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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반뼈 깎고 오라"…신입 디자이너는 '인간 마네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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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반뼈 깎고 오라"…신입 디자이너는 '인간 마네킹'?

입사 지원 자격에 '신체 사이즈' 내걸기도

"디자이너를 뽑는 게 아니라, 그 브랜드에 맞는 '인간 마네킹'을 뽑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어요."

패션 디자이너 지망생 A씨는 의류회사들의 디자이너 채용 면접을 볼 때마다 옷을 입어보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면접관의 질문은 5분에서 10분 남짓이면 끝났고, 준비해 온 포트폴리오는 건성으로 보기 일쑤였다. 어떤 회사에선 면접장에 들어가자마자 쭉 몸매를 '스캔' 하더니, "됐다"면서 그냥 돌려보낸 곳도 있었다. 결국 A씨는 번번한 취업 패인이 자신의 신체 조건에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그는 "지난 4년간 옷을 입어보려고 공부한 것인지 회의감이 들었다"고 했다.

여성복 디자이너 지망생인 B씨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막내 디자이너는 무조건 '피팅'(의류 대량생산 전 모델에게 입어보게 해 착용감 및 외관 등을 점검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업계의 관행 때문에, 간신히 취업에 성공했어도 잔심부름과 옷 입기에 대부분의 업무 시간을 할애했다. B씨는 2주 동안 일한 회사에서 "어깨가 옷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들었다. 그는 "피팅 때문에 체형교정 수술까지 고민했다"고 했다.

패션업계에 만연한 '몸뚱아리 차별'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의류회사들이 취업난을 악용해 신입 디자이너를 채용할 때, 대놓고 취업준비생들의 '피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피팅모델에게 제공해야 할 시급 1~2만 원을 절감하기 위해 신입 디자이너에게 피팅 모델을 겸하게 하는 것이다.

▲패션노조, 알바노조, 청년유니온 3개 단체는 22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패션업계의 '신체 차별'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프레시안(선명수)

디자이너 응시 자격에 '신체 사이즈' 내걸기도

패션노조와 알바노조, 청년유니온 등 3개 단체는 22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패션계의 이 같은 신체 차별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 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아예 디자이너 채용 공고에 특정 신체 사이즈를 '지원 자격'으로 명시한 업체들이 상당했다. 채용 공고에서 "피팅 가능자를 우대한다"는 표현은 예사였다.

국내 한 업체는 티셔츠 디자이너를 모집하는 채용 공고에서 키(165~168cm)와 몸무게(52~54kg)는 물론 어깨와 상동, 중동, 하동의 사이즈까지 구체적으로 적시해 이를 지원 자격으로 내걸었다. 여성복으로 유명한 또 다른 업체도 '막내 디자이너' 모집 공고에서 등 길이와 소매 기장 사이즈까지 지원 조건으로 명시했다. 디자인 능력과 상관없이, '신체 조건'이 곧 입사 자격이 되는 셈이다.

▲한 여성복 업체의 신입 디자이너 채용 공고. ⓒ패션노조

3개 단체는 "시급 1~2만 원에 불과한 피팅 모델 아르바이트비를 아끼기 위해 업체들이 꼼수를 부리는 것"이라며 "이런 시스템이라면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샤넬의 칼라거펠트, 루이비통의 마크제이콥스, 안나수이와 같은 디자이너들은 한국의 기업에서 취업할 수 없다. 이들은 뚱뚱하고, 키가 작고, 너무 말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디자이너 지망생에게 "골반뼈 깎고 오라"…인권 침해 심각

이런 상황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디자이너 지망생들은 수시로 모멸감과 수치심을 겪기도 한다. 여성복 디자이너 지망생인 C씨는 면접관으로부터 "OO씨는 골반 뼈 좀 깎고 와야겠어요", "살이 너무 쪘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여성복 스타일 디자이너로 일하려면 '피팅'이 제일 중요하다는 점 때문에 소재 디자인쪽으로 전환해 취업을 준비했지만, 소재 디자인 쪽도 신입 디자이너에게 피팅을 요구해 좌절감을 느꼈다"고 했다.

3개 단체는 이날 국가인권위원회에 패션업계의 이 같은 차별을 시정해 달라며 진정서를 제출했다.

앞서 패션노조는 지난 7일 패션업계의 이른바 '열정 페이(열정을 빌미로 한 저임금 노동)'와 관련해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장인 이상봉 디자이너에게 '청년착취대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견습 10만 원, 인턴 30만 원' 급여로 논란을 빚은 이상봉 디자이너는 비난 여론이 커지자 지난 14일 "패션업계의 젊은 청년들에게 깊이 사과한다"며 사과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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