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경제의 맥을 짚어 드리는 프레시안 도우미 정태인입니다. 하지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언제까지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시절입니다. 세계 경제가 안 좋다는 얘기는 여러 번 드렸고, 우리 경제도 수렁으로 향하고 있다는 얘기를 몇 달째 하고 있습니다만 이제 구체적으로 징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선 그래도 상당한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던 동아시아 경제에도 한파가 불어오고 있습니다. 중국의 수출 제1위는 EU인데 EU가 제로 성장에 허덕이고, 중국에 4분의 1이상의 제품을 수출하는 한국 제조업 역시 흔들리는 기미가 역력합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11월 24일 '2015년 산업경기의 7대 특징과 산업전망'을 내놓았는데요. 중국과 일본 사이의 '샌드위치'라는 판에 박힌 설명(사실 샌드위치라든가, 넛크래커와 같은 상황은 한국이 1위나 꼴찌가 되지 않는 한 언제나 맞는 말이죠)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아래 표들은 분명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제조업 경쟁력에서 일본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중국이 상당한 속도로 따라와서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앞으로도 지속될 상황입니다. 문제는 상황변수인데 한국의 대 달러 환율이 높아지고 있습니다만(원화 절하), 대 엔 환율은 아베노믹스 이래 30% 이상 절상돼서 일본과 경쟁하는 산업(자동차와 IT 등)의 수출은 더욱 어려워질 겁니다.
특히 철강의 경우 국내 건설업 경기가 들썩인다고 해도 글로벌 공급과잉이 존재하고 중국산 제품의 시장 잠식까지 겹쳐 불황에 빠져들 것으로 연구원은 분석했습니다. 화학산업 역시 동북아 각국 경제의 과잉 공급으로 인해 성장세가 더뎌질 것이고, 조선업은 전 세계적인 선박 공급과잉이 지속되면서 신규 수주가 부진하고 수출 단가가 더 낮아져 침체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죠. 자동차 역시 국내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스마트폰 역시 과거와 같은 신장세를 보이고 있지는 못 합니다. 한국의 4대 중후장대형 중공업이 모두 어렵다는 얘깁니다.
기업 내에 천문학적 돈을 쌓아 두고 있는 거대 기업을 제외하고는 재벌계열사라 할지라도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보고서가 우려하는 것처럼 '외환위기'가 발생하지는 않을 겁니다. 1997년의 외환위기가 자본시장 개방을 계기로 값싼 달러를 빌려와 장기투자를 하다가 주력 상품의 수출이 꺾이면서 금융부문에서 터진 위기라면, 이번엔 대내외 금융 상황은 그다지 나쁘지 않지만 외국의 수요 부진과 환율 때문에 실물 쪽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므로 바로 외환위기가 발생할 상황은 아닙니다. 물론 가계와 정부가 모두 빚을 지고 있는 상황이라서 한국의 미래가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국내에 들어와 있던 외화가 일거에 빠져 나간다면 외환위기 상황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이제 문제는 이른바 '산업구조조정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 입니다.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사회적 대타협을 하든가, 아니면 가혹한 정리해고죠.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인사청문회에서 사회적 대타협에 의한 임금 인상을 얘기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소득주도성장론'이라고 환영했고 저도 이런 아이디어를 실천한다면 그의 팬이 되겠다고 여러 번 말했죠. 하지만 최경환 부총리는 부동산 경기와 기업의 투자에 목숨을 걸다가 자신의 '초이노믹스'를 근혜노믹스 뒤로 슬그머니 감추었습니다. 특히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이름 아래 수출대기업 정규직의 대규모 정리해고를 예고했죠. 최 부총리 뿐 아니라, 기획재정부 국장도 언론에 흘리고 부정하는 짓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다음 달에 비정규직 대책을 발표할 예정인데, 비정규직 보호 강화 대신 정규직 보호 약화를 들고 나온 셈입니다. 집값을 올려야 경제가 산다며 부동산 규제를 풀다가, 그 때문에 전셋값 오른다고 아우성이니까 전세금을 빌려주면 된다는 마리 앙투아네트식 사고가 이번에도 되풀이된 겁니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고 임금을 올려야 내수가 늘어서 경제가 회복될 수 있다는 '소득성장론'이 최경환 부총리의 입에서는 정규직 보호를 풀어서 해고하기가 쉬워야 구조개혁이 된다는 '줄푸세'로 탈바꿈한 겁니다.
