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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간첩"…멀쩡한 그녀는 왜 거짓 자백을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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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간첩"…멀쩡한 그녀는 왜 거짓 자백을 했나

[프레시안 books] 리처드 레오 <허위 자백과 오판>

간첩 조작에 대한 우리 안의 몰이해와 의구심

2013년 4월 27일 유가려 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국정원 수사관들의 감금, 폭행, 가혹 행위, 회유를 견디지 못하고 오빠 유우성과 함께 북한의 간첩 활동을 하였다는 허위 진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폭로하였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진상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기자회견이었다. 그런데 당시 기자회견 이후 주변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여동생이 아무런 근거 없이 오빠를 간첩으로 인정하였겠느냐는 의구심이었다. 물리적 강압 수사와 회유로 인하여 허위 진술을 한 것 아니냐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럼 요즘 세상에 고문으로 허위 진술을 받아내었다는 것이냐', '요즘 세상에 허위 진술에 의한 간첩 조작이 말이 되느냐'는 의구심이 팽배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진상을 밝혀 가는 과정은 한편으로는 국정원과 검찰의 간첩 조작 시도에 맞서 억울한 피해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지난한 싸움의 과정이었지만, 동시에 우리 안에 가득한 의구심을 해소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지금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1, 2심 무죄), 보위사령부 직파 간첩 조작 사건(1심 무죄), 북한산(産) 거짓말 탐지기 회피용 밴드 부착형 약물로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통과하였다며 유죄를 선고해 조작 논란을 불러일으킨 보위사령부 직파 여간첩 사건(대법원 유죄 확정) 등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많이 알려졌다. 그러므로 국정원 수사관들이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한국 사법 체계를 알지 못하고 자신을 도와줄 연고가 한국에 없는 탈북자를 상대로 허위 진술을 만들어 간첩을 양성하여 왔다는 주장에 누구나 공감을 하리라 본다. 하지만 유가려 씨의 기자회견 당시만 해도 여동생의 허위 진술에 의한 간첩 조작의 진상을 알리는 데 있어 허위 자백, 고문, 중앙합동신문센터의 독방 감금 조사, 간첩 조작에 대해 우리 안에 가득한 몰이해와 의구심은 큰 장애물이었다.

우리 안에 가득한 몰이해와 의구심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먼저, 분단 트라우마(분단 정신병) 때문이다. 우리나라만큼 고문으로 인한 허위 자백과 그것을 통한 간첩 조작이 일상화되어 온 나라도 없다. 극우 보수 세력은 분단 지배 체제에서 누리는 기득권 사수를 위해 끊임없이 국가보안법이라는 절대무기를 사용하여 간첩 조작을 반복적으로 해왔다. 그러면서 북한을 악마화하고 우리 사회를 매카시즘으로 짓누르며 극우 폭력(혐오 범죄, 증오 범죄)을 양산해 왔다. 북한과 접촉·교류, 대화와 협력 등 같은 민족으로서 가지는 유대와 연계를 불온시하고, 매카시즘으로 그러한 시도를 사회적으로 생매장하고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는 극우 폭력이 기승을 부렸다.

그러는 동안 극우 폭력에 겁먹은 우리는 모두 분단 정신병 환자로 분단 정신 병동에 수용된 채 극우 폭력에 저항하는 힘을 잃어버렸다. 극우 폭력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겁에 질려 회피하다 보니, 끝내는 분단 정신병 환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비겁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변명하며 자기 합리화하는 증세까지 나타났다. 그렇게 비겁함을 간직한 채 자기 합리화로 살아가다 보니, 역사에서 지금까지 일상화되어 왔던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하여 과거의 일로 치부하였다. 간첩 조작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간첩 조작을 예방하려는 의사도, 능력도 거세당하였다. 극우 폭력에 겁먹고, 극우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회피하며 매카시즘에 세뇌된 우리 안의 의심과 불안은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과 그것을 통한 간첩 조작에 대한 몰이해와 의구심을 낳았다. 분단이 낳은 커다란 비극이다.

다음으로, 지극히 평균적이고 정상적인 사람도 수사기관의 밀실에서 벌어지는 조사(피의자 신문)를 맞닥뜨리게 되면 전문 수사관의 심리 컨트롤 수사 기법에 의하여 허위 자백을 할 수밖에 없는 형사 사법의 구조가 존재한다는 현실에 대한 인식의 결여 때문이다.

