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흔히 말하는 '지방 촌년'이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전입신고까지 마친 지 8년 차, 이젠 제법 어엿한 서울 사람이 되었다.
돌아보면 축복받은 서울 생활이었다. 부모님이 오빠들과 함께 살 집을 구해주신 덕에 독서실, 고시원 신세 한 번 진 적이 없다. 전셋집을 구했으니 매달 눈물을 머금고 집주인에게 쌈짓돈을 내줄 필요가 없다. 비용 절감을 위해 오래된 집에 살아 겨울이 되면 수도관이 터질까 노심초사했지만, 여름이 괴롭다는 반지하에선 살아 본 적 없다.
딱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독립'적인 삶이다. 부모님의 영향력에서는 벗어났지만, 오빠들과 함께 사는 한 이 집 안에서는 여전히 위계 서열이 존재했고, 어디까지나 나는 이 집의 '막내'였다. 독립인 듯 독립 아닌 생활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마침, 자의 반 타의 반 독립할 날이 다가온다. 머잖아 첫째 오빠가 결혼할 조짐이 보인다. 둘째 오빠는 얼마 전 장기 체류할 요량으로 해외에 나갔으므로, 남은 것은 나 혼자뿐이다. 이제야말로 나 스스로 거취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때다.
진짜 독립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과연 난 혼자 살 수 있을까. 우선 경제적 측면. 모아놓은 돈? 없다. 매달 '따박따박' 수십만 원의 월세를 지불할 정도의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다. 다음 생활의 측면. 부모님에게는 경제력을 빌리는 대신 가사 노동 해방의 기쁨을 안겨드렸다. 그렇다고 지금 내 몫의 가사 노동을 내가 하는가를 생각해보면 그 또한 아니다. 한 끼분의 음식을 만들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등 간단한 일은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방충망 설치나 공과금 납부와 같은 세세한 일들은 대부분 첫째 오빠의 몫이었다. '하숙생' 소리를 들을 정도로 집안일을 돌보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다음 안전의 측면. 가끔 오빠 두 명 모두 집을 비운 날 새벽 윗집 사람이 계단 오르는 소리만 듣고도 강아지들을 부둥켜안고 덜덜 떨었던 걸 생각하면, 글쎄….
이쯤 되면 대강 시나리오가 나온다. 은행 대출을 받아 전세 비용이나 보증금을 마련한다 해도, 내가 서울 하늘 아래 구할 수 있는 집이란 오빠들과 함께 살던 집과는 비교도 안 되는 좁디좁은 단칸방에 불과하다. 일로 노곤해진 몸을 이끌고 어두컴컴한 단칸방에 들어와 불을 켜면 눈에 보이는 것은 수북이 쌓인 빨랫감과 설거짓감. 배는 고픈데 음식 할 기력이 없으니 매일 같이 라면물을 안치고…. 가끔 라면이 지겨우면 마트에서 비싼 돈을 주고 조리 음식을 사오거나 배달 음식을 먹느라 적잖은 비용이 들 터이다. 그렇다면 공간을 오롯이 나 혼자 사용한다는 것 말고 독립으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무엇일까. 벌써 훤히 그려지는 이 생활이 과연 내가 원하던 삶일까. 독립이 현실로 닥치니 설렘보다도 두려움이 앞서기 시작했다.
독립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을 무렵, 챙겨 보는 TV 프로그램이 생겼다. 홈 셰어를 주제로 한 예능 프로그램인 SBS <룸메이트>다. 물론 <룸메이트> 배경이 되는 집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싼 집이다. 또 어디까지나 '쇼'라는 측면에서, 매일매일이 이벤트인 출연진의 삶과 내 삶은 다를 것임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룸메이트>는 혼자 살기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나에게 '홈 셰어'라는 힌트를 주었다.
