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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전에서 진다고 세상이 끝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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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전에서 진다고 세상이 끝나지는 않는다

[베이스볼 Lab.] 개막전 승패는 한 해 살림과 별개다

환희와 절망이 교차하는 계절입니다. 온 사방에서 기쁨에 겨워 소리치고, 좌절감에 고개를 떨구고, 기대감에 한껏 설레고, 실망과 분노에 가득 차거나, 그도 아니면 애써 평정을 유지하려는 모습들로 가득합니다. KBO리그 개막 2연전이 끝난 이맘때면 항상 있는 일입니다. 각 팀마다 개막시리즈에서 거둔 성과에 따라 이렇게나 반응이 달라집니다. 2연승 거둔 팀은 행복합니다. 반타작이라도 했다면 그나마 웃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2연패를 당했다면, 세상의 모든 불행을 짊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자꾸 화가 치밀고, 소화도 잘 되지 않고, 야구 같은 건 세상에서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울컥울컥 올라옵니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과연 개막전 결과가 정규시즌 성적에 영향을 줄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개막전을 이긴 팀의 팬들은 오늘부터 두 다리를 쭉 뻗고 잠들어도 될 겁니다. 2연전을 모두 이겼다면 지금 유광잠바를 사놓아야 할지도 모르죠. 반면 개막전을 패한 팀들은 일찌감치 희망 따위는 버리고, 야구를 볼 시간에 주짓수를 배운다거나 코딩 공부를 하는 게 현명한 일이겠죠. 만약 개막전과 시즌이 전혀 상관이 없다면, 개막전을 망친 팀의 팬들도 계속해서 야구를 붙들어야 할 이유가 생기는 셈이고요.

지금부터 알아보도록 합시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베이스볼 Lab.>은 지난 1982년부터 2014년까지 KBO리그 모든 시즌 모든 팀의 개막전과 개막 2연전 승패를 조사했습니다. 간혹 사정이 있어 다른 팀들과 함께 개막전을 치르지 못한 팀의 경우엔 시즌 첫 경기와 두 번째 경기를 조사 대상에 포함했습니다.


우선 개막전 승리한 팀과 패배한 팀의 그 해 시즌 결과를 살펴봤습니다. 위의 표에서 나타난 대로 개막전을 승리한 123개 팀 중 73개팀이 그 해 시즌 승률 5할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5할 승률 이상을 기록한 비율은 59%로 나타났습니다. 또 개막전 승리팀 중 20개 팀은 시즌 1위를, 11개 팀은 시즌 최하위를(승률 기준) 기록했습니다. 반면 개막전을 패한 122팀 중에서는 53개 팀이 승률 5할 이상을 기록했고 비율은 43%였습니다. 이들 중 12팀은 시즌 승률 1위를, 22개 팀은 시즌 승률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개막 2연전도 함께 조사해 봤는데, 이는 개막전을 모든 구단이 동시에 거행하기 시작한 1984년부터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개막시리즈가 3연전으로 열린 시즌의 경우에도 처음 2경기만을 조사 대상으로 포함시켰습니다. 그 결과 2연전 싹쓸이한 팀은 62차례 나왔는데 이 중 74%에 해당하는 46팀이 5할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1위팀은 9개팀, 꼴찌는 3개팀이 나왔습니다. 2연패를 당한 경우 63팀 중 22차례 5할 이상 팀이 나왔고 비율은 35%였습니다. 이 중 1위는 5개팀, 꼴찌는 14개 팀이었습니다. 개막 2연전 1승 1패의 경우엔 48%의 팀이 5할 승률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위의 자료를 개막전 승패 ‘때문에’ 팀 승률이 결정된 것처럼 인과관계를 혼동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개막전을 이긴 팀 중에 59%가 그 해 승률이 5할을 넘었다는 건 사실이지만, 이게 개막전 승리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할 만한 증거는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올바른 해석은 ‘5할 승률 이상 팀은 개막전도 이길 확률이 높았고, 5할 승률 이하 팀은 개막전도 질 확률이 높았다’는 정도일 겁니다. 이건 개막전 승리와 승률의 상관관계를 살펴봐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역대 구단별 개막전 승리와 그해 승률의 상관관계는 0.19, 개막 2연전 결과와 승률의 상관관계는 0.31에 불과했습니다. 단순히 개막전 승리와 승률 5할 달성 여부의 상관관계로 놓고 보면 결과는 0.15, 0.28로 더 낮은 수치를 보였습니다.

