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김무성 대표의 '개헌 봇물' 발언 이후 혼란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 대표의 공개 사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나서 사실상 김 대표에게 공개 면박을 주면서 비주류 쪽에서는 '해도 너무 한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반면 당 주류인 친박계는 김 대표의 개헌 발언이 개인적인 정치 야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정치인들은 나름의 존재감 과시에 나섰다.
김무성 "대통령과 싸울 생각 없다"
김 대표는 23일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청 갈등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진화를 시도했다. (☞관련기사 : 김무성 "야당의 정치 공세", 당·청 갈등 시선 돌리기) 전날 저녁에는 예정에 없이 당 보수혁신위원회 회의장을 찾아 기자들에게 "대통령하고 싸움 붙인다고 난리 치는데 (나는) 절대 싸울 생각 없다"고 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전날 "중국 여행이 끝나는 날 경계심이 무너져서 말 한마디를 잘못해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 있고 전혀 제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나는 '어' 했는데 언론에서는 '아'라고 보도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 대표는 이날 최고위 이후에는 개헌 문제 외에 또 하나의 당·청 갈등 소재인 공무원연금 개편과 관련 "현실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 건데 이게 왜 청와대와 나하고의 갈등으로 계속 보도되나"라며 기자들에게 '어필'을 하기도 했다.
단 김 대표는 청와대와 친박계의 강력한 압박에도 '연내 처리'를 말하지는 않았다. 그는 공무원연금법을 자신의 이름으로 대표발의하겠다는 것이 이 법안을 연내 처리하겠다는 의지인지 묻자 "대표발의를 제 이름으로 하겠다. 더 이상은 뭐…"라고만 했고, '연내 처리 방침에 수긍하나'라고 재차 물어도 "고위 당정청 회의서 '가능하면' 연내를 목표로 하자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전제를 달아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문제는 야당과 합의돼야 할 문제인데 '연내'라고 못박을 경우 야당과 대화가 어려워지지 않겠나"라고도 했다.
친박 홍문종 "김무성, 대선 스케줄 때문에 유혹 참지 못한 것"
김 대표는 이처럼 자신의 개헌 발언이 일으킨 파장과 관련, 확전을 원치 않는다는 태도를 공개적으로 보이고 있다. 중국에서 귀국한 다음날 바로 "제 불찰"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개 사과를 한 것 역시 같은 의도의 제스처였다. 그러나 집권세력 내 주류는 여전히 김 대표에게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일부러 기자실을 찾아 "김 대표의 발언이 실수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한 것(☞관련기사 : 청와대 "김무성 개헌 언급 실수로 생각 안해")이 대표적이다.
친박 주류로 황우여 전 대표 시절 당 사무총장을 지냈던 홍문종 의원은 이날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김 대표가 정치적인 타임 스케줄에 의해서 개헌론을 주장하고 있었다"며 "대권 스케줄이나 그런 데 비추어볼 때, 이슈를 선점하는 게 중요하다고 아마 주변에서 말씀을 하셔서 그 유혹을 참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홍 의원은 "대통령께서 해외에 나가시면서 '개헌 논의라는 건 블랙홀과 마찬가지다.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기 때문에 지금 민생과 경제가 중요하니 당분간 자제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간곡히 당부하셨다"며 "그런데 (김 대표가) 중국에서 그런 말씀을 하심으로 해서 지금 대통령께서 상당히 난감하게 되셨다"고 했다.
홍 의원은 "아마 지금 당내를 틀어잡고, 또 여야 간에 있어 중요한 정치 이슈를 먼저 선점하는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 대통령께서 당부는 하셨지만 지금이 (개헌론을 언급하기에) 적기가 아닌가 하고 주변에서 조언을 하셨을 것"이라며 "김 대표께서 '실수'라고 말씀하시지만 정치이슈, 판도라의 상자를 너무 일찍 열었다"고 했다.
친이 조해진 "여당 대표에 불신 공개적으로 드러낸 靑, 감정적"
반면 구 친이계인 조해진 의원은 평화방송(PBC) 라디오에 나와 청와대를 정면 비판했다. 조 의원은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발언에 대해 "별로 그렇게 좋은 현상 같지 않다"며 "김 대표가 파장을 예상 못하고 발언을 했다든가 또 발언하자마자 바로 거둬들인다든가 이런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고 해서 청와대가 이렇게 감정적으로 나오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조 의원은 "여당 대표가 국정의 중요한 파트너인데, 그 여당 대표에 대한 불신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새로운 갈등의 단초가 될 수 있다"며 "청와대 입장에서는 개헌이 필요한가 아닌가 하는 근본적 문제에서 접근해 대응해야지, 어떤 정치적 속셈이나 그런 부분을 가지고 너무 지나치게 투쟁하거나 단정하거나 그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조 의원은 나아가 "청와대도 개헌 자체를 반대하는 것인지, 아니면 개헌 필요성이 있다고 느껴지지만 일정상 언제쯤까지는 보류했다가 언제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든지 이런 구체적인 일정 부분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해줄 필요가 있지 않는가"라며 개헌에 대한 청와대 입장을 밝힐 것을 간접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박 대통령의 '개헌은 경제 블랙홀' 발언에 대해서도 "개헌을 논의하는 문제는 현재의 당면한 국가적 과제 이상으로 먼 장래를 내다보는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그것대로 별개로 해야 된다"면서 "그 두 가지를 같이 한다고 해서 경제 살리기나 민생 살리기가 타격을 입을 거라고 저는 생각지 않는다"고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김문수·김태호는 김무성과 차별화…존재감 부각
이런 가운데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개헌 반대 입장을 더 강하게 밝히며 김 대표와의 차별점 부각에 나섰다. 김 전 지사는 전날 한 포럼 강연에서 "국민들은 대통령 욕하는 것의 10배 이상 국회의원을 욕하고 안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각제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국회에서 총리도 뽑고 장관도 뽑겠다는 것은 국민들이 안 받아들일 것"이라는 것이다.
김 전 지사는 김 대표가 언급한 이원집정부제에 대해서도 "이원집정부제도 따지고 보면 일종의 내각제와 같은 것"이라며 "국회의원이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대통령을 없애자는 것인데 그래서 과연 위기에 대응이 되겠느냐"고 비판적으로 언급했다.
또 경남도지사를 지내 대선주자급이라는 평을 듣는 김태호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최고위 회의에서 "국회가 경제활성화 법안을 통과시켜야 국민들도 개헌 논의에 적극적 지지를 보낼 것"이라고 말하며 최고위원직을 깜짝 사퇴해 장내에 술렁임이 일기도 했다. (☞관련기사 : 김태호 최고위원 사의 표명 "밥만 축낸 건 아닌가")
그는 최고위 이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 신뢰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며 "신뢰를 보여주려면 여야가 화끈하게 경제법안을 통과시키는 게 먼저"라고 했다. 그는 최고위원직 사퇴에 대해 "(경제법안) 통과가 전제돼야 이후에 개헌도 가능하다는 뜻에서, 좀 더 각성하고 저부터 반성한다는 차원에서 던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 지사나 김 최고위원은 모두 친이계로, 김 최고위원은 2010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 의해 총리로 지명되기도 했다. 김무성 대표가 여당 비주류·비박계 내에서 개헌 추진파로 자리매김하려 한다면, 김 전 지사는 개헌 반대파로, 김 최고위원은 시기 조절파로 '캐릭터'를 잡고 인지도를 높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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