'집'을 넘어서 '삶'을 고민하다
이들이 사는 셰어하우스 '특집'을 잠깐 들여다보자. 성미산 마을 내 공동주택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 2호의 3층에 위치한 '특집'은 56제곱미터 규모의 복층 구조 집이다. 공동의 거실과 부엌, 두 개의 화장실이 있고, 방은 1인실이 3개, 2인실이 1개로 분기마다 바꿔 쓴다. 무엇보다 내 시선을 잡아끈 것은 약간의 보증금에 월세 20만 원 안팎의 저렴한 임대료였다. 여기에 가사 일을 분담할 '룸메이트'들과 공동체 생활 방식을 몸에 익힌 맘씨 좋은 이웃들까지…. '오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좋은 집 정보를 알아냈으니 1차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지만 나는 책을 덮지 못했다. 각자 살던 집에서 나와 '특집'을 짓기까지, 다섯 식구가 각자 동기를 밝힌 부분에서 한 줄 한 줄 공감 가지 않는 대목이 없었다. 노는 아이 '구슬'에게선 간절히 독립을 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철부지 남실이에게선 '촌년'으로 자라나 서울살이를 15년간 하는 동안 고단함을 느껴왔다는 점에서, 투덜이 '꼼지락'에게선 일로 받은 스트레스를 흥청망청 소비하는 것으로 풀어왔던 삶의 방식을 청산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난 8년간의 내 '서울살이' 경험이 겹쳐졌다.
"월세 때문에 내가 자유롭게 상상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직장에 계속 다녀야 하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는 점이 내가 셰어하우스에 입주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지난 2년은 셰어하우스의 경험과 회사를 나온 두 가지 큰 변화를 따로 떼어 설명하기 힘들다."
이들은 특히 소비와 노동의 관계를 깊이 들여다본다. 사람들은 집값을 지불하기 위해 일의 노예를 자처한다. 또 역으로 지속 가능한 회사 생활을 위해 자동차나 명품 가방 할부를 지른다. 문제는 정작 좋은 집을 구한다 하더라, 초과 노동에 시달리느라 집의 안락함을 누릴 기회조차 갖기 어렵다는 점이다. 독립을 하게 되면 아마 나 역시 이런 악순환의 고리에서 자유롭지 않으리라. 부모 형제 관계로부터는 독립하겠지만, 회사에 그리고 자본에 자유를 빼앗기고 말 것이다. 결국 이들이 특집을 마련한 이유도 진정한 '자유 독립'을 얻기 위해서였다.
"특집 입주 전 어느 날, 다 같이 모여 앉은 자리에서 꼼지락이 '시간의 주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정말 나는 나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하고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과연 무엇을 인생의 중심에 두고 살고 싶은지, 이를 위해 무엇을 얻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결코 일만 잘한다고 해서 내 삶의 질이 나아질 수 없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일을 하는가, 안 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일을 하는가, 또 내가 어떤 삶을 선택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려 하는가를 알아야 함을 깨달은 것이다."
결국 세 명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여유로운 삶을 시작했다. 미래에 저당 잡혀 현재를 희생하지 않는 삶을 택한 것이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한 번 벗어나면 큰일 날 것처럼 이야기하는 인생의 '정상적인 길'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그게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재정적으로는 분명히 이전보다 불안하지만 자신이 비로소 하루하루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그 이유 하나로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특집 입주자들은 독자들에게 어떤 곳에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넘어서서,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그러고 보면 '산다'는 단어가 그렇다. 거주(live)의 의미가 있는 동시에 삶(life)의 의미가 있다. 결국 거주와 삶은 맞닿아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이 구절을 읽으며 나는 내가 어떤 곳에서 살아야 할지 답을 깨달았다.
"집을 짓기 위해, 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돈도, 교통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 집에 살 사람이 어떤 삶을 원하는가, 어떤 집으로 기능하기를 원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 과정이 없다면 다른 사람들이 제안한 삶에, 그리고 집에 나를 맞출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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