어떤 팀이 개막전 1경기를 이길 순 있습니다. 어떤 팀이 시즌 승률 5할 이상을 기록할 수도 있죠. 하지만 개막전 1경기를 이겼기 때문에 시즌 승률 5할을 넘길 확률은, 누군가 춥냐고 물어봤는데 욕설을 듣거나 반말을 했는데 상대가 기뻐할 확률만큼이나 희박합니다. 그만큼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좀 더 분명히 하기 위해 다른 조사 방식을 사용해 봤습니다.


팀별 시즌 승률을 6할 이상, 5할 이상, 5할 이하, 4할 이하로 나눈 뒤 각 집단의 개막전과 개막 2연전 결과를 살펴봤습니다. 시즌 승률 6할 이상을 올린 33개 강팀들의 경우, 그 해 개막전에서 승리한 경우가 총 23팀으로 69.7%의 비율로 승리했습니다. 또 개막 2연승을 거둔 사례도 13차례로(1982,3년 제외) 31차례 중 41.9%의 적지 않은 비율로 개막전을 싹쓸이했습니다. 반면 개막전 패배는 8차례로 24.2%, 개막 2연패는 2차례로 0.65%에 불과했습니다.

한편 시즌 승률 5할 이상팀(6할대 포함)의 경우 개막전 승리한 비율은 56.1%, 2연승 비율은 36.5%를 기록했고 개막전 패전은 40.2%, 개막 2연패는 17.5%를 기록했습니다. 승률 5할 미만 팀의 경우엔 개막전 승리한 비율이 41.3%로 내려갔고, 승률 4할 미만팀의 경우 개막전을 이긴 비율은 33팀 중 11번으로 33.3%에 그쳤습니다. 승률이 내려갈수록 개막전 패배와 개막 2연패할 확률은 반비례해서 높아졌구요.

이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입니다. 승률 6할 이상을 기록한 야구팀은 리그 최고 실력을 자랑하는 지구방위대 수준의 팀입니다. 일년 128경기에서 승률이 6할 이상이니, 단 1경기를 치르더라도 이길 확률이 질 확률보다 높은 게 당연합니다. 실제로 승률 6할 이상 팀들의 평균승률을 갖고, 승률 5할 팀을 상대한다고 가정했을 때 1경기에서 기대승률은 0.629가 나왔습니다. 실제 개막승리 비율(69.7%)가 훨씬 높아 보이긴 하지만, 이는 샘플이 33팀으로 매우 적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일 뿐입니다. 만약 개막전에서 이긴 6할+팀이 23팀이 아닌 20팀이었다면, 개막전 승리 비율은 60.6%로 크게 떨어지게 됩니다. 개막전에 대부분 에이스를 내보낸다는 점, KBO리그 개막전이 오랜기간 전년도 1-5위, 2-6위팀이 치르는 식으로 편성된 점도 강팀들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겁니다.

그외에도 각 승률 집단 별 팀들의 개막전 승리%는, 승률에 따른 1경기 기대승률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5할 승률 이상 팀의 경우 5할+팀들의 평균승률로 기대승률을 구해보면 54.9%로 개막승%인 56.1%와 거의 동일했습니다. 5할 미만 팀들도 기대승률 41.8%로 개막승% 41.3%와 비슷했고, 4할 미만 팀들의 기대승률은 35%로 개막승% 33.3%와 대동소이했습니다. 더 강한 팀일수록 개막전 1경기에서도 이길 확률이 높았고, 약한 팀일수록 1경기도 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단순한 진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막전을 이겼기 때문에 강한 팀이 된 게 아니라, 강한 팀이기 때문에 개막전을 이길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이는 개막시리즈 2연승과 2연패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다른 궁금증이 생깁니다. 응원팀이 이번 개막 시리즈에서 박살이 났는데, 그렇다면 올해 전력이 형편없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고 봐야 할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KBO리그에 존재했던 모든 구단별 개막전/개막시리즈 승률과 통산승률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역대 KBO리그에서 개막전에 가장 자주 이겼던 팀은 통산 승률 1위 팀인 삼성이 아닙니다. 통산 승률이 아슬아슬하게 5할을 넘는 두산 베어스가 OB시절 포함해서 22번이나 개막전을 가져갔습니다. 반면 통산 승률 3위팀인 KIA(해태 포함)는 개막전에서는 12승 19패로 0.387의 민망한 승률을 기록했습니다. 개막전만 놓고 보면 통산 승률 하위팀인 한화나 롯데, 넥센이 타이거즈보다 더 많이 이겼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해태와 KIA가 시즌을 망치거나 약팀으로 전락했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건 10번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역사가 잘 말해줍니다.