거짓 자백을 하게 만드는 수사 기법과 이를 바로잡지 못하는 형사 사법 구조

ⓒ후마니타스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허위 자백과 오판>(후마니타스, 2014년 12월 펴냄)은 미국의 형사 사법 구조에서 이뤄지는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어떻게 허위 자백이 만들어지고 그로 인해 유죄 판결이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사례 연구·분석 보고서이다. 저자 리처드 레오는 심리학과 법학 박사 학위를 받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활동하며, 미국 경찰의 피의자 신문 관행과 허위 자백 및 오판에 대한 경험적 연구의 선구자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이 책을 누가 읽으면 가장 안성맞춤일까. 필자에게 딱 안성맞춤인 책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극적인 허위 자백 사례를 접해본 필자는 이 책의 한 구절 한 구절이 피부에 와 닿았다. 가슴에 새겨졌다. 수많은 미국의 허위 자백 사례에 대한 분석 결과를 보면서 동감하고 또 동감하였다. 저자는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허위 자백을 만들어내는 갖가지 수사 기법, 그 수사기법으로 인하여 멀쩡한 사람이 허위 자백을 하게 되는 구조, 그 후 유죄 판결에 이르는 과정에서 허위 자백을 거의 검증하지 못하는 형사 사법 구조의 맹점을 피의자 신문부터 기소 및 재판에 이르는 각 단계에 걸쳐 수많은 사례와 연구 결과를 종합하여 깨알같이 분석했다.

필자와 같은 변호사를 비롯하여 우리의 형사 사법 구조에서 역할을 담당하는 일원이라 볼 수 있는 수사관, 검사, 판사, 법학자, 사법연수생, 법학전문대학원생들이 이 책을 필독서 삼아 형사 사법 구조를 바람직하게 만드는 데 각자 영역에서 참고하기를 바란다.

나아가, 신(新)유신으로 치달아가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바로잡고자 저항하는 수많은 시민들에게도 필독서가 되어야 한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앞으로 공안 통치가 강도를 더할 것으로 예상되고, 이에 따라 수많은 시국 사건이 양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인한 촛불 시위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이 체포·연행되었다. 그래서 당시 수사기관에서 피의자로 조사받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관한 지침이 많은 시민에게 필요한 상황이었다. 민변에서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근거하여 체포·구속자를 위한 피의자 신문 시 대응 지침을 지속적으로 알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피의자의 심리를 조종하는 수사 기법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리면서 그 대응 요령을 설파하지 못하였다. 이 책은 피의자 신문 시 심리를 조종하는 수사 기법에 대응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데 큰 참고가 되리라 확신하며 시민들의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은 1966년 미란다 판결 이후 소위 현대화된 심리적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도 수사관들은 심리적 조종과 협박 및 속임수에 의지하여, 결백한 정상 성인에게서도 허위 자백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편적 상식으로 인식하기를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심리적 피의자 신문의 환상"을 깨야 한다고 설파한다. 현대적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즉 물리적 강압이 사라진 심리적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는 결백한 사람이라면, 더욱이 성인이라면 맞지도 않고 미치지 않고서야 허위 자백을 할 리가 없다는 믿음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자신이 허위 자백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이 무고할지라도 수사기관의 심리적 강압에 의해 허위 자백을 하는 것이 가능한 최선의 선택이 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상식을 갖게 될 것으로 본다.


'수사관과는 절대로 아무것도 섞지 말라'고 조언하는 이유

그동안 필자는 피의자 신문을 전후해 '수사관과는 절대로 아무것도 섞지 말라'는 조언을 매우 강조해왔다. 수사기관 출석과 관련한 통화조차 직접 하지 말고, 수사기관과 변호인 사이에 통화가 이뤄지도록 엄격히 조언했다. 그만큼 수사관과는 접촉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조언이었다. 또한 피의자 신문 조사실에서 변호인과 귓속말을 하거나 따로 밖에서 비밀 대화를 하는 것 이외에, 수사관과 악수며 대화며 일체의 접촉을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것이 힘들었는데, 필자의 이러한 조언이 정당했음을 이 책의 연구 결과를 활용해 설명하고자 한다.

