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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리 '맑스돌' 만든 한국의 부끄러운 민낯, 청소년 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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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리 '맑스돌' 만든 한국의 부끄러운 민낯, 청소년 착취

[프레시안 books] 이수정 외 <십 대 밑바닥 노동>

요즘 한창 인기가 있는 아이돌 가수가 '법으로 정한 대한민국 최저 시급'이 5580원이라고 알려준다. 이마저도 안 주면 '히잉~'이란 애교에 이어 "알바가 갑이다"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아르바이트 구인·구직업체 '알바몬' 광고의 한 대목이다.

공익광고도 잘 다루지 않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직업 소개업체의 이 광고 자체도 놀랍다는 평이 많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광고 이후 벌어진 일들이었다.

'사장님'들이 반발했다. 알바몬 탈퇴 움직임이 이어졌고, 알바몬에 대항해 '사장몬'이라는 인터넷 카페가 결성됐다. 최근 잇따른 갑을 논쟁의 기류를 탄 "알바가 갑"이라는 표현이 불편해서였을까. 사장몬은 해당 광고에 대한 공개 사과와 광고 중단을 요구했다. 이른바 '알바 권리 찾기'를 담은 이 광고가 "수많은 자영업 소상공인 업주들이 악덕 고용주로 오해받을 수 있는 내용을 포함시켰다"는 이유였다.

논란 끝에 알바몬은 '야간 수당' 편 방영 중단을 발표했고, '사장몬' 역시 비난 여론에 밀려 폐쇄됐다. 광고를 촬영한 걸스데이 혜리에겐 '맑스돌(마르크스+아이돌)'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이루자는 것도 아니고, 그저 법정 최저 시급과 수당을 알려주며 애교 한 번 부렸을 뿐인데, 졸지에 노동 착취 문제의 최전선에 선 맑스돌이 되었다. 말 그대로 '웃픈(웃기면서 슬픈)' 현실이다.

하지만 이 광고의 잠재적 고객인 수많은 '알바'들에게, 현실은 혜리의 애교처럼 유쾌하지도, 그의 충고처럼 "알바라고 무시하면 앞치마 풀어 똘똘 뭉쳐 힘껏 던지고 때려치울" 수 있을 정도로 속 시원하지도 간단치도 않다. 특히 청소년의 노동일 경우 더 그렇다.

<십 대 밑바닥 노동>(교육공동체 벗, 2015년 1월 펴냄)은 불안정 노동시장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런 청소년 노동 실태를 다룬 책이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기획한 이 책은 청소년 노동자 여러 명과 한 인터뷰를 통해 '가장 열악하고 수상한' 청소년들의 일터와 노동 현실을 고발하는 육성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름 대신 '야, 너'로 불리는 노동,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이 되는 노동, 그 적은 돈마저 위약금이나 벌금 등 각종 황당한 명목으로 떼여도 저항하기 힘든 노동. 생애 첫 노동이면서, 곧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고 스스로 부르는 노동. 이 책에 등장하는 10대 청소년들이 자신의 노동을 설명하는 말들이다.

ⓒ알바몬

생애 첫 번째 노동, '지옥문'을 여는 노동

"호텔 연회장에서 일했던 청소년은 손님의 눈에 띄지 않는 병풍 뒤 바닥에 앉아 쉬면서 왠지 의자에 앉을 자격도 없는 바닥 인생이 된 기분이었다고 한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했던 청소년은 주방에서 빵을 조금 태웠다는 이유로 탄 빵을 입에 쑤셔 넣는 '가르침'을 받고서는 일을 그만뒀다고 한다. 배달 일을 했던 청소년은 태풍 속을 뚫고 배달을 다녀왔는데도 '빨리빨리' 재촉만 하는 사업주를 보고서는 '죽으라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일 자체의 고단함보다 자기를 대하는 모욕적 태도가 더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12쪽)

