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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은 어쩌다 IS 테러와 분쟁의 땅으로 전락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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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은 어쩌다 IS 테러와 분쟁의 땅으로 전락했나

[프레시안 books] 데이비드 프롬킨 <현대 중동의 탄생>

중동 분쟁의 뿌리, 어디에 있는가?

"중동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띠게 된 것은 두 가지 요인 때문이었다. 하나는 유럽 국가들이 재편을 맡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영국과 프랑스가 왕조, 국가, 정치 시스템만 구축해놓고 그것들이 지속될 수 있는 대책 마련에는 소홀한 탓이었다. 전시와 종전 뒤 영국과 연합국은 중동의 구질서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부숴놓았다.

아랍어권 지역에서 오스만 체제를 회복 불가능하게 파괴시킨 뒤 그 자리에 나라를 세우고, 지배자들을 임명하며, 국경선을 그리고, 세계 도처에서 볼 수 있는 국가 시스템 비슷한 것을 도입했으나, 그것에 반발하는 현지인들의 저항까지 죄다 물리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1914∼1922년 사이 영국과 연합국이 취한 조처는 유럽의 중동 문제만 종식시켰을 뿐, 중동의 중동 문제는 오히려 새로 불거지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현대 중동의 탄생>(갈라파고스, 2015년 1월 펴냄) 저자인 데이비드 프롬킨이 여기서 언급한 전시와 종전은 제1차 대전을 의미하는 것이며, 1914∼1922년의 조처란 오스만튀르크제국의 해체와 이 제국이 지배했던 영토의 식민주의적 분할을 가리킨다. 그로써 만들어진 나라들은 시리아, 이라크, 요르단, 레바논, 이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이다.

문제는 이들 국가의 경계선 획정이나 구분은 그 어떤 종족, 자연, 역사의 뿌리도 없는 채로 서구 제국주의의 일방적 선 긋기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그렇게 만들어진 인위적인 내부 모순은 애초부터 불안정의 씨앗을 싹 틔우고 있었다.

데이비드 프롬킨은 이러한 상황을 과거 서로마제국의 붕괴 이후 유럽의 새로운 질서가 구축되는 과정의 혼돈과 그 폭력의 과정과 비교하고 있다.

"작금의 중동에 지속되는 위기는 물론 깊이와 지속 기간의 면에서 로마제국이 초래한 위기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그렇기는 하지만 중동도 수백 년 동안 존재하여 익숙해져 있던 제국적 질서가 무너진 뒤 각양각색의 종족들이 헤쳐모여의 과정을 거쳐 정치적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이런 중동에 1920년 초 연합국이 포스트 오스만제국 프로그램을 던져 놓았으니, 중동 민족들이 그것을 수용할지 말지 여부도 지속적인 문제로 남게 될 전망이다. 1922년 타결은 이렇듯 전적으로나 대체적으로나 과거에 속한 것이 아닌 현재 진행 중인 중동의 전쟁, 분쟁, 정치의 중심에 놓여 있다."

IS의 출현과 중동의 식민주의 문제

ⓒ갈라파고스
영국의 식민지 인도와 이집트 사이의 아시아라는 뜻으로 중동(the Middle East)라고 불리게 된 이 지역은 이후 열강 등의 이른바 "거대한 게임(the Great Game)"의 희생물이 되는 동시에, 폭력적인 분쟁에 끊임없이 휘말리게 된다. 이 "거대한 게임"이라는 말은 영국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를 두고 각축전을 벌일 때 활약했던 영국의 정보장교 아서 코널리가 했던 말로 알려져 있다.