필자는 그동안 피의자 신문 전에 출석을 요구받는 통화 과정이나, 압수수색 현장에서나, 공식적 피의자 신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피의자가 수사관과 가족, 날씨, 건강 등 갖가지 주제에 대하여 아무 생각 없이 말을 섞으며 서로 화기애애하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피의자 신문 중간중간 휴식 시간에는 담배도 나눠 피우며 서로 우의를 돈독히 하기까지 한다. 같은 학교 출신이네, 같은 고향이네 하며 말을 섞은 수사관에 대해서는, 피의자가 수사관의 비위에 맞춰 그 질문에 대해 진술해 줘야 할 것 같은 양심의 가책을 받기까지 한다. 변호인이 말을 섞지 말라고 조언하면, '저렇게까지 야박하게 해서 내가 오히려 더 불리해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피의자가 변호인을 타박하기도 한다. 마치 인질이 범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비이성적인 심리 현상을 일컫는 스톡홀름 증후군과 유사하지 않은가. 이와 같은 바보 같은 짓을 피의자로 전락한 시민들에게서 일상적으로 목격할 수 있다. 비일비재한 일이다.

이 책은 위와 같이 수사관들이 피의자 신문 과정을 전후해 피의자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하여 광범위한 잡담을 나누며 경찰-피의자의 상호 작용을 사적으로 만드는 것에 숨은 목적이 있다고 지적하고, 그 목적을 정확히 설명한다. 그것은 우호적인 상호 작용을 통해 피의자에게 '순응해야 한다'는 기대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저자는 수사관들이 이처럼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을 피의자에 대한 수사관들의 인상 관리 전략으로 규정한다. 피의자를 신문하는 수사관들은 피의자로 하여금 존재하지도 않는 현실을 믿게 하기 위해 심리를 조종하고, 많은 속임수를 통해 수사관과 피의자의 관계에 관한 피의자의 인상을 관리한다. 그들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피의자의 상황을 동정하는 척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형사 사법 절차에서 피의자의 동지이자 지원자이고, 피의자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며, 대립적이라기보다 협력적이고 호혜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내려 애쓴다. 또한 피의자가 완전한 자백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수사관들은 피의자가 경찰에 협조하고 죄를 씌우는 범행 시나리오에 동의함으로써 도덕적 속죄나 사회적 승인, 또는 제도적 혜택이나 더 관대한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피의자를 설득하려 한다. 결국, 자백하는 것이 합리적 이익이 된다고 믿도록 피의자를 설득하는 능력 뒤에는 수사관들의 인상 관리 전략과 기술이 자리 잡고 있다.

담배를 피우고 싶어 중앙합동신문센터 독방 조사실에서 수사관이 유도하고 설득하는 대로 허위 진술을 한 어느 탈북자 사례는 남 일이 아니다. 수사관이 묻고 유도하는 대로 진술을 잘하는 경우 담배를 피우게 해주는 반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진술하면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면서 엄중하게 추궁하는 일이 매일매일 지루하게 반복된다. '이거 인정한다고 해서 별일 있겠느냐'며 수사관이 허위 진술을 계속 강요하는 긴장 관계가 지속된다. 허위 자백을 해도 별일 없다는 회유와,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더 가혹한 제재를 받게 될 것이라는 위협을 받자 탈북자는 결국 스트레스에 지쳐 나가떨어진다. 탈북자는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에, 그리고 무료로 피우게 해주는 담배 값이라도 하라는 수사관의 말에 호응하여 수사관이 짜놓은 범죄 시인 시나리오에 들어가 허위 자백을 한다. 어느 탈북자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의 경우다.

저자는 수많은 형사 사건의 사례 연구에 기초하여, 허위 자백으로 인한 피해자가 양산되지 않도록 형사 사법 구조를 개혁하고자 이 책을 썼다. 이 책의 피와 살이 되는 많은 연구·분석 결과를 수많은 시민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사실 필자는 지금 탈북자 간첩 조작 사건의 한가운데서 형사 재판을 진행하기도 벅차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필자에게는 과제가 생겼다. 우리나라에서도 허위 자백 사례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우선은 필자의 시국 사건 경험에서 피의자 신문 시 대응 요령에 관하여 조언한 여러 가지 내용이 어떤 점에서 정당하였는지에 관하여, 이 책의 연구 결과를 활용해 하나하나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하며 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지면의 한계로 여기서 다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이 책을 본보기 삼아 우리의 형사 사법 구조에서 발생하는 허위 자백 사례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내는 작업을 필자의 과제로 삼아 추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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