KIA의 경우 개막전은 12승 19패로 부진했지만, 2차전에서는 15승 16패로 1차전 패배를 만회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통산 승률 1위팀인 삼성의 경우 개막 1차전 승리는 두산보다 적었지만, 2차전에서는 20승 10패로 압도적인 전적을 기록했습니다. 반면 통산 승률 하위인 한화는 개막전은 5할 승률이었지만, 2차전에서는 12승 18패로 첫 날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롯데 역시 개막전은 5할에 가까운 승률을 올렸지만(0.485), 2차전에서 9승 20패로 전날 승리를 까먹었습니다. 전력이 강한 팀일수록 연패를 당할 확률이 적고, 약한 팀은 연승을 좀처럼 올리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는 역대 개막시리즈 2연패팀 중 시즌 승률 기준 상/하위 팀들의 명단을 살펴보면 좀 더 분명해집니다. 아래 표를 들여다 봅시다.


개막 2경기를 모두 져놓고도 시즌 1위를 차지한 팀들의 목록이 눈에 띕니다. 2009년 우승팀 KIA는 물론 2012, 2013년 챔피언인 삼성도 개막전 패배를 딛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90년 우승한 LG와 1996년 해태, 2009년 KIA는 개막 당시에는 크게 주목 받지 못하다가 시즌이 진행되면서 강호의 면모를 드러낸 팀들입니다. 반면 개막 2연패팀 중 승률 하위권을 기록한 팀들의 명단을 보면 ‘누가 봐도’ 약팀으로 분류할 법한 이름들이 가득합니다. 쌍방울, 태평양, 청보의 운명은 개막전을 이기거나 진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영화 [머니볼]에서 주인공 빌리 빈은 자신이 운영하는 팀 오클랜드의 경기를 보지 않습니다. 특정한 경기나 플레이만 보면 편견을 갖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전설의 팀 삼미 슈퍼스타즈도 1982년 개막전에서는 삼성을 상대로 승리했습니다. 그 경기 승리투수는 역대 KBO리그 투수 중 가장 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가 적은 선수인 인호봉이었습니다. 서건창도 5타수 무안타로 부진한 날이 있지만, 야구를 처음 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도 서건창이 형편없는 타자라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유창식이 무볼넷 무실점 경기를 이따금 펼치긴 하지만,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제구력 좋은 투수’라고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1경기만 떼어놓고 보면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습니다. 2경기만 놓고 봐도 온갖 상상못할 일들이 벌어질 수 있죠. 하지만 야구는 1, 2경기가 아닌 100경기 이상 치르는 장기레이스입니다. 단 1, 2경기로 팀의 실력이나 선수의 기량을 판단하는 건 야구의 신이 존재한대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게다가 팀들 중에는 개막전에 베스트 전력을 가동하지 못하는 팀도 있고, 홈 개막전을 위해 에이스를 아껴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약 개막전이 정말로 시즌 결과에 중요하게 작용한다면, 당장 개막전에 에이스를 총동원하고 불펜 에이스를 이틀 동안 5이닝씩 던지게 해서라도 반드시 잡아야 할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팀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냥 1경기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응원팀의 개막시리즈 결과를 놓고 지나치게 앞서갈 것도, 너무 실망할 것도 없습니다. 상위권 전력을 갖춘 강팀이라면, 개막 2연전을 전부 졌어도 언제 그랬냐는듯 살아나서 치고 올라올 겁니다. 반대로 하위권으로 분류되는 팀이라면 개막전을 모두 이겼어도 때가 되면 중력보다 무거운 DTD 법칙의 지배를 받을 테구요. 결국에는 모든 팀들이 제 실력에 따라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결코 개막전에서 이기거나 졌기 때문은 아닙니다.

기뻐하고 슬퍼할 시간은 아직도 많습니다. 이제 시즌 2경기가 지났습니다. 마라톤으로 치면 겨우 0.58km/h를 달려왔을 뿐입니다. 아직 이렇다 저렇다 결과를 이야기하기는 이릅니다. 앞으로 남은 142경기 마라톤 레이스를 처음 같은 설렘과 기대감을 안고 지켜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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