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박근혜 캠프 출신, 왜 '종북 변호사' 도움 청했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박근혜 캠프 출신, 왜 '종북 변호사' 도움 청했나

[다시 '국가폭력'을 말하다] '귀순용사' 김관섭은 왜 피켓을 들었나 <4>

나이 40에 남한에 와 내리 30년을 안보 교육 강사로 지냈다. 이만하면 국가에 헌신한 삶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삶을 비참하게 만든 건 국가였다. 모든 불행의 시작은 대성공사에서 간첩 누명을 쓰면서부터였으니. (☞지난 회 기사 보기)

주변 귀순자들은 김관섭 씨의 처지를 딱하게 여겼다. 김 씨는 지인들의 설득에 용기를 내 지난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에 대성공사 시절 가혹행위에 대한 피해보상과 국가유공자 지정 등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김 씨를 독려했던 귀순자 모임 '통일연구회' 사람들이 다시 만류하기 시작했다.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정기적으로 받는 지원이 끊긴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간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 진정서를 철회했다. 체념한 채로 다시 또 세월이 흘렀다.

▲김관섭 씨가 3년 6개월 동안 수용생활을 했던 서울시 영등포구 소재 '대성공사'. ⓒ프레시안(최형락)

그러던 지난해 2월. '유우성 간첩 조작 의혹 사건'으로 나라가 들썩였다. 지금이야말로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7년간 묵혀뒀던 진정서를 다시 꺼내 다듬은 뒤 청와대에 제출했다. 두 달 후쯤 청와대를 경유해 국정원 측 답변서가 날아왔다. "가혹행위를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고 했다. 당시 조사에 참여했던 신문관 중 7명은 사망했거나 소재 파악이 안 되고, 나머지 생존자 3명은 "고문 사실과 인권유린 사항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생사람을 고문해놓고 오리발을 내미니 분통이 터집니다. 엉터리 답이 올 줄은 알고 있었어요. 간첩 증거 위조 사건으로 국정원 존립 자체에 문제가 생긴 판국이었으니까요."

같은 내용의 진정서를 다시 인권위에 보냈지만 여기서도 답변이 신통치 않았다. 인권위는 인권위원회법 제32조 제1항 제4호의 규정에 따라 "1년 내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진정서를 각하, 통보했다.

'종북 변호사’를 찾아가다

대성공사 수용 당시 고문 사실을 증명해내기는 쉽지 않다. 너무나 많은 시일이 흘렀다. 김 씨를 고문했던 신문관들 중 다수는 이미 죽거나 생사가 불분명하다. 생존한 이들의 경우 혐의를 발뺌하면 그만이다. 이제 와서 '이근안처럼 고백하라'며 설득하기도 쉽지 않다.

답답한 마음에 그가 찾은 사람은 '간첩 전문 변호사', '종북 변호사'로 알려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의 장경욱 변호사다. 김 씨는 장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조만간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고문 사실을 직접적으로 증명할 자료는 없지만, 대성공사에 3년 6개월 동안 있었다는 사실은 군에서 보관 중인 귀순자 공적조서에 나와 있다. 장 변호사는 이 '3년 6개월'이 어쩌면 진실을 밝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김관섭 씨가 북한 이탈주민 후원회를 통해 받은 군 정보사령부의 귀순자 공적확인 결과 문서.

소송 준비를 위해 김 씨와 몇 차례 만나 면담한 장 변호사는 혀를 내둘렀다.

"평생 안보 강연 다니고 보수단체 간부를 지내신 분이 '종북 변호사'로 알려진 저에게 찾아와 변호해달라고 하다니, 이게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입니까?"

'박근혜 캠프’ 출신 탈북자가 정부에 보내는 쓴소리

김 씨는 80세 노구의 몸을 이끌고 국가를 상대로 한 싸움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12월에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고문과 인권 유린 사실을 나 몰라라 외면하고 심지어 은폐하는 현실을 보고 국가에 대한 믿음이 무너졌다"며 면담을 요청한 것. 다행히 최근 인권위에서 "김무성 의원실 통해 조사 요청이 들어왔다"며 "검토 중"이라는 연락이 왔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 당시 김관섭 씨가 새누리당으로부터 받은 위촉장. ⓒ김관섭
그는 "새누리당에서 저를 그냥 무시할 순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 씨는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는 데도 제 몫을 단단히 했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 당시 김 씨는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 캠프에서 위촉장이 날아왔다. '100% 대한민국 대통합위원회 지역통합본부 수도권통합본부 남북소통위원회 고문', '경기도위원회 고문'에 임명됐다. 그는 탈북자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1번’을 권유했다.

탈북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당선된 박 대통령은 거듭 '통일 준비’를 주문하고 있다. 김 씨는 통일에 대비하는 차원에서라도 정부가 나서서 자신과 같은 고문 피해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무슨 이야기일까. 그는 "통일 국면에서 탈북자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면, 최고로 좋은 일은 탈북자들이 북에 있는 가족들에게 '대한민국, 남한 사람들이 참 좋다’고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저 말고도 억울하게 고문당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이 다 '대한민국이 나를 고문하고, 사과도 않고 힘들게 했다’ 하면 당연히 '오지 말라’ 소리가 나올 겁니다."

김 씨는 국가가 자신에게 했던 잘못을 까발리는 일이 혹여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일은 아닐지 고민이 됐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그의 뜻은 단호하다.

"남한을 미워하는 탈북자들이 많아지는 것이야말로 북에 이로운 일 아니겠습니까."

그는 오히려 더욱 강하게 정부를 압박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달 안으로는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대한민국, 북한에 천안함 진실 밝히라고 할 자격 있나"

지난해 12월, 두 번째 인터뷰 자리에서 김 씨는 반가운 소식을 들려줬다. 15년 전 가출 이후 행방불명 상태였던 아들을 우연히 찾았다는 얘기였다.

"아들이 집에 온다고 해서 청소를 깨끗이 해놨는데, 제 집을 빙 둘러보던 녀석이 저한테 "아빠 불쌍하구나"라고 하더라고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그래도 이번에 만나 얘기하면서 오해가 다 풀렸어요. 아들이 저한테 힘드셨겠다고 하더라고요. 감격스러웠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알아줘서."

그는 자신의 아들처럼, 늦게나마 국가가 자신의 억울함에 대해 알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우리는 일본에 일본군 위안부 진실 제대로 밝히라고 하지 않습니까. 북한에도 천안함 사건을 사실대로 얘기하라고 합니다. 그럼 대한민국도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우리가 거짓 냄새가 나는데 어떻게 남한테 진실을 얘기하라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 내부에서 인권 유린하고 고문하는 비인간적인 사실이 지속되는 한 사과하라고 보상하라고 할 명분이 없습니다. 자유를 찾아 남한에 온 탈북 귀순자를 무고하게 간첩으로 몰고 고문 한 과거를 국가가 어서 인정하고 사과하기를 바랍니다." <끝>

▲김관섭 씨. ⓒ김관섭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