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기초생활보장법이 개정되었다. 정부는 '세 모녀 법'이라 이름 불렀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개별급여 도입이라는 수사에도 불구하고 선정 기준과 보장 수준은 제자리 수준이거나 후퇴했고,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는 사각지대에 빠진 가난한 이들의 10% 정도밖에 포괄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기초생활수급자 선정 기준이자 보장 수준으로 강력하게 작동하던 최저생계비는 무력화되고, 근로능력평가와 근로강제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세 모녀 법'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여전히 '세 모녀'는 신청해도 지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바로 이 법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강행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월 15일 기초생활보장법이 개정에 따른 시행령 개정안과 시행규칙 개정안을 발표하고, 2월 24일까지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대개의 법이 그렇듯 기초생활보장법 역시 법보다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이보다는 사업 안내(지침)가 구체적인 선정 기준과 보장 수준을 제시하고 있다. 당장 법을 바꾸기 어렵다면 시행령, 시행규칙에서라도 필요한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
추정 소득에서 이름만 바꾼 확인 소득?
근로 능력이 있는 수급자는 '조건부 수급'을 받는데,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조건이다. 이에 참여하지 못할 시 조건 불이행으로 수급 자격을 제한받거나 '추정 소득'이 부과되기도 한다. 이 추정 소득은 기초생활보장법이나 시행령에서는 흔적조차 볼 수 없는 조치이나 현장에서는 지침을 근거로 강력하게 작동해 왔다.
실제로 추정 소득 부과에 대해 법원은 '법적 근거가 없다'며 반려하기도 했다. 가구원인 조건부 수급자 아들이 자활사업 참여 조건을 이행하지 않자, 아들에게 추정소득을 부과하고, 생계, 주거급여를 감액한 급여변경을 통지한 사건이 있었다. 이에 대해 지난해 서울행정법원은 "이 사건 안내서의 추정소득 부과에 관한 부분은 헌법 제37조 제2항의 법률 유보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아무런 법규적 효력을 갖지 못한다고 할 것이어서 이를 근거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추정소득 부과 처분을 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서울행정법원 2014. 2. 20. 선고 2013구합51800 판결).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이에 항의라도 하듯 시행령 제3조의3 제13호에 '확인 소득'이라는 이름으로 추정 소득에 대한 내용을 추가했다. 지침에서 시행령으로 그 위치를 상향시킨 것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강하게 제기했던 '추정 소득 부과 금지' 의견을 오히려 행정부 권한으로 강화했다는 점이 문제다. 당연히 해당 조항은 삭제해야 한다. 그래야 세 모녀도 수급자가 될 수 있다.
기초생활수급 노인에게 '줬다 뺏는' 기초연금, 계속 방치
시행령으로 조정이 가능한 또 한 가지의 중요한 항목이 있다. 바로 기초생활수급노인의 기초연금 수령에 관한 것이다. 기초생활보장법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급여를 제외한 소득이 있으면 해당 소득분을 제외하고 급여를 지급하도록 되어 있지만, 시행령은 제외하지 않는 소득을 명시하고 있다. 가구 특성에 따른 추가 지출 요인 등을 고려하여 소득평가액 산정 시 특정소득을 차감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장애인연금, 한 부모 가족 지원, 고엽제 후유증 수당 등은 제외해 추가 비용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초연금은 이에 해당하지 않아 정작 기초생활 수급노인은 기초연금만큼 기초생활수급비가 깎이는 상황을 겪고 있다.
기초연금은 47%에 육박하는 노인 빈곤율 해결과 노후 소득 보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최저생계비 계측조사 연구>에 따르면 노인가구의 추가비용은 건강한 노인의 경우 2만2280원, 건강하지 못한 노인의 경우 15만7287원인 것으로 나타난다. 즉 노인은 생애 주기에 따른 가구 특성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2014년 국정감사 정책자료를 통해 기초연금의 특성을 고려하여 기초수급노인에게 기초연금을 보장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이는 '중복 지급'이므로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역시 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에 '기초연금을 소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단 하나의 조항을 추가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건만 보건복지부는 요지부동이다.
기초생활보장제, 너무 많은 빈곤층 외면
이 외에도 근로소득에 대한 공제 확대, 재산의 소득환산율 조정, 이의신청권리 보장, 자활지원계획 강화 등 시행령에 바꿔야 할 항목이 많다. 나아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의료급여 대상 및 보장성확대, 근로능력평가와 근로빈곤층 취업우선지원사업 폐지 등 기초생활보장제도 전반의 구조적 개혁도 절실한 과제다. 수급자의 권리 확보와 뒷걸음질 치고 있는 빈곤층 복지제도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 무엇 하나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항목들이다.
지난 7일, 기초생활수급자였던 노인이 27원의 통장 잔고를 남기고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그는 기초연금 20만 원과 기초생활수급비 29만 원을 받고 있었다. 의료 급여자였기 때문에 병원비 역시 많이 지원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49만 원의 총 급여 중 30만 원을 병원비로 지출하며 화장실도 없는 단칸방에서 생활했다. 폐결핵에 걸린 아픈 몸으로 작은 방에 누워 홀로 죽어간 노인이 이 정부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이것저것 다 지원받는' 기초생활수급자일 것이다.
복지 재정에 대한 논쟁이 한창 이뤄지고 있다. 바나나 맛 우유에 바나나가 없고, 게맛살에 게 한 마리 들어가지 않는 것처럼, 복지제도의 가장 긴급한 대상이 되어야 할 빈곤층은 어쩐지 그 논쟁으로부터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연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던 '세 모녀 법'은 이미 많은 문제점을 안고 개정되었지만, 빈곤층의 권리 침해는 법 밖의 영역에서 더욱 활발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빈곤층의 권리 보장을 위해 기초생활수급자 및 수급권자, 사회복지노동자 등 많은 이들이 관심이 여전히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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