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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모스크바에 가야하는 이유

[정욱식 칼럼]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 만들지 않으려면

모양새가 우습게 됐다. 5월 9일로 예정된 러시아의 전승 70주년 기념식에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 여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러시아 정부의 초청을 받은 박 대통령은 좌고우면을 계속하고 있다. 이 와중에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벤 로즈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개별 국가들이 스스로 판단하겠지만 미국의 동맹이란 차원에서 보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러시아가 개입하고 있는 것을 이유로 박 대통령이 러시아에 가면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 전승절 행사 불참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이 불참 결정을 내리면, 미국의 요구에 따르는 것으로 비춰지게 됐다.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 때까지 한러 외교는 동결?

로즈 부보좌관의 발언을 보면, 미국이 한국을 얼마나 만만한 동맹국으로 보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 대통령의 방러 문제는 국민 여론과 국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한국 스스로 판단할 사안이다. 그런데 미국은 공개적으로 가지 말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건 외교적 결례를 넘어 주권 침해에 해당된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에 따르면, 한국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대러 외교 관계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는 미국의 '묻지마식' 나토 동진에 있다. 이건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와 스테판 월트 하버드대 교수 등 미국의 대표적인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이 지적하는 바이다. 러시아와의 관계를 재설정(reset)하겠다고 다짐했던 오바마 행정부 들어서도 이러한 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최근 미국의 태도 역시 대단히 유감스럽다. 오바마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반군을 제압할 수 있도록 무기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이 문제로 인해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해결을 추구하는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은 문제의 끝이 아니라 더 큰 문제의 시작이 될 공산이 크다. 미국의 무기 지원은 "우크라이나 사태 배후에는 미국이 있다"는 러시아의 주장을 확인해주는 셈이 되고, 이에 따라 러시아의 더욱 강력한 개입을 초래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 사태가 더욱 악화되면, 미국은 한국에게 외교적 간섭뿐만 아니라 대러 경제제재에 동참하라고 요구하고 나설 것이다.

박 대통령이 모스크바에 가야 하는 까닭은

여러모로 볼 때, 박근혜 대통령이 러시아에 가는 게 좋다. 물론 방러가 한미관계에 갈등을 야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다. 미국에게 한국을 다시 보게 만드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 더욱 중요하게는 실보다 득이 훨씬 크다.

우리 입장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장면은 북-중-러 삼국 정상들이 손을 잡는 것이다. 이미 시진핑 주석은 참석 의사를 밝혔고, 김정은 위원장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한-미-일 정상들의 불참 속에 북-중-러 정상들이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건 동북아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신냉전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될 것이다.

더구나 지난 글(☞관련기사 : 북한-러시아 '군사 밀월'…냉전시대로 돌아가나?)에서 다룬 것처럼, 러시아 정부는 북한과의 합동군사훈련도 타진하고 있다. 김정은이 모스크바에 간다면, 이 문제도 심층적으로 논의될 공산이 크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모스크바에 가지 않으면, 군사훈련을 하지 말라고 러시아에 요구할 수 있는 발언권이 약해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러시아는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핵심적인 상대국이다. 6자회담 참가국이자 실무그룹의 하나는 동북아 평화안보체제의 의장국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의 불참은 6자회담을 비롯한 북핵 외교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도 상당히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공산이 크다. 이는 거꾸로 박 대통령의 방러가 한국 외교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해 남북 정상이 조우한다면, 남북관계 개선도 도모할 수 있게 된다. 남북 정상의 만남 자체가 그 이전에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수요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 정상회담 로드맵을 짜라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처참히 무너진 한국 외교는 현 정부 들어 회복 불능으로 치닫고 있다. 작년에 촉발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논란으로 한국은 미국과 중국 관계에서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했다. 올해 들어서도 이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러시아 전승절 참석 문제로 미국과 러시아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예전엔 힘이 없었다고 하지만, 한국은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외교는 여전히 '미국 거수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는 미국만 있으면 됐다고 하지만, 오늘날에는 중국과 러시아도 우리 국익에 중요해졌다. 남북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공허한 주문이 될지 모르지만, 박근혜 정부는 올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정상 외교의 로드맵을 짜야 한다. 러시아 전승절 참석을 필두로, 남북정상회담, 한중일 정상회담, 중국의 승전 70년 주년 기념식 참석, 연말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등을 유기적으로 엮어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광복 등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들을 기념하는 올해는 이를 위한 역사적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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