바로 그러한 국제정치의 맥락과 그 역사적 연장선에서 우리는 오늘날 통합 이슬람 국가를 표방하는 IS(Islamic State)의 출현과 함께 반(反)서구 항쟁의 수단으로 내세우고 있는 그 무서운 무차별적 테러리즘을 목격하고 있다. IS는 현재 모술에서 바그다드에 이르는 이라크 동북부 지역과 시리아 접경 지역을 영향권으로 삼아 레바논과 요르단의 경계선을 허물고 팔레스타인을 해방시키는 동시에, 대(大)이슬람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표방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데이비드 프롬킨은 "영국과 프랑스가 왕조, 국가, 정치 시스템만 구축해놓고 그것들이 지속될 수 있는 대책 마련에는 소홀한 탓이었다"면서, "이런 중동에 1920년 초 연합국이 포스트 오스만제국 프로그램을 던져 놓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분석이 옳을까?

그의 책을 읽어나가노라면, 때로 제국주의 지배를 비판하는 듯하다가 때로는 제국주의의 문제를 은폐한 채 중동의 아랍인들 자신의 문제가 더 크다는 식으로 말하는 듯하기도 하는 등의 애매함과 혼란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그가 중동의 역사를 점검하면서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를 피할 수 없는 한편, 중동의 문제가 서구의 국가 건립(the Nation Building)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쪽에 책임이 있다는 논리를 제기하고픈 유혹에 빠진 탓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이슬람에 대한 당시 유럽 관리들의 이해가 매우 부족해", "현대화된 아니 유럽화된 정치에 반대하는 무슬림의 저항도 유야무야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에 쉽게 설득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중동에는 합법성에 대한 인식이 없고,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믿음도 없"다고 주장한다. 서구의 오스만제국 유산의 분할을 "현대화된 유럽 정치"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에 반대하는 것을 "무슬림의 저항"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제1차 대전 과정에서 영국과 프랑스, 독일과 러시아가 오스만제국 붕괴 이후의 판도에 대한 제국주의 분할의 구도 짜기에 몰두한 결과라는 점은 그 자신의 책을 통해서도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증언되고 있다.

유럽의 보호령 VS 완전한 독립, 통일 아랍 국가

1000년이 넘는 이슬람 문명의 계승자인 오스만제국이 붕괴되어가자 그 통치 아래 있던 지역의 주민들은 자신들만의 새로운 독립 국가를 세우고 싶어 했다. 그러나 영국을 위시한 유럽 제국들과 러시아 등의 각축 속에서 외교적 담합에 따른 식민주의적 분할 상태로 이들의 갈망을 짓밟았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영국과 프랑스가 1916년, 중동의 분할을 외교적으로 담합했던 사이크스-피코 협정 당시 이들 서구 제국은 "유럽의 보호령"이라는 개념으로 오스만제국 붕괴 이후의 중동 정세를 관리하려 들었던 반면에 아랍의 봉기를 통해 자주 독립 국가를 세우려 했던 세력들이 원했던 것은 "완전한 독립국, 통일된 아랍국"이었다.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던 이러한 인식의 차이와 현실에서 벌어진 일들은 결국 이후 중동 지역에 어떤 사태가 생겨날 것인지를 충분히 예견하게 해주는 요건들이었다.

중동과 국제정치 이해의 필독서

원제는 <모든 평화를 종식시킨 평화(A Peace To End All Peace)>로 되어 있는 이 책의 원판을 본 것은 1990년 미국에서였다. 출간 연도가 1989년이었으니 당시로서는 신간에 해당하는 이 책은 미국 사회에서 중동에 대한 역사적 이해에 적지 않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처칠을 비롯한 당대 서구 정치인들의 세세한 움직임까지 묘사해 정책 입안자들의 세계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일깨운 뛰어난 저작으로 꼽혔다.

물론 앞서 거론했듯이 데이비드 프롬킨의 식민주의 문제에 대한 인식이라든가 중동의 민족 해방 투쟁에 대한 이해의 입장은 우리로서는 논란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이 가지고 있는 힘은 매우 강력하고 풍부하다.