인터뷰에 참여한 한 청소년의 표현에 따르면, '밑바닥을 맴도는' 그들에게 노동은 "지옥의 문을 여는 것"과 같다고 했다. 단순히 고된 일, 일터에서 벌어지는 모욕적인 일들이 유독 청소년에게 부여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 사장이 대체 누구인지" 고민해야 하는 불안정한 간접 고용, 내일 급여를 걱정해야 하는 하루살이 일일 노동, 그 자신도 '사업자'가 되었으나 산재도, 노동법의 적용도 기대할 수 없는 노동이 청소년이 그나마 구할 수 있는 일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한때 청소년 노동의 대표 얼굴이었던" 패스트푸드점과 편의점, 주유소, 음식점 등에서 더 이상 청소년들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이제 그런 일자리는 대부분 생활고에 몰린 20대 청년이나 장년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청소년 일자리는 더 적은 돈을 벌기 위해 더 고되게,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불안정한 일자리들로 대체됐다. '근로 빈곤 시대'의 악순환이다.

일례로 몇 년 전 오토바이 배달 사고로 청소년 노동자들이 잇따라 목숨을 잃자, 당시 외식업계는 이 위험한 사고들의 배경이 됐던 '30분 배달제'를 폐기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자리는 더 위험한 질주를 감수해야 하는 '배달 대행 서비스'가 차지했다.

음식점들은 더 이상 배달 노동자를 따로 채용하지 않고 배달 대행업체에 이 업무를 외주화하고, 배달 대행업체들은 자영업자와 유사한 형태로 청소년 노동자들에게 배달을 맡긴다. 배달업체 입장에선 가능한 많은 음식점과 계약을 맺기를 원하고, 대행 음식점이 많아질수록 청소년 노동자가 수행해야 할 배달 업무는 늘어난다.

'건당 배달 수수료'만 받고 자영업자처럼 일해야만 하는 청소년 노동자들에게, 배달이 늦어져 반품되는 음식값, 주유비, 사고가 났을 경우 물어야 하는 수리비와 치료비는 모두 본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결과적으로 배달 노동자 입장에선 노동 강도와 사고 위험이 크게 높아진 반면, 이로 인한 대가는 비용을 크게 줄인 음식점과 대행업체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그렇게 누군가의 목숨이 걸린 '따뜻하고 위험한 음식'이 집집마다 배달된다. 수많은 배달 노동자의 죽음이 있고 나서야 '30분 배달제'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를 냈던 사회는, 또 이렇듯 지독할 정도로 영리하게 다른 방식의 돌파구를 찾는다.


학교에서 노동법 가르치면, 그걸로 끝?

'알바몬' 광고는 알바들의 적극적인 권리 찾기를 주장하지만, 책의 청소년 노동자들은 "노동법을 알아도 요구할 수 없다"고 말한다. 물론 학교에서 배워야 할 노동법을 알바몬 광고를 통해 배우는 현실은 문제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법을 잘 안다고 해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체념'이 청소년 노동자들의 가장 손쉬운 생존 전략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책이 주목하고 있는 지점은 바로 이 대목이다. 아무리 정부가 아르바이트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하고, 당사자가 지식을 갖고 있다 해도 왜 일터에서 당당하게 체불된 수당을,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구하지 못하는지.

저자들은 일자리의 환경 자체가 바뀌었다고 지적한다. 청소년 일자리는 근로기준법의 일부 조항이 아예 적용조차 되지 않는 영세 사업장에 몰려 있고, 최근엔 더 나아가 하루살이 노동이나 사용자가 누군지 분명치 않은 파견 노동,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 고용 등 불안정 노동에 쏠리고 있다고 말한다. "노동법을 안다고 해도 써먹을 수 없는 업종에서 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217쪽) 책은 오히려 개인적, 법적 해결에 맡겨뒀을 때 청소년 노동 문제 해결이 요원해진다고 지적한다. "법을 넘어서야 해결은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제 자본의 얼굴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책임을 물을 사람이 누구인지 특정하기 힘들다. 저항할 대상도 불분명하고 힘을 규합할 동료도 사라진 노동, 관계 맺기 자체가 삭제된 노동, 그리하여 저항의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노동. 이렇게 불안정 노동의 확산은 안 그래도 열악한 청소년 노동자의 지위를 더욱더 흔들고 있다." (17쪽)

책에 등장하는 탈학교 청소년 건진이의 말은 그런 면에서 읽는 이들에게 많은 숙제를 남긴다. 떼인 임금을 받으러 사장을 찾아갔을 당시의 기분을 "동네 깡패에게 통행료 뜯겼던 사람이, 동네 깡패가 이사 가서 한동안 안 뜯기다가 갑자기 길거리에서 딱 마주쳤을 때 그런 느낌"이라고 표현한 건진이는 "왜 노동이 숭고한가"를 되묻는다. 청소년 노동자들에게 법은 멀고, 가혹한 현실은 너무 가까이 있다.