위기는 오는데 사회적 합의에 의한 해결은 안중에도 없고 대대적 구조조정을 꿈꾸고 있는 겁니다. 노동자와 시민의 목소리를 어떻게 틀어막을지만 관심이겠죠. 그가 예로 든 독일 모델이나 아일랜드 모델, 모두 장기간에 걸친 사회적 합의 과정을 어떻게든 거쳤다는 사실은 잊어버린 모양입니다. 우리는 마리 앙투아네트 대통령과 마리 앙투아네트 부총리를 머리에 이고 사는 셈입니다.
젊은이를 위한 나라는 없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중단기의 경기에 관한 얘기였지만 장기로 봐도 장기침체의 큰 요인이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인구 구조의 변화의 심각성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닙니다만, 내년부터 여성인구가 남성인구를 앞지를 것이라는 통계청 발표를 보니 새삼 걱정이 됩니다.
아직도 남아 출생률이 더 높지만, 전체 출생률이 낮아지고 있는 가운데 여성의 수명이 10년쯤 더 길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렇게 출생률이 낮아지면 2017년부터는 고령인구가 유소년 인구를 앞지르고 따라서 생산가능인구도 감소하게 됩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율을 1인당 생산성이 앞지르지 못한다면 경제성장률도 떨어지겠죠. 통계청은 2060년 경제성장률이 0.8퍼센트(%)로 떨어지고 국가채무는 1경4600조 원을 넘어 국내총생산의 170%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물론 이 현상이 한국에만 해당하는 건 아닙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11월 24일 "젊은이를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young people)"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1년 전 하버드의 래리 서머스 교수가 '지속적 침체(secular stagnation)'라는 30년대 용어를 부활시켜서 화제가 됐는데요. 이후로 역사상 최저의 이자율, 마이너스 실질금리 하에서도 경제가 회복되지 못하는 이유에 관한 다양한 견해가 나왔습니다.
최근 '경제정책연구센터(CEPR)'가 서머스, 크루그만, 아이켄그린 등 쟁쟁한 경제학자들의 글을 모아서 전자책으로 출판했는데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는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이유 중에 인구구조의 변화를 소개한 겁니다.
거칠게 요약하면,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인구가 늘어나면 이자율이 아무리 낮아지더라도 생산은 줄고 노후에 대비한 저축은 늘어날 것이란 얘깁니다. 이 저축이 수요 부족(젊은이들은 숫자도 적고 실업률이 높아서 소득도 높지 않으니까요) 때문에 투자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장기 침체에 빠질 수밖에 없겠죠. 피케티가 장차 부의 불평등이 심각해질 거라고 예측할 때도 이 요인을 들었습니다.
결국 현재 세계가 깊은 침체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면 부자로부터 가난한 사람에게, 노인으로부터 젊은 사람에게 부가 이전되어야 합니다. 물론 노인들이 노후 걱정 때문에 돈과 자산을 움켜쥐지 않도록 공동체 차원의 노인 복지가 보장되어야겠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삶을 마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경제정책이 되고 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아직 가지 못한 길이지만, 과거에는 당연했던 길입니다. 앞으로 이 문제에 관해서는 더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리 암울해도 희망적이고 신나는 기사 하나쯤은 매주 소개해 드리겠다고 약속했는데, 오랫동안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이번 주에는 하나 건졌습니다.
서울시가 화석에너지를 쓰지 않는 생태주택을 건설한다는 소식입니다. 11월 25일 서울 노원구 하계동에서 전국 최초로 에너지를 자급자족하는 '제로에너지 주택 실증단지' 착공식이 열렸는데요. 연면적 1만7729평방미터(㎡) 부지에 7층 아파트 3개동, 연립주택, 땅콩주택(합벽주택), 단독주택 등 121가구의 주택이 2016년 하반기에 완성된다는군요.
제로에너지 주택은 석탄·석유·천연가스 등 화석에너지를 전혀 쓰지 않는 집입니다. 바로 이것이 제가 누누이 강조한 생태 투자입니다. 중단기 경기 상황으로 봐도, 장기 인구학적 추세로 봐도 투자가 부족한 상황입니다. 정부가 현재의 부동산에 세금을 매겨 생태적 공공주택을 늘리는 것은 경제에도 복지에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연에도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도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집뿐 아니라 교통, 발전과 송전, 재생에너지 등 생태 투자가 필요한 곳은 무궁무진합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국제/생태/세월호 등으로 나눠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이 맡고 있습니다. 생태와 세월호는 각각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과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원장이 격주로 진행합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창간 이후 조합원 및 후원회원 '프레시앙'만이 열람 가능했던 <주간 프레시안 뷰>는 앞으로 최신호를 제외한 각 호를 일반 독자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내려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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