오스만제국이 러시아의 남하로부터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독일과 한편이 되어가는 과정, 이에 대한 영국의 대응,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 지역에서 서로 기득권 분할의 비밀 협상을 벌이는 중에 생겨나는 여러 인물들에 대한 정밀한 기록들은 역사의 현장을 생동감 있게 느끼도록 만들어 준다. 그뿐만 아니라 오스만튀르크제국이 해체되고 그 뒤를 이어 현대 터키가 형성되는 과정도 국제 관계에서 추적하고 있으며, 특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연원도 객관적으로 잘 정리해주고 있어 오늘날 중동의 불씨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독자들의 이해를 높여주고 있다.

데이비드 프롬킨은 중동만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의 현실에도 눈을 돌리는데, 이것은 영국과 러시아의 대치를 기본구도로 당시 정황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영국의 지배, 즉 "영국이 지난 십수 년간 아프간을 보호령으로 삼은 결과 얻은 것은 우호가 아니라 원한"이었다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

이것은 오늘날 중동과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취하는 입장을 영국에 대입해 봐도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없는 것이라 하겠다. 말은 보호령이지만 실질적인 식민지에 영국 또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가 건립이라는 것은 원한과 함께 분쟁의 악순환만 되풀이하게 할 뿐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나 더 논란거리를 추가하자면, 데이비트 프롬킨은 이 책에서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유명한 T. E. 로렌스의 역할을 평가 절하한다. 그는 로렌스가 미덕이 많은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의 상상력 속에서 빚어낸 이야기를 사실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를 덧붙인다.

"로렌스는 상급자의 말을 거스르기 일쑤고, 직속상관을 건너뛰어 고위 관리에게 직접 보고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제는 처칠의 소관이 된 영국의 메소포타미아 정책에도 공공연히 비판을 가했다."

그러나 로렌스가 이렇게 하게 된 까닭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데이비드 프롬킨은 주목하지 못한 것 같다. 로렌스는 영국 정부가 애초에 오스만제국에 대한 아랍 봉기를 지원하면서 이들의 민족 해방 투쟁을 돕는다고 믿었으나, 알고 보니 아랍 봉기를 이용해서 오스만제국을 무너뜨리는 전략을 취한 것이며 아랍인들에게 독립 국가를 허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영국 정부의 정책에 치열하게 저항하고 문제 제기를 한 것이었다.


오늘날의 새로운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우리

로렌스가 직접 아랍 봉기의 선봉장이 되고 이들과 동고동락했던 사실은 데이비드 프롬킨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긍정적으로 강조할 경우 오늘날의 새로운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미국의 대 중동 정책에 비판의 날을 세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는지도 모르겠다. 식민주의의 원죄는 여전히 청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인지, 데이비드 프롬킨은 영국의 식민주의 유산을 물려받아 그 뒤를 이은 미국의 중동 정책에 대한 비판은 일체 하지 않고 있다. 물론 이 책을 통해 미국의 대 중동 정책의 줄기를 바로 세울 것을 주문하는 것이 그의 내면에 깔려 있는 의도일 수 있으나, 그의 책을 읽어나갈 때 이런 대목들은 예민하게 신경을 쓰면서 봐야 할 점들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거니와, 우리가 그의 책에 대해 비판적으로 해독해야 할 대목이 있다 해도 광범위한 기록의 검증과 전체 맥락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이 정도의 무게와 정보를 가진 책을 쓴 것은 별개의 평가를 해야 할 바이다. 게다가 이 책은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도 전혀 무리가 없고, 그 내용 전개가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역동적이고 구체적이다. 그래서 900쪽에 달하는 책의 독파가 그리 어렵지 않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역사서를 우리말로 옮겨온 역자 이순호의 지적 축적과 유려한 번역 솜씨가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달리 시선을 돌려보면, 구제국의 해체와 식민지 문제 해결이라는 역사적 과제에는 우리의 현실도 해당 사항이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아시아-태평양 전쟁 이후 일본 제국주의 해체와 함께 이루어졌어야 할 완전한 독립과 통일 국가 수립이 좌절된 결과로 치렀던 전쟁과 이후 지속되는 분단은 그 본질상 중동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모든 평화를 종식시킨 평화가 아닌, 모든 전쟁을 종식시키는 평화, 그것이 우리가 갈망하고 있는 미래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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