진을 품에 안은 엄마의 삭발한 머리 위로,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정부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촉구하는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들의 도보 행진이 이틀째를 맞은 5일, 잔뜩 흐린 하늘은 간간이 비를 뿌렸다. 소복을 입고 행진을 이어가던 부모들이 노란색 우의를 꺼내입었다. 가슴엔 아이의 사진과 함께, 아이가 생전에 쓰던 교복 명찰을 매달았다.

전날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아이들의 영정을 내린 유가족 250여 명은 이날 오전 광명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이틀째 일정을 시작했다. 유가족들이 밤을 보낸 복지관 강당엔 아이들의 사진이 부모들의 침상을 향해 여섯 줄로 가지런히 놓였다. 2학년 3반 고(故) 유예은 학생의 아버지 유경근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은 우리 애기들과 함께 자는 날"이라고 썼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우리는 결국 아빠 엄마의 삭발식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잔인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형제를 잃은 우리는 부모님마저 잃을까 걱정하게 됐습니다."

이날 일정은 세월호 참사로 형제·자매를 잃은 이들의 기자 회견으로 시작됐다. 중학생부터 20대 초반 성인까지, 총 73명의 희생자 형제·자매가 '시행령 폐기 촉구 성명'에 동참했다. 이들은 기자 회견에서 "예고없이 찾아온 이별에 마음 가눌 새도 없이 1년이 흘러갔지만, 우리는 우리의 형제 자매가 웃는 얼굴로 수학여행에 떠났다가 왜 죽음으로 돌아왔는지 알지 못한다"며 "그날 이후 17년을 함께 한 나의 단짝 친구는 1년 동안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의 이런 아픔을 비웃기라고 하듯 3월 28일 시행령이 입법예고 됐다"며 "이제는 더 이상 숨죽이지 않을 것이다. 엄마 아빠의 동료가 되어 진실에 다가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자 회견이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들이 전면에 나선 첫 발걸음인 셈이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기자 회견이 끝난 뒤 2일차 도보 행진을 시작한 유족들은 광명시청-가리봉오거리-신도림역-영등포역을 거쳐 오후 1시께 여의도에 도착했다. 서울로 진입하면서 유족들의 행렬을 뒤따르는 시민들의 숫자도 크게 늘었다.

1박 2일 동안 유가족들과 도보 행진을 함께 한 김포시민 안승혜 씨는 "걸으면서 다리가 많이 아팠고, 비도 와서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비라도 맞을까봐 영정을 꼭 품은 부모님들을 보면서 참을 수 없을 만큼 눈물이 났다"고 했다.

안 씨는 "여섯 살 아들이 <파워레인저>라는 만화를 종아하는데, 아직 바다 속에 형, 누나들이 갇혀 있다고 얘기하면 파워레인저 가면을 쓰고 가서 구해주고 싶다고 한다"며 "여섯 살짜리 아이도 구해 주러 간다고 하는데, 이 나라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노하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거리에 나섰다"고 말했다.

'영정 행진단'이 지나가는 거리 곳곳에서, 시민들은 '세월호를 인양하라', '잊지 않을게', '가족 분들 힘내세요'라고 쓴 손팻말을 펼쳐들고 유족들을 응원했고, 그 때마다 유족들은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도보 행진 출발 7시간 만인 오후 5시께, 어느덧 1500여 명으로 늘어난 행진단이 최종 목적지인 서울 광화문광장에 도착했다. 이미 광장에 모인 시민 3000여 명이 박수를 치며 이들을 맞았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광장에 도착하자, 아이들의 영정 사진을 품에 안은 엄마들이 눈물을 터뜨렸다. 더 이상 비가 내리지도 않는데, 행렬 가장 앞줄에 자리한 2학 3반 고(故) 김시연 학생의 어머니가 자꾸만 사진을 쓸어내렸다. 이젠 빗물 대신 엄마의 눈물이 딸의 사진 위에 뚝뚝 떨어졌다. 삭발한 엄마들의 일그러진 표정 아래, 영정 속 아이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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