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 하차 태그는 불가피한가?
"비 오는 날 버스에서 하차할 때 해야 하는 일. 1. 손잡이 잡기 2. 우산 들기 3. 가방 들기 4. 하차 벨 누르기 5. 버스 카드 하차 태그 6. 균형 잡기 7. 하차 하기 8. 우산 펴기."
서울특별시 응답소 홈페이지의 '민원 사례'에 올라있는 한 게시물이다. 이 민원인은 버스 승차 시나 전철에서는 멈춰 있는 상태이므로 위험이 없으나 버스 하차 시 태그는 많은 사고의 위험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승차 태그만으로 환승 시간이 계산되는 제도를 도입하여 사고 위험을 줄일 것을 제안했다.
응답소의 다른 게시물에는 하차 태그와 연관된 사고에 대한 내용들이 보인다. 2010년 11월, 서울의 어느 가족 모임에 오신 친척 어르신이 버스에서 하차하면서 교통 카드를 태그하려고 들고 있다가 버스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크게 넘어졌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타박상을 입고 멍이 들었지만 사고의 책임 소재를 두고 버스 기사와 언쟁까지 벌였다는 얘기다.
서울 시내버스의 환승 할인 서비스 적용을 위해 도입된 하차 태그 제도는 이제 전국 통합 카드 시스템이 적용되면서 다른 도시로도 퍼져가고 있다. 환승을 하든 안 하든 일단 찍고 내려야 불이익이 없다는 것이 상식이 되면서 승객들은 내릴 정류장이 가까워지면 교통카드부터 먼저 준비한다.
그런데 비오는 날 양손에 짐을 든 승객이 아니더라도 하차 태그는 여간 불편하고 불안한 것이 아니다. 서울 시내버스 내부에 부착된 안내문은 양손에 물건을 들고 손잡이도 잡지 않은 채 교통 카드를 태그하는 경우와, 하차 시 카드 태그를 하지 않고 하차한 후 갑자기 카드 태그를 위해 다시 승차하는 경우 '차내 사고'가 발생하니 조심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런 경우에 사고 위험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승객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싫어도 그러한 경우들이 생기기 마련인 게 문제다. 게다가 초행길이거나 만원 버스인 경우처럼 하차 태그에 정신을 '집중'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 모든 경우들에 대해 승객의 주의 태만이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버스에서 내린 후 하차 태그가 성공하지 못한 것을 알아차리고 급히 다시 뛰어올라가는 승객의 모습은 다른 이들이나 기사가 보기에도 아찔하다. 비단 사고가 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부지불식간 태그 단말기를 막고 서 있는 다른 승객 신체 사이로 카드를 내밀다가 성희롱 시비나 벌어지지 않을지 염려되고, 이미 하차 태그한 것을 깜빡 잊고 다시 찍다가 순간 치매 증세가 아닌지 스트레스를 받는다.
버스 전용 중앙 차로에 늘어선 버스들 사이에 이 수십 초의 시간이 겹쳐지다 보면 버스 운행의 정시성도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불합리가 발생하는 것이다. 하차하는 뒷문 쪽에 단말기를 두 개 부착하는 것도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환승 할인 적용 기준도 시민들이 혼란스러운 부분이다. 현재 서울 시내버스는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는 하차 태그 기준으로 30분 이내에 무료 환승이 되고, 그 외의 시간에는 하차 시간으로부터 1시간 이내가 기준이다. 그러나 자신이 버스에서 내린 지 얼마나 되는지를 기억하기도 어렵고 환승할 버스의 배차 간격이 넓다면 환승 시간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 애초에 30분, 1시간 같은 단위가 엄밀한 기준일 수가 없다.
하차 태그 제도가 갖는 이러한 문제점들이 분명하다면, 제일 처음의 민원인이 제안한 바처럼 하차 태그를 없애고 시간만으로 환승 요금을 계산하면 안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응답소에 게시된 서울시의 답변은 우선, "환승 시 대중교통 요금 산정의 기본 데이터는 승객의 이동 거리로 이를 위하여 승객의 하차 정류소 데이터 인식은 필수"라는 것, 그리고 "하차 태그는 요금 징수뿐만이 아니라 각 운송 수단별 수입금 배분을 위한 기초 자료로 하차 태그 없이 각 수단의 승차 태그 시간 계산만으로 요금을 징수하고 수입금을 배분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러할까? 그렇다면 서울 시민은 데이터 수집과 기초 자료 제공을 위해 위험과 불편을 무릅쓴 실험쥐가 되어왔다는 말인가?
이런 이유라면 나는 하차 태그의 정당성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데이터 확보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차 태그의 주된 기술적 이유여서는 안 될뿐더러, 하차 태그 외에는 승객 수송 건수와 이용 패턴을 파악할 방법이 없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승차 태그 계산만으로 요금 징수와 수입금 배분이 어렵다는 것도 납득할 수 없다.
어차피 수도권 통합 요금제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버스 업체, 도시 철도의 운송 수입과 지방자치단체가 지불해야 할 총 보전액의 규모이며, 승객은 대부분 하차한 곳이 다시 승차 지점이 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승차 숫자 기준으로 계산해도 비율에 차이가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하차 태그를 폐지하고 승차 태그 시간 기준으로 환승 할인을 하는 제도는 불가능하다고 단정해야 하는 것일까?
거리 비례제를 적용하지 않는 서울 시내버스는 지금 당장이라도 최초 승차 시간과 환승 승차 시간 기준으로 할인을 적용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환승 시간을 넉넉하게 두 시간으로 늘려도 운송 수입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경기도도 거리 비례제를 폐지할 경우 총 수입과 보전액을 예상하는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설령 경기도의 보전액이 늘어나더라도 시내버스는 거리 비례제를 없애고 단일 요금으로 바꾸는 게 단순하고 합리적이다.
환승 할인 용도가 아니라 거리 비례 요금 징수만을 위한 용도라면 광역 버스에만 제한적으로 하차 태그 단말기를 두거나 하면 될 것이다. 이런 방법들을 진지하게 강구하지 않는다면 '타요 버스'와 '올빼미 버스'가 아무리 인기가 있다 하더라도 서울시를 포함하여 버스 준공영제를 시행하는 광역시도는 굉장한 직무유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서울시민을 포함하여 총총히 하차태그를 찍는 승객들은 굉장히 착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하차 태그는 지금과 같이 교통 수단별 운행 주체가 난립되어 있는 상태에서 통합 요금제를 실시함으로서 나타나는 요금 분배 기술상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교통 수단 운영 주체의 통합 방안을 본격적으로 연구할 일이지, 복잡한 계산과 제도 개선의 부담을 시민들에게 하차 태그라는 방식으로 계속 떠넘길 일이 아니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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