"청소년들에게 노동이 숭고하다는 걸 교육해야 한다고 말하는 어른들도 있잖아요. 근데 저는 하루 12시간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단 한 번도 숭고함을 느낀 적이 없어요. '아, 내가 살기 위해서 하는 거야'라고만 생각했죠. 진짜로 잠 좀 잤으면 좋겠고, 참고 일해 봤자 받는 건 100만 원도 안 되는데 '당신의 노동은 숭고하다'라고 말하면 화날 것 같아요. (…) 노동이 숭고하지 않다면, 숭고하게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113쪽)

'노동하는 청소년'에 대한, 어떤 시선

ⓒ교육공동체 벗
왜 청소년 노동의 현실은 '이따위'일 수밖에 없는지, 그 생생한 체험기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면화하고 있었던 청소년 노동에 대한 '어떤 편견'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 거대한 편견과 오해가, "사회는 물론 교육운동과 노동운동 안에서도 의제로 진입하지 못한" 청소년 노동이 왜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는지에 대한 답이 될지도 모른다.

대체로, 청소년이 노동하는 것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이렇다. 사소하거나(그래봐야 용돈벌이 아냐?), 문제아의 일탈(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애들이 무슨 알바?)로 보는 시각이다. 하지만 매일 밤 12시간씩 편의점에서 밤을 지새우는 건진이의 노동을, '목숨 걸고' 오토바이 페달을 밟아야만 먹고살 수 있는 원석이의 노동을 성인의 그것보다 사소하다고 볼 수 있을까.

이들에게도 노동은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일 수 있으며, 누구에게나 그렇듯 청소년의 삶과 노동, 욕망도 복합적이다. 책은 "우리 사회가 누군가의 노동에 '찬반'을 묻는 경우는 청소년을 제외하고는 없다"고 지적한다. 청소년을 '지금, 여기'의 존재가 아닌 '미래'의 존재로만 취급하다 보니, 청소년들의 실제 학교 밖 삶과 노동은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책은 이와 같은 '비가시화'가 청소년 노동 문제를 덮거나 주변화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말한다. 또 청소년을 "'미래의 노동자'가 아닌 '지금, 여기, 바로 우리 곁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로 바라봐야만"(204쪽) 이들의 밑바닥 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누가 혜리를 '맑스돌'로 만드나

2012년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전체 청소년의 노동 경험률은 29퍼센트, 학교 밖 청소년의 경우 62퍼센트에 달한다. 적어도 우리 주변의 청소년 3명 중 1명은 이미 노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당신의 음식을 따뜻하게 배달하고 급하게 돌아서는, 업체의 '당일 배송' 정책에 따라 택배 상자를 문 앞에 던져놓고 휙 사라지는 그들 말이다. 어른들이 '숭고'하다고 표현했던 생애 첫 노동을 '지옥'이라고 말하면서도 일거리를 찾는 그들 말이다.

현재도 노동자이지만 사람들에겐 그저 미래의 노동자로만 인식되는 그들은, 그래서 업주가 '선심 쓰듯' 지급하는 임금을 마치 용돈처럼 받아야 하는 그들은 오늘도 기껏해야 혜리의 노동법 강의 정도만 들은 채 일터에 나갈 것이다. 과연 그들에게 노동은 여전히 '숭고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노동이 숭고하지 않다면 숭고하게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는 10대 노동자 건진이의 바람에 사회가 어떤 응답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의 '밑바닥 노동' 현실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사이, 누가 혜리를 '맑스돌'로 만들었나?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머릿속에 남게 되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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