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범위 조정에 따른 수당 변화가 임금 상승일까? 질문이 어렵다면 이렇게 바꾸어 질문해 보자. 원래 받았어야 하는 수당을 못 받다가, 이제야 받게 되었다면 이것은 임금 상승일까?
체불임금을 돌려받았다고 임금 상승이라 부르지 않듯, 대법원의 통상임금 범위 확정으로 조정된 수당을 두고 '임금 상승'이라 자찬하기엔 민망한 게 사실이다.
이는 "우리에게 이만큼의 체불임금이 있었다"고 자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이 9일 내놓은 해명은 그래서 '민망'하다. 삼성의 해명 아닌 해명을 그대로 옮겨 쓴 언론도 '민망'하긴 마찬가지다.
삼성의 '말장난'…2014년도 수당 상승분은 왜 빼먹나
"삼성전자의 실질임금은 사실 상승했다."
삼성이 이같이 주장하며 9일 내놓은 임금 동결에 대한 해명 내용을 하나씩 따져 보자.
삼성은 우선 "이번에 동결한 것은 기본급으로, 호봉승급과 성과 인상을 모두 포함하면 올해 삼성전자 전 사원 임금은 평균 2.3%가 상승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법원 판결로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기로 한 데 따른 수당 인상 효과는 평균 1.9%로, 이를 포함하면 실질적 임금 상승은 4.2% 수준"이라고도 했다.
그러자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어불성설'이라며 보도자료를 내고 반박에 나섰다. 앞서 지적했듯, 통상임금 조정에 따라 '인상된 것처럼 보이는' 수당은 체불임금 개념에 가까우므로 임금 인상분으로 계상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은 3년 치 임금에 소급 적용된다. 삼성전자 직원들이 지금이라도 통상임금 관련 소송을 제기한다면. 2012년부터 2014년 못 받은 수당도 돌려받을 수 있다.
이렇게 재계산한 2014년 수당과 2015년 수당을 비교해도 수당 인상률이 플러스(양수)가 될까? 삼성은 9일 해명에서 이런 설명은 아예 하지 않았다. 보기에만 그럴싸하게 수당 인상 '효과'란 표현을 쓰며 '1.9%'라는 숫자를 던졌을 뿐이다.
호봉 승급 따른 자연 상승도 '임금 상승'이라 부르던가
호봉 승급과 성과급 인상 해명도 어불성설이긴 마찬가지다.
삼성은 호봉 승급과 성과급 인상을 포함하면 평균 2.3% 임금이 상승한다고 '퉁' 쳤다. 그런데 호봉 승급을 '임금 상승'이라고 부르는 일은 잘 없다. 임금 상승이라고 할 때는 일반적으로 특정 호봉에 매겨진 임금 자체가 늘었을 때를 말한다.
성과급에 대해선 심 의원은 이렇게 지적했다. "성과급 지급은 매출액·영업 이익과 연동된 이익 분배의 일환이므로 임금 인상분에 포함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당연한 얘기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는 매출액과 영업 이익에 따라 '향후' 결정될 성과급을 미리 예견해 임금 인상분에 반영해 발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만약 2015년도 경제위기가 와서 삼성이 연말 성과급을 얼마 주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건가. 그때 가서 9일 발표한 '2.3%'란 숫자를 정정 발표할 건가.
경제학에서 '실질 임금'을 계산할 때 당연히 포함되는 '물가상승률' 또한 삼성의 해명에서 빠져있다. 심 의원은 2014년 소비자 물가상승률 1.3%을 2015년 상승률로 반영하면 "삼성전자의 실질임금은 물가상승률만큼 마이너스"라고 지적했다.
임금 상승 아니라 임금 체계 '개악' 수순에 가까워
이 같은 삼성의 해명 아닌 해명을 전하며 일부 언론은 "가계 소득을 늘려 내수를 활성화하겠다는 정부 정책에 손을 들어준 것과 마찬가지"라는 재계의 반응을 함께 전하기도 했다.
이 역시 여러모로 잘못된 해석을 그대로 전한 것에 불과하다. 삼성이 발맞춘 정부 정책은 '임금 인상'이 아니라 '성과급 중심으로의 임금 체계 개편'이란 해석이 더 걸맞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호봉제와 연봉제를 버리고 성과급 중심으로 임금 체계를 개편하라고 했고, 삼성은 올해 다양한 임금 항목 중 '성과' 부분만 상승시켰다. 경영 결과에 따라 받을 수도 있고 못 받을 수 있는 항목 말이다. (☞ 관련 기사 : 합리적 임금체계 매뉴얼? "기업 위한 임금 '개악' 참고서", "노동부, 월급 깎는 방법 사장들에게 알려주나")
사실 삼성전자의 실질임금은 작년에도 줄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기본급을 1.9% 인상했지만 심 의원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분석한 자료를 보면 실질임금은 하락했다.
자료를 보면, 삼성전자의 2013년 연간 급여 총액은 9조3293억 원이었는데 이것이 2014년 9조3031억 원으로 감소한다. 반면 인원은 2013년 9만5797명에서 2014년 9만9556명으로 증가했다. 1인당 평균 급여는 전년 대비 4%가량 감소한 셈이다.
심 의원은 "우리 경제는 노동소득분배율이 지속해서 하락하는 '임금 없는 성장'을 해왔고, 정의당은 내수 경제의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주도 경제를 주장해 왔다"면서 "재계와 대기업은 최근 정부와 정치권의 '최저임금과 기업의 임금 인상 요구'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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